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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규 [叫 / Retribution] (2006)

giantroot2013. 8. 26. 18:40



절규 (0000)

Retribution 
5.7
감독
구로사와 기요시
출연
야쿠쇼 코지, 코니시 마나미, 하즈키 리오나, 이하라 츠요시, 히라야마 히로유키
정보
미스터리 | 일본 | 105 분 | 0000-00-00


(누설이 있습니다.)


쿠로사와 키요시의 [절규]는 그야말로 슈퍼 호러 쿠로사와 키요시 대전이라 할만한 영화다. 우선 [큐어]의 야쿠쇼 코지와 그가 연기했던 신경증과 강박증에 시달리는 형사, 불연속적으로 이어지는 평범한 자들의 연쇄 살인 사건이 있다. 세상의 법칙이 붕괴하는 과정을 다뤘던 [카리스마]도 있고 죽음과 영원한 고독 속에 갖혀 사람들과 시스템을 유혹하는 [회로]의 귀신도 있다. 심지어 끝없이 인간에게 죄책감을 일깨우는 [강령]의 귀신도 슬그머니 나타난다.


따라서 이 요소들을 모두 종합하면 이런 내용이 된다. 현대 일본 도쿄에서 바닷물로 질식시키는 살인사건 일어나고 야쿠쇼 코지가 연기하는 형사 요시오카 노보루가 이 사건을 담당하게 된다. 하지만 살인 현장에서 요시오카가 가지고 있던 코트의 옷 단추와 집에 있는 전기 코드와 똑같은 종류의 교살용 전기 코드가 발견되면서 분위기는 반전된다. 거기다 붉은 옷을 입은 여자 귀신이 요시오카 앞에 나타나 네가 날 죽였다고 비난한다. 비슷한 사건이 계속 이어지고 요시오카는 혼란에 빠진다.


[큐어]의 x자와 라이터 불빛, [카리스마]의 나무, [회로]의 검은 얼룩처럼 쿠로사와 키요시 호러 영화에는 평범하지만 귀기에 찬 세트피스들이 계속 등장해 인물들을 광기로 몰아넣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절규]에서는 바닷물이 그렇다. 이 바닷물과 웅덩이는 기괴한 살인 사건에 어김없이 등장하고 묘한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특히 키요시는 예전작들이 그랬듯이 질식해 죽어가는 피해자들을 메마르고 섬뜩한 안무로 연출하며 광기에 엑셀레이터를 밟는다.


그리고 귀신이 있다. [절규]가 J 호러에 대한 비평이라 부를 수 있다면 이 하즈키 리오나 연기자가 연기한 이 붉은 옷의 귀신이 평범한 J 호러 귀신과는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이 귀신은 어처구니가 없다. 흰 소복도 입지도 않고 뻔뻔하게 얼굴을 가리지 않고 큰 눈을 부리부리하면서 고속 촬영으로 머리를 휘날리며 다가오고 얼굴 빼꼼히 내밀며 대화를 하고 심지어 슈퍼맨처럼 휙 뛰어내려 저 밖으로 날아간다. (;;) 


척 보기만 해도 웃게 만드는 이 귀신은 그러나 생각 이외로 무시무시한 존재감과 귀기를 자랑한다. 먼저 하즈키 리오나 연기자의 퀭한 눈과 낮은 톤으로 정중한 위협을 가하는 연기가 상당히 효과적이기도 하고, 귀신을 이끌어내는 키요시 감독의 리듬감도 상당히 뛰어나 덕을 보는 것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귀신은 양산형이 아닌 뛰어난 예술가의 철저한 일관된 미학으로 만든 귀신이기 때문이다.


이 귀신은 우리가 호러 장르에 바라던 규칙을 무시하고 관객의 불안함을 파고드는 귀신이다. 방금 언급한 슈퍼맨 장면도 막상 보면 요시오카가 집 밖을 뛰쳐나와도 당당하게 나와 요시오카를 비웃듯이 세상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 때문에 이뤄 말할 수 없는 강렬함을 남긴다. 즉 이 영화가 안겨주는 코미디를 볼때 웃는 웃음하고는 다른 상식을 벗어난 그 무언가에 압도당해 어헛;;하고 진땀을 흘리며 웃게 되는 쪽에 가깝다. 개인에게 머물지 않고 온갖 장소에 출연하는 이 귀신은 '장르의 법칙'에 속하지 않는다. 오히려 '세계의 법칙'이 되어간다. 그것도 묵시록을 이끌어오는 법칙. 이 점에서 [절규]의 귀신은 [카리스마]의 나무에 가깝다.


