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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진 것처럼 [Like Someone in Love] (2012)

giantroot2013. 11. 17. 18:43


사랑에 빠진 것처럼 (2013)

Like Someone in Love 
6.6
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출연
타카나시 린, 오쿠노 타다시, 카세 료, 덴덴
정보
드라마 | 프랑스, 일본 | 109 분 | 201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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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사랑에 빠진 것처럼]은, 사람들로 가득한 도쿄의 바를 보여주면서 누군가가 전화로 다투는 소리가 깔리면서 시작한다. 자연스레 우리는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아 화면을 탐색하게 되는데 키아로스타미는 관객들이 소리의 주인공이 카메라에 잡히지 않고 화면 밖에 있는 캐릭터가 말한다는걸 알아차리고, 대화에서 언급한 나기사가 카메라 앞에 앉는 그 순간 컷을 전환해 목소리의 주인공, 아키코를 보여준다. 키아로스타미는 이 화면과 소리의 불일치를 통해 관객들로 하여금 섬세하게 짜여진 영화의 층위를 주목하도록 강조한다.

그리고 결국 이 다툼이 '나기사의 목소리를 믿지 못하고 화장실 바닥 수를 세라는 (그리고 나중에 확인하려는)' 기상천외한 요구로 번진다는게 재미있다. 결국 이 과정에 아키코는 자신의 알리바이를 히로시의 존재를 소리로 노출시키는 바람에 들키고 만다. '소리를 불신하며, 실제(를 담은) 이미지를 증명/확인'하려는 노리아키의 집요함은 그 자체로도 우스꽝스럽고, 앞으로 이어질 서스펜스 스릴러에 대한 단서를 제공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노리아키 캐릭터의 찌질한 묘사와 겹쳐 생각해보면 영화에서 '이미지'에만 집착하고 '다른 요소'들을 무시하는 관객/평론가들에 대한 일침이라고도 볼 수 있을것이다.

이 이미지에 대한 고찰은 아키코가 매춘을 하러 가기 위해 택시를 타면서 변주된다. 아키코는 할머니가 자기 휴대 전화로 남긴 음성 메시지를 들으면서 할머니가 도쿄로 올라와 자신을 찾다가 자신의 접대용 스티커 사진을 발견했다는 걸 알게된다. 하지만 할머니는 그 사진을 믿지 않고 아키코가 조신하게 있을거라고 믿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할머니의 기대와 달리 매춘이라는 걸 알고 있다. 이윽고 아키코는 역 근처에서 할머니를 발견하지만 실제적인 이미지에 접근하지 못하고 그저 그 자리를 뱅뱅 맴도는 것에 만족한다. 그나마도 관객들은 자세히 뚫어지게 보지 않으면 할머니가 있는지 조차도 알 수 없다. 그런 밖에 나오지 못하고 안에 갇혀있는 아키코 위로 도시의 파편적인 풍경이 비쳐 흘러내린다. 키아로스타미는 이 부분에서 이미지 아래에 있는 실제에 대해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접근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아키코가 고객인 교수 타카시를 만나면서 이미지에 대한 고찰은 흉내라는 영역으로 확장된다. 여기서 아키코는 옛날에 자기가 알던 사람들이 자신이 [교무]라는 그림에 나오는 여자를 닮았다고 했다고 말하면서 [교무]의 여자를 흉내낸다. 타카시는 둘이 닮았다고 말하지만 아키코는 다시 자신은 [교무]의 여자하고 닮지 않았다고 말하며, 타카시의 가족들의 사진들을 들고와 자신과 닮았다고 말한다. 거기에 타카시는 애매하게 수긍할 뿐이다. 그렇게 대화가 이어지지만 그들이 원하는 실제적인 행위인 '식사'나 '섹스'에 도달하지 못하고 말만 나누다가 결국 아키코가 잠이 들어버리는 것으로 끝난다. 여기서 둘은 서로의 개인적인 영역 (옛 추억이라던지 혈연)에 있는 분명한 이미지를 흉내내거나 닮았다 하면서 서로의 실체에 접근하려고 하지만 결국 다가가지 못한 채 기만으로 끝나버린다. 이해하지도 못한 지네 이야기를 들려준 후 웃으며 그런데 왜 웃냐고 물어보는 아키코에게 "네가 재미있는 이야기라고 하니깐" 타카시가 대답하는 부분이라던가 타카시와 헐벗은 아키코랑 대화할때 아키코의 존재가 비친 이미지만 등장하는 장면이 그렇다.

다음날 아키코와 타카시가 차타고 집 밖을 나올때 키아로스타미는 차창에 반사된 하늘과 도시를 인물과 동시에 보여준다. 그러나 하늘의 이미지는 아키코와 타카시에 침입하지 못하고 그 위를 덮듯이 포개진다. 이 모습은 영화 내내 암시하고 있는 이미지와 실제 간의 간극과 관계를 떠올리게 한다. 일견 차와 창문이라는 실제를 감싸는 이미지의 껍질 안에서 평화로운듯 보이는 아키코와 타카시의 관계는 그러나 노리아키가 본격적으로 등장해 차에 들어오면서 히치콕 풍의 서스펜스 영화로 돌변해 옥죈다. 분명 노리아키는 아키코와 타카시의 관계에 대해서도 이미 알고 의심하고 있었을 것이고, 확인하기 위해 타카시에게 접근한 것이다. 그렇기에 노리아키와 타카시의 평행선처럼 이어지는 대화는 부조리극에 가까우며, 실제에 대한 맹목적인 집착에서 비롯되는 관계의 폭력성과 정조로 대표되는 '순결함'이 가지는 정치적인 의미(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잔인한 말인지)을 드러내고 있다.

