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의 세계관 역시 매력적입니다. 기본적인 뼈대가 되는 스팀펑크는 그리 특이할것 까진 없지만, [디스아너드]는 세계 내에 배치된 다양한 저널들을 통해 치밀하고 꼼꼼하게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고래 기름을 통해 이뤄진 "산업 혁명"이 가져온 부귀영화와 거기서 잉태된 톨보이를 비롯한 신비로우면서도 "그 세계의 과학 법칙에 투철하게 설계된" 기계들, 하지만 그런 발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폭압과 전염병 속에서 신음받는 일반 시민들, 기계문명의 발달을 비웃듯이 사람들의 무의식과 악몽 속에 자리잡아 군림하는 메피스토텔레스 아웃사이더 등 [디스아너드]의 세계관은 영국을 한때 지배했던 빅토리아 시대의 화려함과 고딕의 음울함이 독특한 배합으로 섞여있습니다. 이런 유니크함은 하비 스미스와 리카르도 베어 이 둘의 미적 취향이 강력히 배어있다고도 할 수 있을겁니다. 물론 [하프 라이프 2]의 도시 17을 만들어낸 빅토르 안토노프의 공도 빼놓으면 안 되겠지만요.
유니크하면서도 치밀하게 짜여진 세계관에 비해 각본은 좀 약한 편입니다. 말을 하지 못하는 "1인칭 주인공 캐릭터"가 가지는 한계를 넘어보려고 하는 시도라던가, 저널과 기록들을 통해 경제적으로 캐릭터에 대해 설명하려는 시도 (이것도 워렌 스펙터 제 게임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시도이긴 합니다.), [몬테크리스토 백작]를 연상시키게 하는 영리하고 흥미진진한 전개는 칭찬받을만합니다만 대부분 이런 공력들은 안전지대에 머물러 있어요. 전반적으로 [디스아너드]는 세련되고 유려하게 흘러가는 복수극이긴 하지만 [레드 데드 리뎀션]이나 [어새신 크리드]처럼 캐릭터와 세계, 서사에 콱 몰입하게 하고 중후한 감동을 안겨주는 그런 장쾌한 "매력"은 좀 부족합니다. 반전 이후 이야기의 템포가 너무 빨랐다는 것도 지적하고 싶군요.
조금 투덜거리긴 했지만 그렇다고 [디스아너드]의 매력이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이 게임은 여전히 자기만의 투철한 미학과 방향을 가지고 잠입 게임의 새로운 판도를 제시하려는 야심찬 게임입니다. 그리고 그 야심을 대부분 성공시키고 있고요. 이야기에 조금만 더 욕심을 부렸더라면 정말 굉장한 게임이 나왔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안타깝긴 하지만 여전히 잠입 게임 팬들이라면 꼭 해봐야 할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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