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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そして父になる / Like Father, Like Son] (2013)

giantroot2013. 12. 28. 01:00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2013)

Like Father, Like Son 
8.4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출연
후쿠야마 마사하루, 오노 마치코, 마키 요코, 릴리 프랭키, 니노미야 케이타
정보
드라마 | 일본 | 121 분 | 2013-12-19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극히 정갈하고도 고도의 양식미를 보였던 [환상의 빛] 이후 반대로 다큐멘터리적인 뿌리로 회귀해 즉흥적인 구조를 취해 영화를 만들어왔으며 [아무도 모른다]까지 그 기조를 유지해왔다. 그런 그가 [걸어도 걸어도]로 한번의 전환기를 맞이하는데 즉흥성은 줄어든 대신 그가 항상 존경을 표해왔던 나루세 미키오나 야마다 요지 같은 선배 영화 감독들의 홈드라마에 대한 존경심이 드러난다고 평가 받고 있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그런 [걸어도 걸어도] 이후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의 연장선상에 있는 영화다.

물론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는 고레에다의 또다른 화두였던 기억이 중요한 원동력으로 자리잡고 있다. 죽음의 상흔 그 이후 왜 그랬나라는 과거의 기억에 사로잡혀 괴로워하거나 ([환상의 빛], [디스턴스], [아무도 모른다]) 무의 존재가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기억이 생기고 채워가는 과정을 보여주거나 ([공기인형]) 아예 죽음 이후 행복했던 생전 기억으로 영화를 만들어 왜 기억이 필요한지를 역설하기도 ([원더풀 라이프]) 했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혈연이라는 당연하게 여겨져 왔던 믿음이 가족으로써 만들어지는 시간과 기억하고 어긋날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 질문은 대부분 주인공인 노노미야 료타에게 향하고 있다. 성공한 직장인인 료타에게 갑작스럽게 찾아온, '자신의 아이가 뒤바뀌었다'라는 불일치는 도무지 쉬이 받아들일수 있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사이키 가족은 물론이고 료타의 아내인 미도리조차 그 불일치를 다소 혼란스러워하면서도 비교적 빠르게 정리해가지만 료타는 이 불일치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고 영화 내내 쩔쩔 맨다. 영화의 모든 갈등과 사건 전개는 료타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먼저 그는 사이키 가족을 배제하려고 한다. 그의 눈에 사이키 가족은 부족하고 성급한 사람들일 뿐이고 자신의 아이와 그들의 아이를 모두 가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시도는 미도리와 사이키 부부의 반발로 실패한다. 어쩔수 없이 그들의 친권을 인정하게 된 료타는 두번째로 자신의 혈연인 류세이에게 자신의 법칙을 강요하는 것으로 류세이를 케이타처럼 만들려고 한다. 하지만 이 역시 류세이의 가출로 실패로 돌아가게 된다. 

이런 충돌과 갈등 속에서 고레에다 감독은 후쿠야마 마사하루의 스타 이미지를 교활하게 활용한다. 이 영화에서 평소 후쿠야마가 가지고 있는 이상적이고 빈틈없는 이미지는 료타의 다소 엄격하고도 거만한 캐릭터에 역으로 흡수된다. 그리고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 캐릭터는 서서히 허물어지면서 그동안 후쿠야마가 보여주지 않았던 새로운 면모를 드러나도록 유도하게 한다. 이는 아역들에게도 비슷하게 적용할수 있을 것이다. 고레에다 영화들이 그렇듯이, 아역의 연기가 상당히 좋다.

고레에다 감독은 료타의 실패를 그가 기억의 무게와 가치를 인정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찾는다. 분명 혈연이 갖는 무게라는 것도 있지만 함께 한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서 만들어진 기억은 부정할 수 없는 존재감을 가지고 있다. 그 존재들은 씹어놓은 빨대라던지 이 닦기 버릇 같은 소소하지만 분명한 증거들로 드러난다. 종종 기록 매체를 인용해 (디스턴스에서 가짜 가족 사진 만들기라던가 원더풀 라이프의 영화 만들기) 기억과 기록의 연관 관계를 보여줬던 고레에다 감독답게, 영화는 이런 소소한 증거들이 만들어지고 쌓이는 과정을 사진 찍기와 다시 확인하는 행위를 통해 물화된 기억과 시간의 현존성을 보여준다.

이런 기억이 쌓여서 만들어진 결과는 집이라는 공간의 대조와 그에 대한 인물들의 반응으로도 드러내는데 유쾌한 물장난과 난잡한 사이키네 집에 익숙해진 류세이가 노노미야네 집에 들어서면서 하는 말은 다름 아닌 "마치 호텔같다"다. 이는 [달의 사막]에서도 드러났듯이 현대 일본의 가정이 잠만 자는 공간이 되버렸다는 감독의 꼬집음이 드러나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런 '호텔' 같은, 호화스러운 도쿄 노노미야네 아파트와 관동 지방 중에서도 낙후하기로 유명한 군마 현의 허름하고 난잡한 전파상 사이키네의 대조는 일본내 사회경제 서브텍스트를 읽을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영화는 여기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수목림에서 자라나는 매미를 이야기하면서 그것이 이런 시간의 흔적들이 만든 기억이야말로 우리의 정체성을 이루고 있다고 역설한다. 인위적인 자연에서 자라난 매미를 쉽사리 가짜라 할 수 없듯이, 설사 인위적으로 바뀌었다고 해도 서로 함께 지나왔던 시간은 부정할 수 없는 단단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료타가 겪는 실패는 그 형태를 받아들이고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깨달음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기에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결말은, 새로운 가족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으로 귀결된다. 뒤바뀌어버린 시간과 엉켜버린 실타를 공유하고 있는 두 가족은 그 시간을 단절하고 출발하는게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계속 이어가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료타가 과거에 한순간의 감정으로 새어머니에게 저질렀던 실수를 뒤늦게나마 미안하다고 말하는 장면은 그 깨달음이 단순히 현재와 미래에 머물러 있지 않다는 것을 넌지시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케이타나 류세이나 모두 사랑스러운 자식들것이다. 그렇게 영화는 양극에 있는 두 존재의 화합과 중재를 하면서 새로운 추억의 탄생을 약속하는 것으로 마무리 짓는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어찌보면 그동안 고레에다가 천착해왔던 기억과 시간의 문제를 일본 홈드라마 영화 전통에 대중적인 어법으로 풀어낸 영화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기억과 시간이 어떻게 새로운 커뮤니티를 만들었는가 (혹은 어떻게 재구축해야 하는가),를 파고든다는 점에서 문제 의식이 확장되었다고 말할수도 있을것이다. 그런 점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일본 영화의 양기를 대표하는 감독으로써 꾸준히 전진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