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오 바바의 [사탄의 가면]은 공식적으로 이탈리아 호러의 시조로 불리는 영화다. 지알로로 대표되는 무자비하면서도 과시적인 슬래셔로 유명해진 이탈리아 호러 영화였지만, 처음부터 지알로로 시작한 것은 아니였다. 사실 [사탄의 가면]은 고골리의 [비이]를 원작으로, 해머 영화사가 만들어놓은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고딕 호러에 가까운 영화다.
허나 영화는 고골리의 [비이]하고는 많이 동떨어져 있다. 외려 이 영화는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나 무르나우의 노스페라투를 닮아있는데 우선 마녀와 영주의 딸의 존재가 분리가 되었으며 신학생 무등을 타고 달리는 노파 같은 장면은 거의 원형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각색이 되어버렸다. 결정적으로 이 영화는 [비이]와 달리 해피 엔딩으로 끝난다. 이 영화가 해머 영화사의 영향을 받아 만들었으니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원형을 알아보기 힘들다 해도 [사탄의 가면]은 여전히 잘 먹히는 호러 영화다. 템포가 살짝 느리고 주인공이 다소 갑갑하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각본이 상당히 잘 짜여져 있으며 본격적으로 궤도에 오르면 양질의 서스펜스와 섬뜩함을 제공해준다. 영화의 호러 씬도 만족스러운데, 특수효과나 고어 자체는 지금보면 낡은 티가 나긴 하지만 피를 먹으며 서서히 자기 모습을 찾아가는 마녀 아사의 모습이라던가 납골당 세트의 조명 설계는 지금봐도 상당히 매혹적이다.
무엇보다 흑백 화면을 무척 잘 쓴 호러 영화기도 하다. 흑백 필름이 가지고 있는 번뜩이는 콘트라스트로 성과 마을, 묘지들을 돌아다니며 강한 질감을 제공하고 있는데, [사냥꾼의 밤]이나 표현주의 영화들에게 영향을 충실하게 수행해내는 마리오 바바만의 재능이 돋보인다. [덤불 속의 검은 고양이]가 그렇듯이 [사탄의 가면]은 흑백 호러 영화가 할수 있는 독특한 아름다움이 있다.
캐릭터들과 그것을 연기하는 배우들도 흥미롭다. 희번뜩이는 눈동자가 인상적인 바바라 스틸의 1인 2역 연기는 강렬한 성적 매력을 휘두르는 악녀 아샤와 처연하고 연약한 여인 카티야이라는 두 가지 속성을 부여하면서 원작의 마녀가 가지고 있었던 이중적인 여성성을 표현해내고 있으며 해석할 거리도 충분하다. 특히 성적으로 당당하고 자기 욕망에 충실한 아샤는 어쩔수 없이 타자로 남음에도 불구하지만 그 강렬한 캐릭터성은 쉽게 부정하기 힘들다. 아무래도 바바라 스틸이 중심이 되는 영화이긴 하지만 거창한 바로크 연기를 펼치는 영주라던가 홀린채로 교묘한 섬뜩함을 펼치는 크루비얀 박사도 충분히 영화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사탄의 가면]을 이탈리아 호러의 전범이라 하기엔 미묘할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이탈리아 호러 영화사로만 놓고 보자면 고딕 호러는 그렇게까지 주류는 아니였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그 점을 제하더라도 [사탄의 가면]은 한 나라의 장르 영화의 출발로 삼기로 제법 그럴싸한 출발이였다고 생각한다. 또 이 영화는 네오리얼리즘의 영향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미학을 펼치기 시작헀던 1960년대 이탈리아 영화사를 더듬는데도 중요한 자료가 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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