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eper Into Movie/리뷰

스플라이스 [Splice] (2009)

giantroot2013. 10. 10. 02:19



스플라이스 (2010)

Splice 
5.2
감독
빈센조 나탈리
출연
애드리언 브로디, 사라 폴리, 델핀 샤네끄, 아비게일 추, 데이빗 휴렛
정보
SF, 판타지, 스릴러 | 캐나다, 프랑스, 미국 | 104 분 | 2010-07-01
다운로드

큰뿌리: 그래서 돌아왔습니다.

폴라곰: 이번에 같이 리뷰할 작품은 [스플라이스]이군요. 

큰: 뭐 그렇죠. 감독은 빈센초 나탈리인데 세련되고 기발한 호러 데뷔작인 [큐브]로 한때 큐브 열풍을 불게 했던 장본인입니다. 정작 본인은 속편를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닌지 잽싸게 [큐브]를 떠나 새로운 영화들을 하나 둘 씩 만들었죠. 다만 영화 제작에 좀 난항을 겪는 스타일인지 이번 [스플라이스]하고 [낫씽] 사이엔 6년이라는 공백이 있었습니다. 논 건 아니였는데...

폴: 영화계엔 그런 감독들 많죠. 게다가 빈센초 나탈리가 영화를 만드는 스타일도 SF/호러 상상력에 기반을 둔 스타일이여서 제작 투자 받기가 상대적으로 힘들기도 하고.

큰: 그래도 이번 [스플라이스]는 이젠 SF/판타지/호러 영화 계열에선 거물급 프로듀서가 된 기예르모 델 토로가 긍휼한 자비를 베풀어서 만든 모양이더라고요. 여전히 때깔 부분에선 캐나다에서 찍은게 눈에 보이긴 합니다만^ ^

자 그렇다면 이야기를 한번 해볼까요. 구조 자체는 전형적인 신 생명체 발명 이야기입니다. 엘사와 클라이브 (유니버설판 프랑켄슈타인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합니다.)라는 유전공학자 커플이 있습니다. 영화가 시작할 무렵이면 진저와 프레드라는 신 생명체(?)를 발명해 이미 공을 인정받았고 서로 사이도 좋아보이는 완벽한 커플이죠.

허나 이 커플은 야심이 있습니다. 좀 더 고차원적의, 지능이 있는 생명체를 만들고 싶어하는거죠. 여기까지만 들은 이런 장르에 빠삭한 관객들이라면 이 커플이 어떻게 할 것이고 어떻게 흘러갈지 엘사의 득이양양한 표정만으로도 파악하실수 있을겁니다. 그렇게 등장한 드렌도 그런 흐름에 맞춰져 있죠. 다만...

폴: 가족 드라마가 끼어들죠. 아니 일종의 대안 가족이라고 해야 하나.

큰: 사실 이 부분도 선례가 아주 없는건 아닙니다. 당장 [에일리언] 시리즈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몇 번 다뤄지기도 하죠., 빈센초 나탈리와 공동 각본가 두 명은 이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끌고가고 있어요. 우선 엘사와 클라이브 캐릭터들이 재미있습니다. 성격도 세고 자기 욕망에 충실한 캐릭터기도 하지만 두 커플의 행복함 뒤엔 엘사의 생식/번식에 대한 거부감이라는 문제와 엘사 개인의 트라우마가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는 걸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는 작중에서 이어지는 대안 가족 드라마와 드렌의 생태하고도 유기적으로 맞물려 돌아가고 있죠.

폴: 엘사의 그런 번식에 대한 거부감은 자신도 어머니 같은 괴물이 될까하는 두려움에서 나왔다는게 명백하죠. 그러던 중 드렌이 등장한겁니다. 초반에 인공 자궁에 손이 껴서 고생하는 엘사의 모습을 보면서 출산 과정을 떠올리지 않는건 불가능할겁니다. 그런 심리적이고 복합적인 문제들이 직설적이지만 유치하지 않은 이미지 (이렇게 축조하는게 상당히 어렵죠.)와 상징들로 표현되는게 초기 데이빗 크로넨버그 영화를 닮았죠?

큰: 맞습니다. [스플라이스]는 크로넨버그로 대표되는 캐나다 장르 영화의 좋은 예시라 할 수 있을겁니다. [브루드] 전후의 크로넨버그 영화라고 할까요. 북미 영화계의 변방인 캐나다에 처박혀서 냉정하고 예리한 말투로 불편한 이야기들을 풀어내던 그런 영화들 말입니다.

엘사가 드렌에게 집착하는 것은 그런 기존의 번식과 훈율을 하지 않고도 충분히 애정을 쏟을수 있는 존재였기에 가능했다고 영화는 설명합니다. 일리있는 설명입니다. [케빈에 대하여]가 지적했듯이 모든 여자가 모성애를 자연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건 아니며 심지어 연기해야 하는 여자들이 있다는 걸 고려해보면 말이죠. 엘사도 에바와 비슷한 부류 아니였나 싶네요. 그 점에서 [스플라이스]의 중심은 엘사에게 맞춰져 있습니다

큰:  맞습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강렬하게 자신을 활활 태우는 캐릭터라고 할까요 여튼 이렇게 엘사와 클라이브, 드렌으로 이뤄진 가족'놀이'가 본궤도에 오르면 관객들은 뭔가 잘못된 것 같아...라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분명 행복해보이지만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드렌의 잔혹한 면모들은 꾸준히 드렌이라는 생명체가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을수 밖에 없는 '문제점'들을 상기시키죠. 

폴: 뭔가 나와 다른 것 같은, 그런 이질감과 불가해함이라고 해야 할까요.

