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KA. 팀 로스의 비열한 거리
제임스 그레이의 [리틀 오데사] (혹은 팀 로스의 비열한 거리)의 도입부는 간결하지만 인상적이다. 주인공 조슈아는 아무런 설명 없이 불쑥 나타나 목표를 제거하고 브라이튼 비치에 가서 아랍계 보석상인을 처리해 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조슈아는 꺼려하지만 그 의뢰를 승낙한다. 충격적일 정도로 압축적이고 간결한 장면을 통해 그레이는 구구한 대사 없이 조슈아라는 캐릭터를 설명하는데 성공해내고 있다.
표면적으로 보면 [리틀 오데사]는 전형적인 느와르다. 뒷세계에서 벌어지는 피도 눈물도 없는 잔혹한 범죄, 고독한 킬러, 어두운 분위기. 익숙한 소재들이고 각본까지 맡은 그레이 감독은 요리조리 캐릭터들/배우 간의 감정과 행동들을 통제하며 안정되게 영화를 통솔하고 있다. 하지만 [리틀 오데사]는 여기에 한가지 요소를 끌어들여 뭔가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바로 가족사다. 물론 가족사를 중심으로 드라마를 풀어가는거 역시 장르 영화에서는 전개이긴 하지만 [리틀 오데사]의 가족사 드라마는 훨씬 질기고 끈질긴 무언가가 자리잡고 있다.
그렇다면 [리틀 오데사]에 등장하는 가족들은 어떻길래 이런 독특한 분위기가 자리잡게 된 것일까? 조슈아의 가족들은 전형적인 미국 WASP 가족하고는 거리가 있는 러시아계 유대인 가족이다. 곳곳에 영어가 아닌 이디시어가 등장하고 유대교/러시아 전통 행사들이 중요하게 등장한다. 루벤 같은 가족 구성원들이나 친구들은 주변 인물들의 이름들은 미국적이라기 보다는 유럽적이다. 이때문에 [리틀 오데사]의 가족은 미국보다 훨씬 오랫동안 살아온 존재같아 보인다.
이 지극히 지역적이고 민족적인 요소들은 끊임없이 영화에 등장해 조슈아와 장르가 안주하는 걸 방해한다. [리틀 오데사]에서 장르의 법칙과 서사들은 끊을래야 끊을수 없는 질긴 인연들이 만들어내는 피곤하고 축축한 감정에 전염되고 마침내 주제의식마저 바꿔버린다. 애시당초 조슈아가 브라이튼 비치에 가지 않으려고 했던 큰 이유가 바로 이런 가족으로 대표되는 유대인 커뮤니티로 포섭되지 않으려는 발버둥이였다. 하지만 그런 그의 시도는 '어머니 일리나가 아프다'라는 소식에 한방에 무너진다. 결국 조슈아는 폭압적인 아버지 폴과 타협한다. 조슈아 체내에 자리잡고 있는 모성에 대한 그리움은 연인 알라와 동생 루벤에 대한 애정을 갈구하는 모습으로 다시 변주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타협과 갈구에도 불구하고 조슈아의 정체성과 민족적인 문제는 결국 불협화음을 일으키다 비극으로 추락하게 된다. 일리나는 끝내 병으로 죽고 아버지 폴은 새로운 여인과 함께 떠날 기세다. 그토록 지키고 보호하고 싶어했던 루벤과 알라는 허무하게 총에 맞아 죽는다. 결말에 짧은 소망/드림 시퀀스 같은 장면 후 조슈아에게 남겨진 건 공허함 뿐이다. 영화는 이 모든 과정을 그리스 비극처럼 신중하면서도 장중하게 표현하는데 거기에 깔리는 느리고 묵직한 성가 스타일의 음악은 처연함을 더욱더 불러일으키고 있다. 제임스 그레이 감독은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질긴 혈연이 만들어내는 숙명과 인생의 피로함과 고독함을 그려내고 있다.
[리틀 오데사]는 70년대 미국 고전 범죄영화들을 인용하고 있지만 재기보다는 차가우면서도 눅진한 감정들로 사람들을 꼼짝없이 사로잡게 하는 영화다. 분명 거친 구석도 있지만 이렇게 절제된 톤으로 이끌어가면서 말로 설명하기 힘든 감정들을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성공했다. 물론 그의 영화 세계가 좀 더 구체화되기엔 시간이 필요했지만 말이다. 루벤이 처음 등장할때 보고 있던 타버린 영화 필름처럼 [리틀 오데사]는 신중하고 예리하게 강렬한 흠집을 남기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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