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eper Into Movie/리뷰

사냥꾼의 밤 [The Night of the Hunter] (1955)

giantroot2012. 9. 27. 17:22



배우인 찰스 로튼의 유일한 감독작 [사냥꾼의 밤]은 뭐라 말할수 없이 기이한 영화다. 데이비스 그럽이 실화를 바탕으로 (해리 파워스라는 살인마에게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쓴 소설을 기반으로 한 영화의 줄거리 뼈대는 그렇게까지 특이하거나 독창적인 내용은 아니다. 여기 해리 파웰이라는 범죄자가 있다. 그는 감방 동기가 가지고 있던 돈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돈이 탐난 그는 곧 전도사 행세를 하며 감방 동기의 미망인 가족에게 접근한다. 미망인과 주변 사람들은 거기에 홀라당 속아넘아가지만 미망인의 아들 존은 거기에 속지 않고 곧 긴장 관계가 발생하게 된다.


하지만 영화는 그 뼈대를 괴상하게 비틀어버린다. 우선 로버트 미첨란 훌륭한 배우를 통해 육화된 해리라는 캐릭터는 정말이지 인상적인 악역이다. 그는 단순히 흔해빠진 연쇄살인마가 아니다. 일단 그 손가락 마디에 새겨진 사랑(LOVE)과 증오(HATE)라는 문신! 그것만으로도 일단 점수를 먹고 들어간다. 그 손가락 문신이 주먹을 쥐어야지 제대로 드러나게 된다는것도 재미있다. 거기다 그 문신을 통해 들려주는 사랑과 증오의 대결에 관한 창세기적인 우화는 또 어떤가? 그 이야기를 들려주는 미첨의 연기는 우스꽝스럽지만 동시에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면모가 있다. 이 영화에서 미첨은 파충류같이 느물느물 번들번들거리며 미묘한 눈빛과 목소리 변화로 상대를 아무렇지 않게 압박하는 멋진 악역 연기를 보여준다.


물론 그가 돈을 얻기 위해 전도사를 '연기'하고 있다는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 '연기'엔 나름대로 신념이 담겨져 있다. 한 예로 신혼여행에서 잠자리를 원하는 윌라를 부정한 여인이라고 싸늘한 조소를 퍼부으며 동시에 윌라를 복종시키는 해리의 달변은 완벽히 전도사의 설교하고 일치한다. 하지만 그는 전도사와 달리 사랑을 믿지 않는다. (이건 조금 궤변일지도 모르겠지만) 즉 그는 돈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을 '증오'하는 '아이들'을 이길수 있다고 믿는다. 광신도와 잔학한 살인마, 신사가 섞여 만들어진 '신의 대리인을 가장한 괴물' 해리는 분명 흥미진진한 구석이 있다.


그런 괴물과 대적하는게 무력한 아이들인 존과 펄이라는게 더욱 흥미롭게 만든다. 그들은 어머니를 잃은 후 아버지라 자칭하는 해리를 피해 조각배를 타고 도망친다. [사냥꾼의 밤]을 지배하는 기독교적인 미의식은 여기서 다시 드러난다. 세상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신의 사역자를 자처하는 악마에게 쫓기는 어린양들의 조각배에서 부모에게 버림받아 배를 실려 이집트로 떠내려온 구약의 모세와 잔혹한 헤롯의 학살을 피해 도망치는 신약의 예수의 이미지가 하나로 합해진다. 영화는 거기에 해리를 거부하던 존이 마지막에 울먹이며 아버지라 부르는 장면이라던가 루비와 해리의 롤리타-험버트적인 관계("그는 날 여자로 대해줬어요!")를 얹어 음험한 기운을 불어넣는다. 부모가 부재한 아이들은 어른들의 성과 폭력 앞에서 두려워하면서도 그걸 갈구한다.


그렇다고해서 [사냥꾼의 밤]이 어떤 거창한 걸 말하는 영화는 아니다. 그런 접근은 이 영화의 진정한 매력을 파악하지 못하는 접근이다. 외려 [사냥꾼의 밤]는 어떤 주제나 발언과 관계없이 어린 아이들이 겪는 잔혹하고도 아름다운 모험을 영화란 매체가 가지고 있는 마술로 풀어내는데 집중하고 있다. 영화가 도입하는 마술은 바로 빛과 그림자다. 독일 표현주의의 유행이 끝난지 제법 뒤에 나온 영화이지만, 이 영화의 조명 설계는 탁월하다. 그림 동화에 등장하는 마귀의 집 같은 분위기마저 풍기는 하퍼네 집과 지하실, 아이들이 농장 헛간으로 숨어드는 장면, 최후의 습격 장면들은 그림자와 빛의 매력을 적극적으로 활약하고 있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해리의 재판이 끝난 후 성난 군중들이 몰려드는 장면에서 프리츠 랑의 [M]의 영향이 느껴졌다.) 


[사냥꾼의 밤]은 그 비이성적인 요소 때문에 때론 허헛하고 실웃음이 나오기도 하지만, 동시에 강한 서스펜스(강가에서 오누이와 해리가 추격전을 벌이는 장면의 리듬감은 탁월하다.) 다른 영화와 차별되는 독자적인 미적 세계를 구축하고 있으며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기괴하지만 부인할수 없는 매력이 배어나오는 잔혹동화 느와르다. 어떤 사람들은 "애가 나오는데 어떻게 느와르냐"며 느와르라는 말에 이의를 달지도 모른다. 하지만 팜므파탈과 필립 말로와 뒷골목 대신 애들과 미시시피 강이 나온다고 해서 느와르가 되지 말라는 법은 어디 있는가. 이 영화는 인간의 어두운 욕망과 잔혹한 면들을 빛과 그림자의 마법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느와르의 자격요건을 훌륭하게 갖추고 있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