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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대종사 [一代宗師 / The Grandmaster] (2013)

giantroot2013. 9. 12. 03:43


일대종사 (2013)

The Grandmaster 
8
감독
왕가위
출연
양조위, 장쯔이, 송혜교, 장첸, 조본산
정보
무협, 액션 | 중국, 홍콩 | 122 분 | 2013-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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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위의 [일대종사]는 엽문과 주변 무술가들에 관한 영화다. 물론 엽문에 관한 영화는 이미 시리즈화 될 정도로 나왔지만 왕가위 성향을 생각해보면 그가 그 시리즈처럼 만들 생각은 전혀 없었다는 건 확실했고 [일대종사]는 그 확신을 확인시켜줬다. 한마디로 [일대종사]는 무협 영화가 되기엔 패셔너블한 영화다.

물론 [와호장룡]처럼 주류 무협 영화와 다른 우아한 선과 안무를 자랑하는 영화가 있었지만 [일대종사]는 그 길조차 가지 않는다. 그러기엔 무협을 다루는 [일대종사]의 태도는 그닥 무술에 대해 신경쓰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사실 신경쓰지 않는다는건 과장일지도 모르고 정확히는 무술의 움직임에 담아내는데 무심하다는게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영화는 시종일관 무술들을 2.35:1 화면비에 가두고 조각내고 혹은 그 무술의 파장을 보여주려고 한다. 

그 결과 [일대종사]는 특정 무파가 특정한 안무로 상대를 제압하며 생기는 아름다움보다는, 비슷비슷한 움직임들이 만들어내는 파편화된 아름다움에 중점에 둔 영화가 된다. [일대종사]의 이런 접근은 곧 무술 장면들의 감탄스럽지만 허세섞인 (스텝프린팅도 나온다!) 아름다움으로 넘어간다. 적어도 이 영화에서 개별개별 장면들에 들인 공과 그 장면 간의 연결이 굉장히 섬세하게 가공되어 있다는 건 싫어하는 사람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도입부 액션 시퀀스와 궁이가 기차역에서 맞붙는 장면이 그렇다. 빗물에 무술의 흐름이 녹아들고 눈에 젖어든 꽃잎이 투툭하고 떨어진다.

물론 이런 왕가위의 접근들 모두가 아주 새로운 건 아니다. 주변 환경이 액션의 합을 통해 변화하는걸 보여주는 건 전형적인 동양 무술 영화의 화법이기도 하고 몇몇 장면은 왕가위가 전통적인 중국 무협 영화 언어를 빌어오고 있다는게 보인다. 그렇다하더라도 [일대종사]의 어법은 여러모로 기존 무협 영화하고는 다르다.

이야기 면에서도 그렇다. 우선 영화는 무술이 가지는 국가주의 ("니뽄 제국을 물리치는 자랑스러운 중화의 전사!")엔 관심 없다. 그런걸 바라면 실망할 가능성이 크다. 물론 량차오웨이 (양조위)의 엽문이 극을 이끌고 가고 있긴 하지만 그는 영화 내내 큰 심적 변화를 겪지 않는다. 굳이 해봤자 일제에 대한 소극적인 저항 정도? 심지어 영화는 나름대로 큰 사건인 두 딸이 죽는 사건마저 간략하게 처리해버린다.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장쯔이가 연기한 허구의 산물인 궁이다. 평범하게 결혼해 살아가는가, 아니면 아버지의 복수를 하고 무술을 되찾아오는가라는 갈등에 사로잡힌 궁이는 분명 입체적이고 재미있는, 주인공에 어울리는 캐릭터다. 반면 장첸의 일선천은 연기는 언제나 그랬듯이 좋았지만 딱히 이야기와 연관이 없는 캐릭터다. 서사에서는 그렇게까지 잘 짜여지거나 큰 매력이 있는 영화는 아니다. 다만 몇몇 장면이 왕가위 전작들을 떠올리게 한다는건 흥미롭다. 궁이가 복수를 다짐하며 절에 들르는 장면이 [화양연화]의 마지막 앙코르와트 장면을 닮았다던가.

물론 이야기가 왕가위 특유의 패셔너블한 멜랑콜리에 푹 잠겨 전개된다는 것도 빼놓을수 없다. 결국 대부분의 본토 무술인들이 공산화된 본토를 떠나 홍콩에 도착하는 이야기니깐. 영화는 이들의 흥망성쇠를 보여주면서 인생사의 덧없음과 피로함을 전하고자 한다. 그 점에서 배우들은 그 멜랑콜리와 우아함에 어울리는 위엄과 아름다움을 선보인다. 우선 랑차오웨이는 동양 미중년 간지의 표본이 뭔지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일본의 와타나베 켄, 한국의 안성기, 중국의 랑차오웨이를 뽑을 수 있을것이다. 장쯔이는 그야말로 미친듯한 버프와 몰빵이 뭔지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하여튼 매우 예쁘게 나오고 배우도 그에 걸맞는 모습을 보여준다. 장첸도 따로 놀긴 하지만 다른 영화였다면 주인공을 했을만한 포스를 보여준다.

[일대종사]는 언제나 그랬듯이 안심과 신뢰의 왕가위인 영화다. 싫어할 사람은 싫어하고 좋아할 사람은 좋아할 그런 영화라는 것이다. 내게 이 영화에 대한 의견을 묻는다면 그냥 보통이였다고 하겠다. 아직도 난 [화양연화]가 더 감정에 솔직하고 진솔해서 좋았던 영화라 생각한다. 하지만 [일대종사]가 안겨주는 표피적이지만 우아한 쾌락은 분명 무시할만한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게 정말 핵심을 찔렀는가....는 다른 문제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