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eper Into Movie/리뷰

에센셜 킬링 [Essenstial Killing] (2010)

giantroot2013. 6. 28.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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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센셜 킬링

Essential Kil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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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예르지 스콜리모브스키
출연
빈센트 갈로, 엠마누엘 자이그너, 자크 코헨, 이프타크 오피어, 니콜라이 클레베 브로크
정보
스릴러, 전쟁 | 폴란드, 노르웨이, 아일랜드, 헝가리 | 85 분 | -


예르지 스콜리모프스키의 근작 [에센셜 킬링]은 스콜리모프스키 영화의 특성들이 극단화된 영화라 할 수 있다. 보상받지 못하는 사랑에 대해 미쳐버린 청춘 ([딥 엔드]), 위협적이면서도 신비로운 '외침'을 지닌 방문객에 불안해하면서도 매료되는 부부 ([외침]), 꼬여버린 상황이 들통날까봐 전전긍긍하며 노동자들에게 거짓말을 하는 폴란드인 십장 ([문라이팅]) 등 스콜리모프스키의 영화들에는 이상한 긴장감과 그것을 강조하는 음향 연출들이 항상 등장했다. 그래서 그의 영화는 다른 영화 감독들에 비해 제법 다양한 장르를 포괄할 수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런 불안과 긴장감은 대부분의 서사에서 등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에센셜 킬링]은 좀 별난 편이다. 본질적인 살인라는 알듯말듯한 제목에 이끌려 영화를 보게 된 관객들은 시작하자마자 미군이 나오는걸 보게 된다. 액트 오브 밸러인가? or 미군의 폭압적인 행태에 대한 고발 영화인가? 하게 되면 빈센트 갈로가 연기한 아랍 남자가 나타나 미군들을 빵 하고 쏴죽이고 곧이어 추격적이 벌어진다. 아랍 남자은 잡히고 그는 고문 받다가 우연한 기회로 탈출하고 쫓기게 된다. 보통 일반 관객이라면 이쯤해서 뭔가 잘못됬다고 생각할 것이다. 저런 추격을 당하는 주인공은 백인 남성이여야 하는데...?


이 기묘한 현기증이야말로 [에센셜 킬링]의 본질 중 하나다. 이 영화의 서사는 철저히 톰 클랜시나 존 그리샴, 심지어 콜 오브 듀티에서 볼 수 있었던 테크노/밀리터리 스릴러 장르에 충실하다. 하지만 그 서사를 이끌어가는 주체는 저 둘과 다르다. 그렇다고 존 르 카레처럼 이 서사 속 캐릭터과 배경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풀어주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이 아랍 남자 (모하메드라는 이름이 있지만 엔딩 크레딧에만 등장할 뿐이다.)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고향에 아내가 있고 어쩌다 투쟁에 참여했다는 정도 뿐이다. 이런 최소한의 설명에서 만들어내는 뒤집혀짐은 곧 서구 중심으로 치우쳐있던 테크노/밀리터리 스릴러의 정치적 관점을 뒤집는 무기가 된다. [에센셜 킬링]은 최소한의 뼈대와 살점만 가지고 서사를 만들어 통념을 공격하는 영화다.


영화가 이를 통해 그려내는 것은 모하메드의 처절한 생존투쟁기이다. 이 영화를 찍다가 빈센트 갈로가 죽지 않았다는게 신기할 정도로 모하메드는 처절하게 고생한다. 추격하는 병사와 군견을 죽이기 위해 필사적으로 칼을 찌르는 장면, 폴란드 나무꾼을 톱으로 잔혹하게 죽이는 장면 등 영화는 인간의 동물적인 생존본능을 가감없이 드러내고 있으며 (이 점에서 영화는 [부치지 못한 편지]나 [웨이백]같은 생존투쟁물을 떠올리게 한다.) 그 속에서 뭉그적뭉그적거리는 모하메드의 피로한 육신을 통해 불안함을 시퀀스마다 누적시키고 있다. 이 쉼없이 누적되는 불안함과 긴장이야말로 [에센셜 킬링]의 미적인 힘인데 이는 종종 코미디나 공포 시퀀스로 터져나온다. 물론 그 불안함은 그런 터짐에도 상관없이 계속 켜켜히 쌓인다.


물론 이 긴장감을 계속해서 타오르게 만드는 장작을 꼽으라면 음향 연출을 빼놓을 수 없다. CIA 요원 차량에서 나오는 낯선 언어의 헤비메탈, 전기톱 소리, 개 짖는 소리, 비명, 아우성, 날카로운 사운드트랙... 정작 이 와중에 모하메드는 침묵한다. 아니 침묵할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처음 장면만 제외하면 대부분의 사건들은 다른 나라인 폴란드에서 진행되며 모하메드의 귀도 멀어버렸기 때문이다. 영어와 폴란드어로 지배되고 있는 새하얀 악몽의 나라에서 모하메드는 그야말로 출구조차 봉쇄된 소통불능의 앨리스가 되버린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악몽만으로 가득차있지 않다.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마가렛이라는 여성은 그 악몽과 대비되는 구원으로 등장한다. 재미있는 것은 마가렛 역시 주류 사회에서 배제된 존재라는 것이다. 마가렛 역시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으며 심지어 듣지도 못한다. 신비롭게도 소통의 순간은 이때 찾아온다. [리피피]의 은행 강도 시퀀스가 그랬듯이 [에센셜 킬링]은 고요 속의 움직임이 갖는 아름다움을 잘 알고 있는 영화다. 잠시간의 소통과 이해뒤 모하메드는 마가렛이 붙여준 하얀 말을 타고 피를 토하면서 어디론가 계속 간다. 그러다 어느 순간 말엔 아무 것도 없다.


스콜리모프스키는 이 영화가 정치적인 영화가 아니라고 누누히 강조했지만, 역으로 그 투명한 긴장감과 에센스Essense만 으로 매력있게 짜여진 서사 때문에 [에센셜 킬링]은 정치성을 획득하게 된 케이스다. 특히 시적이면서도 일침을 놓는 결말은 타자들에게 쉽게 가해지는 서구 열강의 폭력에서 탈출하고픈 타자들의 욕망을 어떤 구구한 설명도 없이 완벽하게 꿰뚫고 있다. 훌륭한 연기를 보여줬지만 인종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아이러니를 품고 있는 캐스팅 (모하메드 역의 빈센트 갈로는 공화당원인 이탈리아계 미국인, 마가렛 역의 엠마누엘 자이너는 프랑스인에 사르코지 지지자, 중간에 등장하는 미국인 요원은 이스라엘 배우...)도 물론 한몫하고 있다.


물론 정치적인 해석은 제외하더라도 [에센셜 킬링]은 일반적인 스릴러와 다른 호흡이긴 하지만 독특한 긴장감과 일관된 아름다움 (폴란드의 설원은 아름다움과 잔혹함을 모두 감싸안고 있다.)을 가지고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스콜리모프스키의 모든 면모를 알기엔 풍성함이 살짝 떨어질지 몰라도 대가의 예리한 감각을 맛보기엔 충분한 영화다.


P.S.스콜리모프스키가 이 영화의 아이디어를 얻게 된 것은 폴란드 숲 어딘가에 CIA 흑색작전용 기지가 있다는걸 알면서부터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