노리아키가 아키코와 타카시를 자신이 운영하는 자동차 정비소로 데려가는 과정은 노리아키가 아키코와 타카시를 은연중에 이미지를 파헤쳐 실제적인 자신의 손아귀에 놓으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을것이다. 이 때문에 차 안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는 세 사람의 대화는 유도심문, 거짓과 위장, 눈치, 방어라는 전개가 이어지고 관객들은 조마조마한 감정으로 그 전개를 지켜보게 된다. 이 점에서 [사랑에 빠진 것처럼]은 서스펜스/스릴러 영화를 방불케하는 초조함과 불편함, 예측 불가능으로 가득차게 된다. 그렇게 노리아키가 물러나면 아키코와 타카시는 작전 회의를 해 어떻게 방어를 할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역설적이게도, 키아로스타미는 아키코와 타카시가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열결에 가족 관계로 오해받고 상처를 치료하는 모습들을 보여주면서 물질적인 이득관계 때문에 '흉내내기' 관계가 본격적으로 소통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이런 가짜와 흉내내기로 시작된 관계에 대한 긍정은 전작 [사랑을 카피하다]하고 연계된다고 할 수 있을것이지만[사랑을 카피한다]와 달리 이런 소통을 향하려는 시도는 클라이맥스에서 파탄난다. 진상을 알아차리고 발광해 날뛰는 노리아키가 '밖'에서 타카시의 집 '안'으로 침입하려는, 슬래셔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전개가 등장하는 것이다.

이 클라이맥스에서 노리아키는 실제로 등장하지 않고, 이중적인 프레임 이미지인 인터콤 화상 화면에서 드러났다가 사라지고 곧 광기어린 음향으로만 등장해 둘을 압박한다. 실제와 그 실제를 증명할 수 있는 이미지에 집착했던 노리아키가 중요한 순간에 오로지 간접적인 이미지와 소리로만 드러난다는 점에서 키아로스타미의 악의어린 농담이 느껴진다. 그 와중에 데운 우유라는 실체를 향할 수 있는 길은 삐삐 소리를 내며 외려 관객과 인물들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고 아키코는 질겁해 아무것도 못하는 상태다. 결국 그렇게 우유부단하게 왔다갔다 하던 타카시는 노리아키가 던진 돌에 맞고 쓰러진다. '안'과 '밖'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실제와 흉내냄으로 만들어진 이미지 간의 경계가 깨지는 그 순간 키아로스타미는 짗궃게도 끝을 선언한다. 엘라 피츠제랄드의 'Like Someone in Love'가 깔린 채.

이 갑작스럽고 당혹스러운 결말은 그러나 원래 영화 제목이 끝The End였다는 정보를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의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 경계가 깨진 이후에 어떻게 갈지는 아무도 모르며 감독도 이 이후로도 이어질 것이라는 걸 알지만 끝낸다. 다른 흉내내기와 기만이 이어질지, 아니면 파국 이후로 새로운 관계가 시작될 것인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키아로스타미는 하지만 그 이후로도 지금과 비슷한 과정이 이어질거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난데없지만 경쾌한 (클라이맥스 이전까지 영화의 흐름은 전반적으로 조금 느릿한 편이다.) 충격으로 킬킬대며 지금까지 안온하게 있었던 기만의 경계를 흐트려놓는 것으로 마무리 지은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키아로스타미가 생각했던 첫 제목 그대로 했다면 정말 악의적인 영화가 되었을것이다. 영화 시작부터 The End가 뜨는, 시작부터 클라이맥스인 괴상한 구조.

영화 외적으로 보자면 이 영화는 영화 자체가 흉내로 이뤄져 있다. 이란 감독이 일본 영화를 '흉내'내고 있는 것이다. 영화 내내 일본과 일본인이 중심이고 일본 문화의 언급이 드러나는데다 일본어가 중심 언어로 쓰이고 있지만 크레딧에 등장하는 언어는 감독의 모국어인 페르시아어도, 일본어도 아닌 프랑스어이다. 심지어 제목은 그 어느 언어도 아닌 영어다. 그 점에서 이 영화는 이토 케이카쿠가 지적했던 대로, [퍼시픽 림]와 마찬가지로 '외국인이 다룬 일본'인 일본3을 다루고 있는 영화기도 하다. '한 것처럼Like'이라는 제목의 절는 그 점에서 매우 적절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사랑에 빠진 것처럼]은 [퍼시픽 림]처럼 만화나 애니 같은 서브컬처에 대한 동인지적 흉내를 내는게 아니라 고급 문화와 정신을 차용하고 고도로 쌓아올려 교활하고 은밀하게 일본3을 구성하고 있다. 

이렇게 키아로스타미는 영화의 모든 부분들을 실체에 대한 흉내로 채워 그 관계들을 관객에게 주목하게 한다. 그리고 이 모든 사유들을 즉흥적으로 만든 흐름에 맞긴 채 유들유들한 손놀림으로 음흉하게 관객들을 농락하고 있으며 그 농락만으로도 충분히 인상적이다. [사랑에 빠진 것처럼]은 실체에 다가가지 못하고 이미지를 흉내내고 동시에 기만하다가 정말로 관계로 발전하는 사람들에 대한 아트하우스적인 고찰을 서스펜스 호러 영화로 만든, 이상한 영화다. 그리고 그게 정말 잘 먹히는게 더 이상한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