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을린 사랑 (2011)
- 감독
- 드니 빌뇌브
- 출연
- 루브나 아자발, 멜리사 데소르모-풀랭, 막심 고데트, 레미 기라드, 압델가포르 엘라지즈
- 정보
- 드라마 | 캐나다, 프랑스 | 130 분 | 2011-07-21
(강력한 누설이 있으니 영화 보실 분들은 피해주세요.)
많은 서사들이 다양한 질문들을 다뤘지만 '인간사에 잠식한 끊을 수 없는 비극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가?' 만큼 사람들의 심장을 움직이게 하는 서사도 별로 없을 것이다. 은 그리스 비극들, [돌아가는 펭귄드럼], [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 [유레카]... 더 꼽으라면 더 꼽을수도 있다.
드니 빌뇌브의 [그을린 사랑]도 그런 끊을수 없는 악순환과 비극에 잠겨 있는 영화다. 캐나다 몬트리올에 사는 아랍계 쌍둥이에게 얼마전 돌아간 어머니의 유언이 전해진다. 형과 아버지에게 유언을 전달하기 전까지는 묘지에 비석을 세우지 말라는 변호사 장의 말에 어안이벙벙해진 시몽은 거부하지만 잔느는 찾아나서기로 한다. 어머니의 나라로 떠난 잔느는 곧 충격적인 진실을 알게 된다.
동명 희곡을 원작으로 한 [그을린 사랑]의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미스터리다. 영화는 첫 장면부터 아무런 설명도 없이 미스터리 단서의 일부를 던지며 관객의 호기심을 끌게 한다. 그 후 영화는 쌍둥이가 과거를 찾아나서는 미스터리 서사를 중심으로 과거의 어머니 나왈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서로 엮으면서 천천히 미스터리의 문을 열어젖힌다.
초중반만에 제시되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아들마저 잃어버리고 사랑과 관용을 포기하고 복수를 다짐하는 나왈의 과거만 해도 끔찍하고 멜로드라마적인 비극으로 가득차있다. 드니 빌뇌브 감독은 이 과정을 다소 도식적인 플래시백 사용을 제외하면 '종교'와 '인종'이 만들어내는 역사의 쳇바퀴에 끼어 신음하는 인간사의 비극과 아픔을 잔재주를 부리지 않고도 숨도 쉴 수 없는 공력을 자랑한다.
하지만 원작자 와시디 모와드와 드니 빌뇌브는 여기서 더 나아가 후반부에 이 비극을 뛰어넘는 엄청난 비극을 반전으로 설치해놓는다. 특히 빌뇌브 감독은 이 반전이 가져다 주는 충격을 특정한 몇몇 장면과 설정을 사전 정보 없이 던져놓고 영화 전체를 감싸고 있는 미스터리에 대한 답이 어느정도 수면에 떠올랐을때 다시 맞추는 형식으로 풀어내고 있는데 상당히 효과적이다.
이 반전 때문에 이 영화의 용서와 화해에 대한 메시지는 더욱더 관객의 가슴을 옥죄게 한다. 비슷한 주제를 다뤘던 다른 영화의 주인공들과 달리 [그을린 사랑]의 증오와 공포는 인간 무의식 속에 살아있는 금기를 쑤시고 있기 때문에 헤어날수 없어 보이기 떄문이다. 하지만 그 때문에 나왈의 마지막 유언은 더욱더 사무치게 다가온다. 한때 자신도 증오와 공포로 살아왔지만 결국 이해하고 받아들인 인간의 위대함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또 이 반전은 단순히 충격 효과 이상의 기능과 예술적인 일관성을 지니고 있다. 이 일관성은 영화 초반부에 알기를 거부하고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시몬과 잔느가 공부하는 이론수학 강의를 통해 제시된다. "(이론 수학에서는) 해결 불가능한 문제들이 또 다른 해결 불가능한 문제를 불러오게 되죠. 사람들은 여러분이 파고드는 일이 시간 낭비라고 하겠죠. 여러분은 그들을 설득할 수도 없어요. 그것은 엄청나게 복잡한 일이 될 거니까요." 즉 [그을린 사랑]은 비극을 뛰어넘는 또다른 비극/진실을 알기 위해 아무런 장비없이 수직낙하를 기어이 선택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의 등장 인물들은 다들 왜 알려고 하느냐, 알지 않는게 나을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을린 사랑]은 이에 대해 알아야만 한다고 단호하게 대답한다. 그것이 1+1=1이라는 불가능한 명제를 불러온다고 해도, 수학과 달리 명쾌한 공식도 없는 해결 불가능한 문제를 불러온다고 해도, 그것이 한 사람이 약속한 사랑을 실행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라고 [그을린 사랑]은 말한다. 그 점에서 [그을린 사랑]은 조셉 캠벨의 [천 개의 얼굴을 가진 영웅]에 제시되는 영웅 서사에 충실한 영화라고도 할 수 있다. 즉 시몬과 잔느는 어머니의 유언으로 1+1=2의 세계에서 1+1=1의 세계로 넘어가 진실을 알고 깨달음을 얻고 1+1=2의 세계에서 1+1=1의 비극에 빠져있는 자를 구원하는 것이다.
어찌보면 이 영웅 서사는 드니 빌뇌브 감독 자신에게도 어울리는 말일지도 모른다. 그가 90년대에 데뷔했을때부터 퀘벡 영화의 신성이라 불릴 정도로 뛰어난 감독이였다고 한다. 하지만 모종의 이유로 그는 9년동안 영화를 만들지 못했다. 마침내 그가 오랜 침묵 끝에 [폴리테크닉]과 [그을린 사랑]을 가지고 돌아왔을때 사람들은 그를 따뜻하게 반겨줬다. 그처럼 [그을린 사랑]은 앞으로도 그의 커리어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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