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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시픽 림 [Pacific Rim] (2013)

giantroot2013. 7. 14. 19:15



퍼시픽 림 (2013)

Pacific Rim 
7.4
감독
길예르모 델 토로
출연
찰리 헌냄, 이드리스 엘바, 키쿠치 린코, 찰리 데이, 로버트 카진스키
정보
SF | 미국 | 131 분 | 2013-07-11


기예르모 델 토로의 [퍼시픽 림]의 메인 포스터엔 캐릭터나 배우가 등장하질 않습니다. 로봇들이 등장할 뿐이죠. 이 포스터 디자인에서 영화는 목표를 명백하게 잡아두고 있습니다. '우리는 배우로 승부하는게 아니라 로봇으로 승부하겠다'고. 실제로 퍼시픽 림의 캐스팅은 [바벨]로 유명해진 키쿠치 린코를 제외하면 대부분 그렇게 유명한 배우들은 아닙니다. 키쿠치 린코 역시, [상실의 시대]나 그런 영화에 주연으로 어울리지 이런 대형 블럭버스터를 견인할만한 배우는 아니고요.


그렇다면 퍼시픽 림의 스토리는 어떠한가요? 이 역시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퍼시픽 림]의 스토리는 일본 로봇 애니메이션이나 특촬물을 본 사람들이라면 반복해서 봤을 그런 종류의 클리셰니깐요. 갑작스러운 심해 생물의 침략과 멸망하는 세상, 거대 방벽, 그 생물에 맞서 제조된 대형 로봇 병기, 싱크로률, 복수에 불타는 쿠노이치 비주얼의 여주인공과 형을 잃은 금발벽안 남주인공 간의 교감, 재수없는 라이벌, 병에 든 대장, 위기의 순간 자폭...  [톱을 노려라!]나 [에반게리온], [마징가 Z], [자이언트 로보]에서 자주보던 그런 설정들이 줄줄이 나오고 또 거기서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덕후라면 한 10분만에 어떻게 될지 눈치 채실수 있으실거고 결말을 알고 가도 별로 상관없을 정도입니다.


그런 점에서 [퍼시픽 림]은 동인지 블럭버스터라 할 수 있습니다. 어렸을때 일본 로봇 애니메이션를 보고 자란 덕후 소년들이라면 한번쯤은 꿈꿔볼만한 프로젝트인거죠. 단지 영화는 이를 헐리웃의 자본과 기술력을 빌려 크고 거대한 스케일로 해치웠습니다. 우선 로봇 디자인을 일본 로봇 애니메이션의 리스펙트로 차 있지만 나태하지 않게 아주 근사하게 뽑아냈고 (팔이 여섯개 달린 크림슨 타이푼! 가슴에 핵융합로가 달린 집시 데인저!!) 그에 따른 세계관의 비주얼도 매혹적입니다. 무엇보다 영화는 그런 일본 로봇 애니메이션에 대한 리스펙트로 가득찬 마음을 꿍얼거리지 않고 아주 당당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거대 괴수와 거대 로봇의 대결이라는 순수하게 시청각적인 즐거움이 있습니다. 여기 오면 헐리웃에서 (멕시코라고 해야 되겠지만) 가장 재능있는 덕후인 델 토로는 신이 난듯이 해치우고 있는걸 확인할수 있습니다. 특히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차지하고 있는 홍콩 대결에서 집시 데인저가 부서진 배를 들어 거대 괴수에 박아넣고 하늘 끝에서 칼을 휘둘러 반토막 내는 장면은 로봇 매니아가 아닌 사람조차도 콱 몰입해서 볼 수 있을 정도입니다.


다만 확실히 인간 드라마가 약하긴 합니다. 키쿠치 린코의 영어가 씹히다던가 ([바벨]을 보면 이 배우가 연기를 못하는 배우는 아닌데 여전히 영어 연기에 약한것 같더라고요.) 배우들 연기도 딱 기능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무엇보다 델 토로가 처음부터 끝까지 참여하지 않고 갑자기 들어와서인지 클리셰를 그대로 두는 수준에만 만족하고 있다는 점도 그렇고요. 아마 델 토로나 각본가 트래비스 베컴는 예술가로써 혜안보다는 덕후의 로망이 더 앞선던 것 아닐까요. 그리고 델 토로 터치가 가장 약하게 들어간 영화이기도 합니다. 물론 마코의 과거사를 빅토르 에리세의 [벌집의 정령] 영향으로 채운다던가 (로봇 애니메이션을 보고 로봇과 로봇 파일럿을 만난 아나Ana?) 크툴루와 고질라에서 따온 거대 괴수 설정은 분명 델 토로 스타일이지만요.


[퍼시픽 림]이 델 토로 대표작이 될 가능성은 적다고 봅니다. [크로노스]라던가 [판의 미로]라는 위대한 걸작들이 있으니깐요. 하지만 [퍼시픽 림]은 자기의 동인지적인 위치를 잘 알고 영리하지만 겸손하게 굴며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블럭버스터입니다. 이 영화에 만족하냐 아니냐는 개인차겠지만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로봇 덕후가 아니라면 만족도 싱크로는 떨어질겁니다.) 적어도 [디워]나 [서커 펀치]처럼 나대지 않는다는 점에서 델 토로가 잭 스나이더나 심형래와 달리 성숙하고 똑똑한 감독이라 할 수 있을겁니다. 개인적으로는 비싼 값을 준 재미를 느낀데다 로봇의 로망이 뭔지 다시 깨우쳤다는 점에서 만족스러웠습니다. 


P.S.1 개인적으로 로봇 취향은 좀 얄쌍한 풀 메탈 패닉의 암슬레이브나 에우레카 7의 LFO입니다. 아 물론 톱을 노려라!에 나오는 건버스터나 디스누프도 좋아합니다만.

P.S.2 아이맥스로 보는걸 강력 추천드립니다. 큰 스크린에 빛을 발하는 영화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