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의 춤
The Dance of Reality
- 감독
-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 출연
- 브론티스 조도로브스키, 파멜라 플로레스, 제레미아스 헤르스코비츠, 악셀 조도로프스키, 아단 조도로브스키
- 정보
- 드라마 | 칠레 | 130 분 | -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칠레에서 온 위대한 약쟁이 초현실주의자이자 컬트 영화의 조상 중 하나인 그 분이 돌아왔다. [무지개 도둑]이후 23년만이다. 물론 그가 영화에서 아예 손을 뗀 건 아니였지만 이래저래 다 엎어지고 이대로 [무지개 도둑]이 유작이 될줄 알았더니 (나이가 84세다!) 왠걸 떡하니 새 영화를 가져온 것이다.
감독의 자전적인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192-30년대 칠레에서 보낸 자신의 유년기를 회고하고 있는 영화다. 물론 조도로프스키답게 [현실의 춤]은 사실적으로 가지 않는다. [성스러운 피]만 봐도 알 수 있지만 조도로프스키 영화에는 토드 브라우닝의 [프릭스]처럼 사회에서 정상이라 불리는 기준에서 벗어난 인물과 이미지들이 대거 출동해 만들어지는 카니발적인 기괴함이 있었다. [현실의 춤]에서도 그 카니발적인 기괴함은 여전하다. 항상 오페라 가수처럼 대사를 치며 오줌으로 아버지 하이메를 구원하는 어머니 사라, 불구가 된 남자들, 헐벗은채 우주의 진리를 설파하는 남자, 당나귀를 훔쳐 도망가는 전염병 환자들, 서커스 단원들, 트랜스젠더, 말이 죽었다고 마굿간을 태워버리는 대통령... 매우 조도로프스키적인 인물들과 사건들이 이 영화에도 여전하다.
하지만 전작들과 달리 [현실의 춤]의 주인공들인 알레한드로 가족들은 이해하기 힘들지만 아름다운 광인들이 아니다. 외려 어느 정도 현실에서도 볼 수 있는 공감가는 인물들이다. 사람들에게 유대인이라 차별받고 고통받으면서도 차별받는 자를 받아들이는 알레한드로와 코믹하지만 자애롭고 성숙한 어머니 사라는 분명 정감가는 캐릭터들이다. 물론 아버지 하이메는 폭력적인 가부장이기 때문에 (특히 이 인물이 초반에 저지르는 행위는 좀 섬뜩하다.) 거리감을 둘 수 밖에 없지만, 후반부에 겪는 이 인물의 수난과 개심은 인간적인 따스함으로 가득차 있었다. 특히 목수 호세는 기존 조도로프스키 영화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정상적이면서도 오로지 선의로만 가득찬 인물이기도 하다. 굳이 비슷한 캐릭터를 들자면 [성스러운 피]의 벙어리 소녀 알마 정도?
이런 스탈린주의자이자 폭력적인 가부장인 하이메의 개심엔 종교적인 의미가 다소 내포되어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진짜 종교적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철저히 무신론자 인본주의자가 생각할만한 아가페적인 사랑에 가깝다. (상영관에 온 주연이자 아들인 브론티스 말로는 알레한드로 감독은 종교를 싫어하는 무신론자라고 한다.) 교리보다는 인간과 인간, 인간과 생물 간의 사랑을 믿는 것. 그것은 조도로스프키 특유의 기형이지만 왁자지껄한 에너지로 가득찬 인물들을 포용하고 그들의 격언을 경청해 듣는 것이기도 하고, 반유대주의를 넘어선 우주적인 사랑을 느끼는 것이기도 하고 사라로 대표되는 약해보이지만 강인하고 현명한 여성성을 받아들이는 것이기도 하다.
영화는 또 한가지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 바로 인생사에 대한 이야기다. 이제 나이가 80대 중반 알레한드로는 영화에도 직접 출연해 그렇게 행복했다고 할 수 없는 유년 시절의 자신을 (실제 알레한드로는 아버지가 어머니를 강간해 낳은 자식이였고 어머니와 관계도 영화가 묘사한 것처럼 마냥 밝지만 않았다.) 보듬어 안는다. 그리고 불확실한 슬픔과 고난에 고통받던 어린 시절 자신을 보면서 어둡고 힘들더라도 인생사 새옹지마와 살아가는 것에 대한 기쁨에 대해 나직히 읇조리며 어린 시절 자신과 가족들에게 격려를 보낸다. 그리고 그것들이 자신들을 만드는 중요한 사건들이였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 뻔하지만 내밀한 고백은 상당히 강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이 영화가 가진 치유력은 여전히 가족사에서도 현재진행형이다. 하이메 역을 맡은 브론티스 조도로프스키와 알레한드로 감독은 영화를 찍으면서 매우 친해졌다고 한다.
그 때문에 [현실의 춤]은 여전히 조도로프스키적이지만 따뜻하고 긍정적인 분위기로 가득하다. 이해하기 난해하다고 평가받았던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의 세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주석들과 인생사에 대한 노감독의 긍정적인 메시지가 담겨있다고 할까. 게다가 [현실의 춤]은 정말 신나는 코미디 영화이기도 하다! 이전 조도로프스키 영화들도 마냥 드라이함으로 일관하진 않았지만 [현실의 춤]은 대놓고 유머를 쏟아낸 관객들을 즐겁게 한다. 특히 재미있게 봤던 부분이라면 아이들의 자위를 은유적으로 묘사하는 부분이다.
[현실의 춤]의 아쉬운 점이라면 후반부에 하이메가 대통령 암살을 기도하러 떠나는 부분부터는 영화의 페이스가 다소 흐트러진다는 점이다. 감독이 의도한 것에 비해 사건들 간의 긴장감이 다소 느슨해진다고 할까. 그렇다고 알레한드로와 사라가 아예 등장하지 않는 것도 아니여서 조금 페이스가 산만해지는 감이 있다. 그렇지만 큰 단점은 아닌것 같다. 페이스가 산만해지긴 해도 여전히 하이메가 겪는 일들은 흥미진진하기 때문이다.
[현실의 춤]이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의 정수를 담은 영화는 아니지만 (그렇기엔 그가 가지고 있는 어둡고 기괴한 면모가 적은 편이다.) 여전히 조도로프스키의 우주 속에 굳건하게 뿌리박고 있는 영화이며, 동시에 삶의 괴로움과 즐거움을 껴안는 친근하고 편안한 영화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조도로프스키 빠들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하며 동시에 아직 조도로프스키의 세계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도 기꺼이 환대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의 만수무강을 빌며!
P.S.1 그래도 인두로 불알 지지기라던가 여성이 치모를 모두 드러내고 오줌 싸기 같은 장면들이 직접적으로 나와서 제법 놀랐다. 성적인 뉘앙스는 전혀 없지만 좀 쎈 장면들이 있어서 국내개봉은 불투명할것 같다.
P.S.2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본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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