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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등뼈 [El Espinazo Del Diablo / The Devil's Backbone] (2001)

giantroot2013. 10. 20. 12:21


악마의 등뼈 (0000)

The Devil's Backbone 
8.2
감독
길예르모 델 토로
출연
마리사 파레데스, 에두아르도 노리에가, 페데리코 루피, 호세 마누엘 로렌조
정보
공포 | 멕시코 | 106 분 | 0000-00-00

기예르모 델 토로의 [악마의 등뼈]는 유령의 기원과 감정을 논하며 시작한다. 그는 여기서 "죽은 건 어쩌면 살아있는 것처럼 보인다."라고 정의한다. 도입부의 내레이션에서 알 수 있듯이 델 토로의 유령들은 구로사와 기요시의 유령들처럼 산 자의 장소와 자신의 흔적을 서성이며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그렇다면 왜 [악마의 등뼈]의 유령 소년 산티는 산 자의 공간을 서성이고 있는 것일까?

확실히 집어야 할 부분이 있다. 기요시의 유령들이 지극히 도회적인 공간에 배치되어 있었다면 델 토로의 유령들은 역사의 공간에 배치되어 있다. [악마의 등뼈]는 1930년대 스페인 내전 도중 고아원로 찾아간다. 후견인과 함께 살던 카를로스는 고아원에 맡겨진다. 조만간 찾아오겠다고 말하는 후견인이지만 우리는 그의 말이 이뤄질수 없는 거짓말이라는걸 알고 있다. 카를로스를 따라 들어온 관객들은 고아원 마당에 떨어진 폭탄을 발견한다.

그 후로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익숙한 이야기들이다. 적어도 [소공자]라던가 [몬테크리스토 백작] 같은 19세기 유럽 대중문학에서 자주 나왔던 소재들이다. 기숙사의 우정, 숨겨진 비밀, 극도로 콘트라스트가 뚜렷한 악역, 억울한 죽음과 누명... 하지만 [악마의 등뼈]는 활극보다는 한숨과 멜랑콜리로 가득찬 영화다. 유령 이름부터가 한숨 짓는 아이가 아닌가? 물론 탐색과 모험이 등장하긴 하지만 그 모험이 가지고 있는 활기는 곧 폭탄과 손괴의 이미지와 무력함으로 무너져내린다.

전작 [크로노스]에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그걸 받아들이는 담담함을 생각해보면 이런 델 토로의 시선은 그리 놀라운건 아니다. 하지만 [악마의 등뼈]에선 미국과 멕시코(라틴 아메리카) 간의 정치적인 은유가 인물들 설정 사이에 은밀하게 숨겨진 [크로노스]랑 달리 무력함의 근원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카를로스는 전쟁으로 부모와 후원자를 잃어버리고, 다른 아이들도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다. 하신토는 전쟁을 통해 이득을 챙기기 위해 무자비하게 폭력을 휘두르고 아이들을 지키고자 하는 어른들은 하나둘씩 죽어간다. 마지막 안식처였던 고아원조차 무너진다.

산티는 그 속에서 희생당한 제물이다. 물론 산티의 죽음이 직접적으로 스페인 내전하고 관계가 있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산티의 죽음은 어떤 탐욕과 무자비한 폭력 속에서 이뤄졌다는 점에서 프랑코 정권이 민중들과 좌파 투사들에게 가한 폭력을 떠올리긴 어렵지 않다. 동시에 떨어진 불발탄은 폭탄의 그 기능을 잃었지만 여전히 아픈 폭력의 기억을 떠올린다는 점에서 산티의 유령과 닮은 점이 있다. 그렇기에 산티는 폭탄처럼 끊임없이 산 자의 공간을 방황한다.

이런 산티에 대해 가지고 있는 하이메의 죄의식은 그런 무력함을 조장하게 하는 세상에 대한 대항이다. 죽은 자를 기억을 하는 것으로 자신보다 강한 악행을 용서하지 않고, 망자를 추모하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려는 행위인 것이다. 카를로스는 그의 고통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 어른으로써 자라게 된다. 그러나 하이메나 카를로스 역시 아이이기 때문에 저항은 우울하고 때론 실패로 돌아가며 궁극적으로는 슬픔으로 가득하다. 결국엔 그에 대한 처벌 역시 그들의 손이 아닌, 이 세상의 존재가 아닌 '한숨 짓는 유령'에게 넘어간다. 그리고 아이들은 떠나간다. [악마의 등뼈]는 이런 아이들이 도무지 할 수 없는 무력함과 슬픔으로 가득하다. 

심지어 그 무력함은 악당인 하신토에게도 언뜻 언뜻 그늘을 드리운다. 성적 욕망에 충실하고 금괴라는 실재적이고 현실적인 목표를 위해 가차없이 행동하는 하신토는 그러나 고아로 출발해 성공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는 하신토는 실제 민중들이 가지고 있는 현실적인 욕망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또한 정말로 사랑했던 연인 또한 죽이고 싶지 않지만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죽이는 비극적인 면모를 품고 있기도 한다.  그렇기에 동료들에게 미친 놈 소리 듣고 유령에게 익사하는 하신토의 최후는 카타르시스를 담고 있으면서도 씁쓸하다. 하신토는 성공하고 싶다는 욕망으로 망가져버린, 현실적으로 있을법한 캐릭터이기 떄문이다.

영화의 마지막은 산 자인 아이들이 떠나고 죽은 자의 공간으로 화한 고아원을 지키는 새로운 유령인 카사레스의 모습으로 막을 내린다. 아이들은 이제 죽은 자의 영토를 떠나 산 자가 있는 곳으로 정처없는 여정을 떠난다. 하지만 영화에서도 언급되듯이 고아원과 마을은 꽤 먼데다 황폐한 길을 거쳐 가야 한다. 아이들의 슬픔과 고통은 고아원을 떠나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카사레스는 남아서 쓸쓸히 그들을 떠나는 걸 지켜본다. 델 토로는 이에 스페인 내전에서 패한 민중들과 좌파들의 암울한 미래를 암시함과 동시에 그들을 위로하고 있다. 

[악마의 등뼈]는 델 토로의 뿌리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는 영화이며 역사의 비극을 기초로 한 애잔한 감정과 고전적인 모험/고딕 호러로 쌓아올린 수작 고딕 호러라 할만하다. 동시에 [벌집의 정령]에서 비롯된 전후 스페인 영화에 담긴 환상적이면서도 억압된 분위기가 녹아있는 영화기도 하다. 어느 쪽이든 이 사려깊은 기운은 델 토로가 [크로노스]와 [미믹]을 거치며 얻은 성장과 사려깊음이 배여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