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eper Into Movie/리뷰

코스모폴리스 [Cosmopolis] (2012)

giantroot2013. 7. 17. 17:42



코스모폴리스 (2013)

Cosmopolis 
7.1
감독
데이빗 크로넨버그
출연
로버트 패틴슨, 줄리엣 비노쉬, 폴 지아마티, 사라 가돈, 마티유 아말릭
정보
드라마 | 캐나다, 프랑스, 포르투갈, 이탈리아 | 109 분 | 2013-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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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 점령 시위가 있은지도 벌써 2년이나 지났다. 여전히 미국 월가는 세계 금융의 중심이고 월가를 따라하고 싶은 세계의 모든 금융권들은 굳건하다. 그렇다면 월가 점령 시위가 지적했던 월가의 문제점들은 해결됬는가? 적어도 지금은 아니다. 미국발 불황은 영원하다. 자본주의는 병들었지만 대체할만한 새로운 체제는 등장하지 않았다.


이때 데이빗 크로넨버그가 로버트 패틴슨과 명배우들을 태우고 유유히 [코스모폴리스]라는 이름의 리무진을 뉴욕으로 끌고 왔다. 돈 드릴로의 설계도를 토대로 만든 크로넨버그의 리무진은 지금 현재 뉴욕이라는 코스모폴리스를 가로지르며 그 안에서 펼쳐지는 또다른 코스모폴리스를 보여준다. [코스모폴리스]는 말 그대로 마트료시카처럼 몇 겹으로 이뤄진 세계와 세계 간의 관계와 긴장을 다루고 있다.


그 안 세계의 주인공은 바로 에릭 패커다. "부자고 젊고 매력적"인 그는 아내 엘리스의 말을 빌리자면 "정보를 끌어모아 끔찍한 짓을 저지르며" 사는 사람이다. 월가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금융자본가라고 할 수 있을것이다. 그 자본가는 오늘 뉴욕을 가로지를 생각이다. 왜나하면 머리를 깎아야 하니깐. 이 불균질적인 상황은 곧 영화의 원동력이 된다. 뉴욕 내에도 이발소가 있다는 걸 에릭은 안다. 하지만 절대로 그곳엔 가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 그가 투자한 위안화가 폭락하고 그는 모든 돈을 잃지만 그는 여전히 머리를 깎는 걸 포기하지 않는다.


자본가의 오디세이아라고 볼 수 있는 [코스모폴리스]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안과 밖의 극단적인 대조다. 영화의 대부분은 이발소로 가는 에릭의 리무진에 밖의 사람들이 들어와 에릭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 할애되어 있다. 그 대화들이 던지는 화두들은 날카롭기 그지 없지만 [네이키드]가 그렇듯이 [코스모폴리스]의 모든 대화들은 유려하지만 어딘가 어긋나있고 자기 자신에 함몰되어 있다. 대부분의 캐릭터들은 에릭의 눈을 마주치지 않고 차 밖을 나가는 장면도 등장하지 않는다.


리무진 안의 대화가 날카롭지만 공허하다면 소피아 코폴라의 [마리 앙투아네트]가 그랬듯이 '리무진 밖'은 아예 추상화되어 있다. 밖은 후반을 제외하면 (하지만 그 짧은 순간조차도 베노의 아지트로 들어가면서 안에 들어가게 된다.) 찔끔찔끔 나올 뿐이다. 밖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얀 리무진 안에 에릭이 있는지 모르지만 밖의 상황은 여전히 에릭의 안에서 간단한 손놀림 하나로 뒤바뀐다. 결국 미래에게 박탈당하고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던 밖의 사람들은 안을 공격하려고 하지만 에릭의 리무진은 굳건하다. 리무진 창문을 두드리며 에릭을 보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전혀 못 알아보는 시위자와 태연히 대화를 나누는 에릭을 보여주는 방면은 현 시대에 대한 크로넨버그의 심술궃고 악랄한 블랙유머라 생각한다. (동시에  그의 독특한 미학이 고집스럽게 드러나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영화는 후반부로 갈수록 안과 밖의 경계를 서서히 허물며 죽음의 그림자를 불러들인다. 먼저 에릭은 보디가드를 우발적 살해한다. 그는 항시 옆에 붙어서 에릭의 사생활을 감시하는 자이기 때문에 죽음에 다가가기 위해선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 두번째는 그토록 원하던 머리 깎기를 그만두고 뛰쳐나온다. 이로써 모든 것을 망가트리면서까지 가고자했던 목적지마저 일탈해버린다. 직후 에릭은 퇴근하고 집으로 떠나는 운전수를 쫓아가지 않고 내버려둔다. 이 모든 제의를 마친 크로넨버그는 에릭을 "밖"을 대변하는 베노 레빈의 집으로 불러들인다. 그는 에릭을 죽이길 욕망하는 실패자며 성기가 배안으로 말려들어간 성적 불구자다. 


이런 성적 모티브는 사실 베노를 만나기 전부터 내내 집요하게 대두되고 있다. 에릭은 내내 아내에게 섹스를 요구하고 여러 여자들과 만나 섹스를 벌인다. 그 결정타는 "전립선이 짝짝이입니다."라는 쌩뚱맞게 웃기는 의사의 대사다. 이 대사는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 웃음기가 사라지고 모든 것이 비대해져 엉망진창이 되지만 쾌락에 빠져버린 지금을 비유하는 말이 된다. 이처럼 차와 기형적인 섹스, 여유있는 자들의 냉담하고 차가운 관계를 다룬다는 점에서 [코스모폴리스]는 [크래쉬]하고 비슷한 선상에 놓고 볼 수 있을것이다.


영화는 20분동안 실패자 베노와 성공자 에릭의 팽팽한 대화 대결을 보여준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베노의 아지트는 또다른 코스모폴리스가 된다. 하지만 형식적이나마 출입구가 있던 에릭의 리무진과 달리 이 코스모폴리스는 에릭에게도 베노에게도 출구 자체가 아예 없는, 단 둘 밖에 없는 극도로 추상화된 세계다. 파국 직전 영원한 휴지기에서 끝나는 결말은 그래서 더욱 무시무시해진다. 크로넨버그는 이 세계의 긴장은 어느 쪽이든 결판이 나지 않거나 혹은 모두의 파멸이 될 것이라는걸 확실히 못 박아두고 있다. 베노의 말을 들어보면 에릭이 죽더라도 오로지 에릭을 죽이는 것에 인생을 건 베노에게 에릭의 죽음 이후 살아갈 방향이나 목적은 없어보인다. 모두의 파멸인것이다. 새 자본엔 새 삶을.


[코스모폴리스]가 크로넨버그 커리어 최고작이 될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렇기엔 이 영화의 미학은 불친절하고 과격하다. (적어도 [데인저러스 메소드]나 [맵스 투 더 스타즈]를 봐야지 어떻게 변화했는지,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를 알 수 있을것 같다.) 하지만 이 영화는 대화와 꾸준하지만 날카로운 극도의 미니멀리즘, 기존 이미지를 야비하게 활용한 패틴슨의 냉담하지만 뛰어난 연기 (물론 사만사 모튼, 줄리엣 비노쉬, 폴 지아미티 등 명배우들의 앙상블 연기도 상당히 뛰어나다.)만으로도 놀랍도록 생생하게 지금 이 순간 '대안'이 없는 지옥도를 그려냈다는 점에서 가치 있다고 본다. 나이가 먹을수록 크로넨버그는 오히려 더욱더 진취적으로 변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