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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링 소프틀리 [Killing Them Softly] (2012)

giantroot2013. 5. 9. 01:29

 


킬링 소프틀리 (2013)

Killing Them Softly 
7.1
감독
앤드류 도미니크
출연
브래드 피트, 리차드 젠킨스, 레이 리오타, 제임스 갠돌피니, 스쿠트 맥네이어리
정보
액션 | 미국 | 97 분 | 2013-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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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류 도미닉의 [킬링 소프틀리]의 시작은 어두운 터널에서 흩날리는 쓰레기들과 터널 바깥의 빛이다. 천천히 트래킹하는 와중에 신경질적으로 긁는 효과음과 2008년 미국 대선 당시 오바마의 연설을 헤치고 한 남자가 걸어나온다. 그리고 그 사이로 영화의 제목이 습격하듯이 뜬다. [킬링 소프틀리]의 음향/영상 몽타쥬들은 이 영화가 평범한 범죄 영화와 다른, 현재 미국의 우울한 상황을 일관된 미학으로 보여줌과 정치적 상징성이 있다는 걸 선언하고 있다.

 

이 장면이 지나고 관객들은 2008년 미국 뉴올리언즈의 덜떨어진 얼간이 두 범죄자 러셀과 프랭키를 소개받는다. 이들은 돈과 섹스 밖에 모르는 덜떨어진 자본주의의 기생자이지만 그렇다고 그 시스템에서 성공한 것조차 아니다. 이 둘보다 조금이나마 머리가 돌아가지만 여전히 얼간이 같은 갱에게 들은 정보를 이용해 한탕을 할 계획을 세운다. 나름대로 말이 되는 계획이라 생각했겠지만 그 계획이 제대로 될 리는 없다. 

 

영화는 이런 얼간이 같은 범죄자들을 보여주면서 2008년 미 대선의 진행과정을 사운드 몽타쥬로 엮어 보여준다. 그 결과 영화의 범죄자들은 단순히 범죄 뿐만이 아니라 미국 사회와 경제적인 상황에 대한 어떤 우의적인 코드를 함의하게 된다. 허점을 이용해 한탕을 노리지만 그 후폭풍을 감당 못하는 러셀과 프랭키, 예전의 잘못 때문에 끝내 얻어맞다가 결국 제거당하는 마키 같은 인물들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 때 기업들과 투자자들, 그 속에서 사건의 내막도 모른채 몰락하는 중산층하고 많이 닮아있다. 이를 위해 영화는 범죄 영화에서 관객이 으레 기대할법한 특유의 글래머함을 포기하는 대신 그들의 어리석은 면모를 그대로 노출시키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영화는 제법 강렬한 야유를 품게 된다.

 

이런 난장판를 알아차린 ‘상부’가 보낸 (브래드 피트가 연기한) 청부살인업자인 잭키 코건이 등장한다. 잭키 코건은 누구이며 이 서사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가? 이는 그가 처음 등장할 때 듣고 있던 음악인 컨트리 가수 자니 캐쉬의 ‘The Man Comes Around’로 집약된다. 이 곡은 다음과 같은 가사로 시작한다. "And I heard, as it were, the noise of thunder. One of the four beasts saying, 'Come and see.' and I saw, and behold a white horse" 그리고 끝은 이렇다. “And I heard a voice in the midst of the four beasts And I looked and behold, a pale horse And his name that sat on it was Death And Hell followed with him” 가사의 내용은 묵시록의 4기수 특히 ‘하얀 말’과 ‘창백한 말’을 다루고 있는데 이 하얀 말은 정복을, 창백한 말은 죽음을 상징하고 있다. 그렇다면 잭키는 뉴올리언즈 외부에서 온 ‘중산층의 종말’을 고하러 오고 죽음을 선고하러 온 정복자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재키는 이 모든 일을 깔끔하게 처리하려고 한다. “나는 그들을 부드럽게 죽이는게 좋아.”로 대표되는 재키의 대사는 아까 언급한 범죄자들의 지저분함과 대비되며 끝날때까지 그 깔끔함을 잃지 않는다. 영화는 그런 깔끔한 재키의 철학를 재키가 마키를 살해하는 장면에서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옛 소울곡 ‘Love Letter’가 잔잔히 깔리면서 슬로우 모션으로 이뤄지는 재키의 총격 씬은 마치 고급 예술 작품을 음미하는 미술 평론가처럼, 살인을 뭔가 고상한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거기에 영화는 브래드 피트라는 스타의 아우라를 교활하게 활용하고 있는데, 실제로 영화는 브래드 피트를 제외하고도 훌륭한 배우진들으로 무장하고 있지만 정작 그 어느 누구도 피트의 아우라를 뛰어넘는 이는 없다. 이 지저분한 현실적 캐릭터와 깔끔하고 매력적인 ‘데우스 엑스 마키나’ 식의 비현실적 캐릭터의 대립이야말로 [킬링 소프틀리]의 미학적 핵심이자 현 미국의 상황을 그리는 큰 동력이 되고 있다. 또 [차퍼]나 [비겁한 로버트 포드의 제시 제임스 암살]에서 이어져온 앤드류 도미닉 특유의 미적 일관성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영화는 잭키를 구세주라 떠받들지 않는다. 우선 영화의 재키 코건은 깔끔하긴 하지만 다정한데다 우리가 가야할 길을 가르치는 구세주가 아닌, 매정하기 그지 없는 구약의 신이자 뒤처리 담당에 가깝다. 그리고 영화 내내 거의 작중 서사와 연관이 없는 수많은 대화들이 이어지는 극작술은 결국엔 어쩔수 없이 중간관리자일 수 밖에 없는 무의미한 대화들을 뚫고 사건을 해결해야 하는 재키의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당연하지만 ‘상부’는 코빼기도 나오지도 않는다.)

 

결말 역시 낙관 아닌 냉소다. 재키는 미국 건국의 상징인 토머스 제퍼슨의 위선을 비웃으며 ‘그러니 이제 돈을 내놔’로 말하고 영화는 마무리 짓는다. 그리고 엔드 크레딧에선 'Money (That's What I Want)'가 흘러나온다. 사건 자체는 모두 끝났지만 어째 불안정한 느낌을 주는 이런 결말의 구조는 미국에서 영화를 만들고 있지만 결국엔 호주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앤드류 도미닉의 냉소적인 시선을 엿볼수 있다.

 

그 메시지가 다소 직설적인 면모도 있지만, [킬링 소프틀리]는 코엔 형제와 마틴 스콜세지 같은 미국 범죄 영화를 새롭게 만든 대가들을 인용해 마르크스가 예견했던 자본주의의 붕괴 속에 우왕좌왕하는 인물상과 매정한 심판관의 블랙 코메디를 그려내고 있는 영화다. 그 점에서 보통 범죄 영화에 볼 수 없는 앤드류 도미닉만의 희귀한 매력이 있으며 그것만으로도 대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