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eper Into Movie/리뷰

러스트 앤 본 [De rouille et d'os / Rust and Bone] (2012)

giantroot2013. 5. 21. 01:38

2009/11/05 - [Deeper Into Movie/리뷰] - 예언자 [Un Prophete / A Prophet] (2009)





러스트 앤 본 (2013)

Rust and Bone 
8.6
감독
자크 오디아르
출연
마리옹 꼬띠아르, 마티아스 쇼에나에츠, 아만드 베르뒤어, 불리 라네, 셀린느 살레뜨
정보
드라마, 로맨스/멜로 | 벨기에, 프랑스 | 120 분 | 2013-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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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오디아르는 지금까지 거칠거칠한 남성적인 영화를 만들어왔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어느정도 인류학적인 시선을 견지하고 있었는데 전작 [예언자]에서는 어느 아랍인 애송이가 교도소에 들어서면서 완벽하게 범죄자의 거물로 변해가는 걸 보여주면서 장르적인 쾌감과 인류학적인 냉철함을 빛과 어둠, 환상의 대조로 표현주의로 그려내고 있었다. 


그렇다면 2012년작 [러스트 앤 본]은 어떤가? 캐나다 작가인 크레이그 데이비스의 단편들을 각색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알리라는 프랑스 삼류 복서가 있다. 어느날 그는 자신에게 아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정착하기 위해 아들 샘을 데리고 누나 집으로 내려온다. 하지만 알리는 배운 것도 없고 따라서 몸으로 때우거나 그런 삶을 이어가기 일쑤다. 그러던 중 범고래 조련사 스테파니를 만나게 되고 스테파니에게 이끌리게 된다. 엮일리 없었던 이 두 사람은 스테파니가 다리를 잃게 되면서 달라지게 되고 알리는 스테파니의 삶으로 들어오게 된다.


기본적으로 [러스트 앤 본]은 육체와 정신/욕망, 그리고 그것들을 엮는 사랑에 대한 영화다. 몇 번의 강렬한 섹스 장면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영화의 두 인물은 섹스를 하지 않을때도 강한 육체적 존재감을 내뿜고 있으며 (마리옹 코티야르나 마티아스 쇼에나에츠 모두 그 점에서 적합하게 캐스팅된 배우다.) 이 떄문에 육체에 대한 감각이 관객의 뇌리에 강렬하게 아로새겨지는 영화기도 하다. 오디아르는 알리와 스테파니를 통해 이 육체와 정신, 본능과 소통의 연관 관계를 냉철하지만 섬세하게 풀어낸다.


먼저 알리는 자기 자신에게 충실한 남자다. 스테파니가 알리에게 왜 권투를 하느냐고 물어봤을때 알리는 내가 좋고 즐거워서라는 요지의 대답을 하며 처음 만난 여자하고도 단숨에 섹스에 들어갈 정도로 욕망과 본능에 충실한 인간이다. 아니 인간이라긴 보다는 동물에 가까울수도 있는데 스테파니는 알리를 부를때 범고래를 부르듯이 휘파람을 부르고 거기에 반응하는 장면이 그렇다. 여기서 볼 수 있듯이 그는 동물적인 본능과 행복에 특화되어 있는데 이 때문에 사회적인 소통엔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아들과 누나를 사랑하지만 어떻게 그 애정을 표현해야 할지 모른다.


스테파니는 알리와 반대로 사회적인 소통는 나쁘지 않지만 (다리를 잃고도 그를 걱정하고 챙겨주는 사람들이 자주 등장하는 점에서 알 수 있다.) 결함에 가득찬 육체와 정신을 가지고 있는 여자다. 알리와 스테파니가 처음 만날때 스테파니는 안정된 직장과 남친이 있으면서도 클럽에 나가 헌팅을 하는, 어딘가 공허한 모습을 보인다. 이 공허함은 다리를 잃으면서 구체화된다. (정신의 결함이 육체의 손괴를 계기로 드러난다는 점에서 의외로 크로넨버그스럽지만 오디아르는 이 가능성에 대해선 깊게 파진 않는다.) 영화는 마리옹 코티야르라는 스타를 캐스팅했으면서도 불구의 육체와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좌절에 찌든 얼굴을 자주 보여준다.


영화의 첫번째 전환점은 바다다. 수영을 꺼려하는 스테파니에게 알리는 수영을 권유하고 얼마 안있어 그들은 수영을 같이 하게 된다. 물에서 모든 것을 잃은 여자는 그렇게 범고래/남자의 도움을 받아 물을 헤엄치면서 다시 태어난다. 스테파니는 이후 범고래 수족관에 가서 자신의 모든 것을 잃게 했던 범고래와 마주하게 된다. 얼마동안 스테파니가 서서히 일어서는 과정이 지나가면서 알리와 스테파니의 첫 섹스가 등장한다. 알리는 이 섹스를 통해 스테파니가 한동안 잊어버렸던 사실을 가르쳐준다. 자기 자신을 사랑할 것. 그 후 스테파니는 점점 자신이 붙고 삶에 대한 희망을 찾아나가기 시작한다. 다리에 문신을 새기고 알리를 육체적으로 욕망하는 것 이상으로 정신적으로도 원하기 시작한다.


영화는 여기서 스테파니의 이야기를 끊고 알리의 이야기로 돌아간다. 막판에 끝내 사회적인 소통에 실패한 알리가 선택한 것은 도주다. 하지만 아들이 끝내 찾아오고 뜻하지 않은 위기가 찾아온다. 그 위기가 찾아온 이후, 알리는 스테파니의 전화를 받고 말한다. "날 버리지마. 사랑해."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법은 알았지만 남을 사랑하는 법은 몰랐던 남자는 그렇게 남을 사랑하는 법을 알았던 여자에게 구원받는다.


이 영화엔 [예언자]가 가지고 있던 놀랄정도로 정교하게 구축된 고전적인 영웅 서사나 사회적 통찰력은 없다. 그 점을 기대했다면 다소 실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자크 오디아르는 다소 성기지만 스테파니와 알리가 처한 현실적인 문제들을 보여주면서 그들이 어떻게 이 문제를 대처해나가고 불완전한 육체와 정신을 인정하고 서로를 사랑하는지,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육체와 정신, 본능이 어떻게 연관 관계를 맺고 있는지 묵직하지만 섬세한 필체로 보여준다. 물론 [예언자]에서 볼 수 있었던 아름다운 순간들은 여전하다. 스테파니가 다리를 잃은 후 범고래 수족관에서 접촉하는 장면은 경외감마저 안겨준다. 이점에서 이 영화는 이창동 영화와 가까운 감성을 보여준다. 전반적으로 예측 가능하지만 섬세하고 아름다운 영화다.


P.S. 알리가 처한 사회적 환경은 여러모로 한국하고 비슷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