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오야마 신지의 [달의 사막]은 도입부에서 무기력하게 누워있는 인물들을 보여 준 뒤 달을 아래로 수직 이동하면서 찍은 샷에 타이틀이 뜨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비치 보이즈의 'Caroline No.'가 깔리는 와중에 우리가 볼 수 있는 장면들은 뉴스 클립들과 주인공이 차를 타고 어디론가 이동하는 것, 주인공 가족의 개인사들을 담은 영상과 사진들을 엮은 몽타주들이다. 첫 두 샷이야 그렇다쳐도 영화 내용을 생각해보면 뉴스 클립들의 등장은 조금 이례적이다 할 수 있는데, 아오야마 감독은 이 뉴스클립이라는 거시적인 역사를 담은 영상과 홈비디오와 사진이라는 미시적인 역사를 담은 기록매체들을 엮어서 이 이야기를 일본 사회와 일본인 간의 관계를 그려내려고 하고 있다는 걸 암시하고 있다. 그렇게보면 무력하게 누워있는 두 인물은 영화의 어떤 정서적 상태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을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달의 사막]이 내세우는 주인공 나가이 쿄지는 일본 자본주의의 첨단을 달리고 있는 IT업계의 사장이다. 홍콩에서 온 사업가랑 영어랑 나누는 첫 장면부터 시작해 TV 방송에서 IT 벤처 신화로 소개되는 장면은 그가 일본 사회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분명 쿄지는 물질적으로 보면 누구나 부러워하는 상태지만 인성적으로 보자면 그렇게 닮고 싶지 않은 인물이다. 한마디로 쿄지는 싸늘하고 냉정한 신자본주의 자본가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가 사장 기대에 따르는 건 무리라고 하면서 그만두는 부하 직원에게 하는 "내가 필요한 인간은 일을 하는 인간"이라고 하는 부분과 '컴퓨터는 나같은 시니컬한 히피들이 만들었다'라고 말하는 부분에서는 쿄지의 삭막하고도 즉물적인 가치를 보여주고 있다.
이런 부유하지만 삭막한 쿄지의 상태는 집이라는 공간에서 잘 드러난다. 왜냐하면 쿄지의 집은 가정을 이룬 집이지만 중요한 가족 구성원(아내 아키라와 아이 카아이)이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쿄지는 아무도 없는 집에서 멍하게 앉아서 가족이 행복했던 순간들을 다룬 비디오를 보는 것으로 소일한다. 집은 이제 호텔이나 다름없어진 것이다. 쿄지의 집을 떠난 아키라와 카아이가 머물고 있는 곳은 호텔이라는건 그리 이상하지 않다. 호텔에서 밥을 먹고 카아이가 돌아오기 전에 남창 키이치를 불러 섹스를 나누며 남편 살해 의뢰를 하는 아키라와 그런 모습을 담고 있는 호텔은 쿄지의 집처럼 낯설고도 메말라있다.
여기에 남창 키이치가 개입한다. 그는 심지어 호텔에도 머물지 않고, 손님을 만나 몸을 팔고 돈을 받기 위해 아키라의 호텔과 집을 방문한다. 골판지 상자에서 잠을 자는 키이치는 돈이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쿄지의 다른 면을 보여주는 캐릭터라고 할 수 있는데, 정작 쿄지의 뒤틀린 듯한 속물적인 출세지향적인 가치관에 대해선 적대감을 표현한다. 단적으로 키이치는 쿄지가 자신에게 돈을 주며 아내랑 자달라고 부탁할때 "당신 변탭니까?"라고 대꾸하며 "가족을 위해 울어본적 있냐"고 힐난하듯이 묻는다.
키이치에게 돈은 아버지 세대들에게 기생해 살아가기 위한 도구이지 그 부를 쌓아 미래를 사려는 쿄지로 대표되는 사회 주류적 가치관에 대해 오히려 혐오하는 기색마저 보인다. 키이치가 자신의 골판지 상자를 태워버리고 미친듯이 웃는 장면은 그런 키이치의 '재물'에 대한 태도를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 점에서 [달의 사막]은 공간의 묘사가 인물의 심리와 나아가 일본인의 심리를 보여주는 중요한 장치로 작동한다. 그런 삭막하고 메말라버린 공간 속에서 이뤄지는 관계들은 키이치의 고객이 말했듯이 자본주의의 관계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자본주의의 관계 역시 쿄지의 회사처럼 쉽게 붕괴하고 있다.