큰: 네 맞습니다. 분명히 자식과 같은 존재지만 도무지 마음놓고 볼 수 없는 존재죠. 그런 점에서 [스플라이스]와 [케빈에 대하여]는 생물학적 자식에 대한 타자적인 공포감이랄까, 그 부분을 원동력으로 삼는 영화입니다. 다만 [케빈에 대하여]는 어떤 감정이입이 불가능한, 정신적 병리를 타자적인 공포를 설정했다면....

폴: 훨씬 직설적이죠. 성기 머리를 달고 있지만 애정을 유발케 하는 괴물 드렌. 

큰: 후반에 나오는 소반전 중 하나는 그 부분을 확실히 짚어주고 있습니다. (힌트. 엘사가 어떻게 그 어려운 상황 속에서 난자를 기부받았을까요?) 영화는 이런 타자적인 공포, 까놓고 말하면 뭔가 "존나" 잘못된듯한 분위기를 극단으로 밀고갑니다. 예 그렇습니다. [스플라이스] 후반부는 SF적인 극한과 막장 드라마를 섞은 비극이에요. 후반부로 가면 관객들 표정들이 자연스럽게 우그러지죠 ^ ^ 심지어 이 영화는 대중적인 SF라면 무시했을법한 그런 기분 나쁜 설정도 대놓고 보여줍니다. 

하지만 분명히 짚어야 할 점은 이런 불편함은 철저히 냉정하고 깔끔한 톤으로 이뤄져 있다는 것입니다. 절대로 찌질찌질한 톤으로 나 잘났다 식으로 이뤄져 있지 않아요. 대사나 그것을 받아 넘기는 배우들의 연기는 지성적이고 각이 잡혀 있고, 캐릭터들은 분명하게 살아 움직이죠. 심지어 드렌도 그렇습니다. [스플라이스]는 자신이 뭘 말하려고 하고 있고 거기까지 가기 위해 무슨짓이라도 저지를 영화입니다.

폴: 영화 끝까지 특유의 냉정한 논리적인 실험으로 관객을 불편한 지점으로 몰아가는, 드문 파워가 있는 SF 영화입니다만 클라이맥스의 연출들이 돈이 없어서 티가 난다는건 안타깝습니다. 내용 자체는 문제가 없는데 그전까지 끌어온 템포와 달리 좀 후다닥 해치운다는 느낌이 강해요.

큰: 어쩔 수 없었죠. 아무리 델 토로라도 저런 내용으로 더 끌어오는 건 무리였을거고. 그래도 그 정도면 준수하게 마무리 지은 편이라 전 생각합니다. 결말의 힘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요.

폴: 연기자들 이야기를 하면 사라 폴리가 막 신난듯이 연기를 하고 있더라고요. 

큰: 확실히 [스플라이스]의 중심은 엘사입니다. 물론 에이드리언 브로디의 연기도 훌륭합니다만 기본적으로 엘사의 장중하고 복잡한 연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보조해주는 역에 충실합니다. 후반부에 드렌과 섹스를 하는 장면에선 자기 기량을 집중하고 있지만요. 엘사는 뭐랄까 참 쉽게 타자화될수 있는데 이 정도로 올려놓은걸 보면 각본진들이 캐릭터를 잘 잡아놨다는게 느껴집니다.

폴: 그런 점에서 데이빗 크로넨버그 영화를 떠올렸습니다. 

큰: 맞습니다. [스플라이스]는 데이빗 크로넨버그가 창시한 캐나다 장르 영화의 표본이라 할 수 있을겁니다. [브루드] 전후의 크로넨버그 영화라고 할까요. 북미 영화계의 변방인 캐나다에 처박혀서 냉정하고 예리한 말투로 징그러운 설정들을 풀어내던 그런 영화들 말입니다.

폴: 전 사라 폴리가 크로넨버그 식 연기를 보여준다는게 좋긴 했지만... 빈센초 나탈리가 크로넨버그급이 될까요?

큰: 적어도 [스플라이스] 정도라면 그렇게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이 사람은 양질의 장르 영화를 통해 인간이란 생명체에 대한 사변적인 실험을 극한까지 일궈낸다는 점에서 닮았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폴: 요샌 [혼령의 집]이라는 공포 영화를 찍었죠? [미스 리틀 선샤인]의 꼬맹이가 나오는...

큰: 그럭저럭 볼만한 준작 호러 영화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만... 뭐 아무래도 오랫동안 영화 못 찍는게 싫어서 이때다 하고 해치우는 느낌으로 만들지 않았을까요. 여튼 이 사람에게 좀 더 많은 기회가 주어줬으면 좋겠습니다.

폴: 큰뿌리님은 만족스러웠던 것 같군요. 사실 저도 후반부에 표정이 일그러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영화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힘과 사변성을 무시하고 싶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때문에 더욱 더 강한 인상이 남은 걸지도...

큰: SF팬이라면 추천드리고 싶네요. 다만 내용이 불편한데다 스펙타클 부분에서는 약간 딸리는 건 감안하시고 보시는게 좋을겁니다. 그리고 여름용 블록버스터 영화 절대 아니에요.

폴: 홍보는 그렇게 되었죠? 뭐 SF 호러 영화는 맞긴 맞습니다만 [프로메테우스]식으로 받아들이기엔 관객들의 신경을 긁는 불편한 지점이 워낙 강해서 관객들이 속았다라는 느낌을 받기 딱 좋은 홍보인것 같습니다.

큰: 뭐 홍보하는 사람들도 먹고 살아야 하니깐요. 아쉽긴 하지만. 그럼 다음에 뵙죠.

폴: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