이 묵시록은 을씨년스러운 영화의 배경하고도 엮여 있다. 원래 바다였던 곳을 간척을 했다는 설정과 아까 언급했던 바닷물이라는 세트피스는 묘한 이미지를 연상케 한다. 바다가 호시탐탐 간척지(의 사람들)을 노리고 있는 이미지다. 물, 특히 바다가 죽음, 여성성, 망각하고 연관이 있는 걸 생각해보면 [절규]의 바다는 '여성 귀신'과 동일시 할 수 있을것이다. 이 바닷물은 끊임없이 땅의 사람들을 노리고 침입하려고 애쓴다.


그렇다면 이 귀신이 왜 땅에 침입해 사람을 죽이려고 하는가? 바로 자신을 망각했다는 고독과 분노다. 이 고독과 분노는 쿠로사외 키요시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익숙한 제재다.  다만 [절규]에서는 전작에선암시적으로만 드러났던 망각을 조장하는 일본 사회의 역사적/사회적 맥락이 상당히 노골적으로 드러나있다. [회로]의 귀신들은 단순히 망각 속에서 함께할 동료들을 원했다면 [절규]의 귀신은 15년전 페리에서 자신을 보고도 잊어버린 사람들에게 '복수'를 한다. 귀신이 죽은 건물이 일본 제국주의 시절에 지어진 정신병동이였고 거기서 잔학한 체벌이 일어났다는 설정은 이 도시는 자꾸 변하고 갈아엎는다는 하루에의 대사와 맞물려 지금 과거를 잊고 미래에만 몰두하고 있는 일본 사회의 병리적인 정신 상태를 드러내고 있다.


그 점에서 [절규]의 결말은 평온함과 섬뜩함을 동시에 안겨준다. 일련의 연쇄 살인 사건이 요시오카랑 관련이 없다는게 밝혀진 후 요시오카는 마침내 귀신의 과거를 알아내게 된다. 그리고 귀신에게서 "당신'만' 용서해준다"라는 말을 듣고 집에 돌아오지만 곧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된다. 자신이 사랑하던 하루에를 죽였다는 사실을. 그 사실을 깨닫고 절망하는 요시오카에게 붉은 옷을 입은 하루에가 나타나 담담히 "당신은 미래만 바라봤고 그렇기에 날 죽였지만 별로 상관은 없다" 식으로 말한 뒤 항상 하던 식으로 집을 떠나려고 하는데 그 모습이 귀신이 떠날때랑 비슷하다. 이에 요시오카는 과거는 잊고 미래를 생각하며 다시 시작하자고 애원하지만 하루에는 그냥 떠나버린다. 요시오카는 두 여자의 뼈를 주워 나오는데 도쿄는 이전과 달리 황폐해져 있다. 거기에 "나는 죽었습니다. 그러니 모두 죽어주십시오."라는 귀신의 말이 나직하게 깔린다.


여자-귀신들의 불운한 '과거'를 잊어버리지 않고 뼈를 주워 수습한다는 점에서 요시오카는 다른 이들과 달리 과거를 받아들였다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요시오카는 여자-귀신에게 죄를 저지른 가해자이기도 하며 딱히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지도 않다. 그렇게 혼자만 용서받은 죄인 요시오카는 모두가 사라진게 분명한 도쿄를 떠돈다. 요시오카는 이제 귀신하고 다를게 없어진 것이다.


[절규]는 키요시 호러의 걸작이라 하기엔 살짝 미묘한 영화다. 키요시 감독이 이 영화를 끝으로 호러는 당분간 찍지 않겠다고 다짐해서인지 아이디어가 좀 과잉이 된 감이 없잖아 있고, 아무래도 전작을 의식할 수 밖에 없는 지점이 있다. 예를 들어 묵시록적인 풍경 같은건 [회로]쪽이 훨씬 더 강렬하고 구체적이다. 하지만 좀 미묘하다 하더라도 [절규]가 전해주는 공포는 여전히 강렬하고 가치가 있기에 수작이라 불릴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또 [도쿄 소나타]로 이어지는 미적인 변화하고도 밀접한 관계가 있기도 하고. 그렇기에 쿠로사와 키요시 팬클럽 회원들이라면 필히 관람해야 할 영화다.


P.S.1 영화의 영제는 징벌Retribution. 상당히 적절한 선정이다. 

P.S.2 아무리 봐도 이토 케이카쿠는 쿠로사와 키요시 팬클럽 열혈 빠돌이 맞는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