[헬프리스]와 [유레카]에서도 다뤄졌듯이 아오야마의 가족은 소위 정상적인 형태를 이루지 못하고 해체된 상태며 개개인은 거기서 무력감과 공허함을 느낀다. 가족은 키이치의 보스 말마따나 '장소가 아니라 사람'이지만 작중 인물 대부분은 그 최소한의 조건조차 이루지 못한다. 이런 붕괴의 징조들은 카아이 엄마를 평소에도 아키라쨩이라는 호칭으로 불러대는 사소한 대사부터 시작해 장인을 비웃는 쿄지에게 염증을 내며 떠나는 쿄지의 동료들, 총으로 아버지 세대에 속하는 쿄지를 굴복시키며 조롱하는 키이치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결국 쿄지의 회사가 붕괴하고 츠요시가 자신을 조롱하는 아버지를 죽이는데서 붕괴는 극에 달하게 된다. [달의 사막]에서는 이 붕괴의 풍경에 기록 매체를 중요한 장치로 다루면서 가족이 행복했던, 과거의 순간들을 담고 있는 이미지들에 집착하는 개인들을 통해 과거에 집착하고 일본인들의 헛헛한 심정들을 드러내고 있다.
이런 가족의 분열 속에서 부모 세대는 종종 유령처럼 등장해 사람들을 괴롭히곤 한다. 아오야마 신지는 이런 부모 세대를 디앤 아버스와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를 인용해 유령처럼 묘사한다. 동시에 중반부에 이 유령들을 오즈 야스지로가 즐겨 다뤘던 일본 전원 공간과 다다미 샷에 밀어넣고 은밀하게 붕괴를 조장하고 있다. 이 영화가 오즈가 사랑했던 1.33:1이라는 스탠더드 사이즈로 찍힌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아키라가 시골집 마루에 기대서서 바깥을 보는 동안 유려하게 날아올라 패닝해 들어왔을때 부모의 유령이 은근슬쩍 들어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장면은 아름다우면서도 오싹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이전과 달리 아키라가 그 유령들을 마주보면서 영화는 붕괴된 잔해 속에서 다른 방향으로 나가기 시작한다. 바로 신자본주의 붕괴 이후의 새로운 경제 체제와 가0족의 재건에 대한 문제다. 아키라와 카아이는 오랫동안 비어있던 집을 치우고 닭을 키워 팔면서 아키라와 카아이는 기존 금융자본주의의 생태나 혜택에서 벗어난 경제 활동을 하는데 집은 더 이상 호텔도, 폐허도 아닌 새로운 생기와 빛이 스며든다. 하지만 이런 삶을 꾸려가는 과정은 부모 세대로 회귀도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삶을 꿈꾸는 행태에 가깝다.
그러나 아키라는 여전히 이 가정을 복원하는데에 주저하는 모습을 보인다. '카아이랑 둘이서 살기로 했다'라고 거절하는 아키라의 모습은 쿄지의 선례처럼 가정이 실패할것이라는 주저함이 담겨있다. 반대로 쿄지와 키이치는 그 가정에 들어가고 싶어서 초조해한다. 이런 주저함과 초조함은 결국 마지막에 쿄지를 죽이려고 하는 키이치로 폭발하게 되는데 여기서 아키라는 쿄지에게 '같이 살면 안되냐'라는 질문을 던져 반전을 맞이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아키라가 쿄지를 마지막에 '타인'으로써 받아들인다는게 재미있다. 결국엔 아오야마는 혈연으로써 가족 복구가 아닌, '타인들끼리 유대로써' 가족을 이루고 싶었던 것일까?
[달의 사막]의 문제는 이런 문제의식들을 풀어가는 서사들과 장면들 간의 합이 지나치게 느슨하고 평탄하게 흘러간다는 점이 있다. 전작 [유레카]도 다소 성긴 구성이였지만 한 곳에 고여있는 상처의 시간과 풍경을 질기게 관찰하면서 생기는 강력한 정서적 힘이 관객을 단단히 얽어매었다면 [달의 사막]은 정서적 힘을 대부분을 포기하고 건조하고 날 선 느낌으로 이끌고 간다. 그런데 그 건조함이 생각보다 효과적이지 않다. 무엇보다 아키라 부분과 쿄지와 키이치 부분이 그렇게 잘 엮여 있진 않고 조금 투박하고 주제에서 벗어난 현학적인 대사도 눈에 보인다. 때문에 영화는 아오야마가 의도한 바와 달리 그저그런 홈드라마처럼 보이기 십상이다. 이 점이 칸 영화제에서 좋은 평을 받지 못했던 것 아닐까. 걸작이나 수작이 되기엔 부족한 점이 눈에 보인다.
하지만 오즈 야스지로의 전통을 공포 영화의 요소로 재전유하고자 하는 아오야마 신지의 야심이라던지 그 야심을 실현시키는 타무라 마사키의 유려한 카메라에 담긴 도쿄와 시즈오카 두 공간, 특유의 건조하고 메마른 분위기에 담긴 날카로운 통찰는 여전히 즐길만한 거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게 좀 더 꼼꼼히 엮였더라면 좋았을건데, 라는 아쉬움이 남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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