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당신이 제프 니콜스 감독의 전작 [테이크 쉘터]의 평온하지만 그 아래엔 불길하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세계를 기대하고 [머드]를 선택했다면 실망할수도 있다. [머드]의 세계는 [테이크 쉘터]의 암울함하고는 거리가 먼, 사랑과 희망에 대한 신화를 들려주는 전통적인 영화이니깐. 하지만 [머드]는 사실주의적인 배경과 캐릭터에 시적인 정념을 섞는 독특한 재능을 통해 남부 촌뜨기들이 펼치는 사랑에 대한 믿음과 드라마를 진솔하면서도 뚝심있게 설득하는 영화다.
제프 니콜스는 매우 미국적인 영화를 찍는 사람이라 할 수 있는데, 첫 두 영화에서 그는 주류 미국 영화가 다소 소홀하게 다뤘던 미국 중부와 남부 시골들을 돌아다니며 사실주의와 환상이 섞인 시선으로 거기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내면을 들어다 봤다. 다시 고향인 아칸소로 돌아와 찍은 [머드]는 마크 트웨인 (실제로 제프 니콜스는 자신에게 영감을 주는 사람으로 마크 트웨인을 꼽아왔다.)의 소년들의 모험물과 [스탠 바이 미]를 인용해 미시시피 강/늪지대 주변을 살아가는 하층민들의 삶을 담아낸다. 실제로 영화는 미시시피 강이라는 배경과 그 유역의 문화들을 적극적으로 담아내고 있으며 (니콜스 인터뷰에 따르면 사라져가는 미시시피 강 유역의 하층민 문화를 기록하겠다는 생각도 있었다고 한다.) 때문에 [머드]는 [비스트]가 그랬듯이 투박한 진흙 냄새와 주술적인 분위기가 가득한 영화다. 영화 마지막을 장식하는 컷 하나는 그런 사라져가는 고향 풍토에 대한 애잔함을 드러내고 있다.
이런 주술성의 집약체는 주인공인 머드다. 주인공인 엘리스와 넥본에게 머드는 신기한 존재다. 미국 전역을 떠돌아다니며 인디언을 만난 이야기와 첫사랑 이야기를 들려주고 악마를 쫓는 십자가 징이 박힌 구두와 행운이 를 신고 총을 가진 머드는 아칸소 깡촌에서 이제 막 삶의 비루함을 깨달아가는 엘리스와 넥본에게 못미더운 아버지하고는 다른 신비로운 매력으로 가득찬 존재로 묘사된다. 그를 통해 소년들은 살인과 범죄, 배신과 음모, 폭행이라는 위험한 어른의 세계를 엿볼 기회를 얻게 된다.
머드의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주술성엔 기독교적인 개념이 포함되어 있지만 (십자가 징이 박힌 구두가 대표적일것이다), 그게 반드시 종교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도 재미있다. 제프 니콜스는 머드를 쫓는, 텍사스에서 넘어온 악당 일당들에게 기독교 근본주의적인 특징을 부여하면서 대립항을 형성한다. 여기서 니콜스 감독은 소위 제도권 종교의 엄숙함 대신 미국 민중들 사이에 오랫동안 전해져 내려오는 문화적 전통에 대해 애정을 보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애정은 다소 결함이 있는 등장 인물들에 대한 존중심으로도 이어진다. [머드]의 이야기는 신화의 형태를 띄고 있지만 캐릭터들은 현실에서 있을법한 결함을 품고 있는 캐릭터들이다. 먼저 현실에 있는 시니어와 갈렌, 마리 리는 현실에 찌들어 팍팍하게 굴며 주니퍼는 보답받을수 없는 사랑의 도피에 겁을 내면서도 내심 머드가 자신의 곁에 영원히 있어주길 원하는 (일부 남성들에게 엉덩이 가벼운 Bitch라고 매도당할수 있는) 이기적인 성격을 여과없이 드러낸다. 물론 중심 인물인 머드 역시 허풍과 허세로 가득한 인물이다. 그의 허풍과 허세는 산문처럼 지루한 현실에 시적인 매력을 가지게 하지만 동시에 무책임함도 품고 있다. 하지만 영화는 그 누구도 그 단점에 매몰되게 놔두지 않는다.
영화는 엘리스와 넥본의 시선을 따라가면서 이들이 현실에 굳어있는 혈연 아버지들 (시니어와 갈렌)과 현실에 발붙이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며 허풍을 거듭하면서 이상적인 사랑만을 찾아다니는 머드 사이를 방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처음엔 머드와 주니퍼를 자신의 사랑에 완벽한 롤모델으로 받아들였던 엘리스는 그러나 머드가 생각만큼 이상적인 인간이 아닌데다 주니퍼의 사랑이 식은데다 자신의 사랑마저 실패하는 좌절을 맛본 후 머드에게 실망과 분노를 표출하게 된다. 이 실망과 분노는, 사랑이 현실에 패배하고 사그라들지도 모른다는 감정과 그런 패배에 대해 아무런 답이 없는 머드에 대한 엘리스의 복잡다단한 심경이 담겨 있다. 직후 엘리스가 뱀에게 물리는 장면은, 사랑이 가지고 있는 치명적인 위험함과 주체할수 없는 분노와 실망이라는 감정에 자제를 잃은 엘리스의 심리를 담고 있다.
역설적으로 이 실망과 분노의 과정을 통해 [머드]의 사려깊음이 드러나는데 바로 머드와 시니어라는 두 아버지로 대표되는 세계가 가지고 있는 진심과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균형을 잡아내려고 하는 점에서 그렇다. 머드는 엘리스가 죽을 위기에 처하자 자신이 위험해지는 걸 무릅쓰고 섬 밖으로 나오는 모험을 펼친다. (이 부분의 구조가 [테이크 쉘터] 마지막을 장식했던 '방공호에서 나가느냐 마느냐'라는 갈등의 구조하고 유사하다는게 재미있다.) 이 모험의 끝에서 머드는 스스로 책임질줄 아는 주니퍼가 감내해야 하는 현실을 인정하면서 감정을 정리하게 된다. 반대로 사랑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린채 살아가던 시니어 부부와 톰, 주니퍼는 다시 한번 사랑의 가능성에 대해 깨닫게 된다. 그리고 아이들은 그 사이에서 사랑과 현실 속에서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할지 깨닫게 된다.
이처럼 [머드]는 너무나 로맨틱하게 사랑의 믿음과 애잔함을 풀어내는 영화이여서 되려 평가절하당할 구석이 있는 영화다. 특히 [테이크 쉘터]에 끝없이 물이 새어들어오는 조각배를 바라보는듯한 절망감을 사랑했다면 말이다. 하지만 [테이크 쉘터]에서 보였던 초현실적인 이미지들을 사실주의적인 배경과 캐릭터에 배합하는 능력과, 일견 성기면서도 어느 순간에 등장 인물들과 사건을 움직여 긴장감을 유지하는지를 아는 제프 니콜스의 재능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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