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eper Into Movie/리뷰

케빈에 대하여 [We Need to Talk About Kevin] (2011)

giantroot2012. 9. 3. 00:48


[케빈에 대하여]의 원제는 We Need to Talk About Kevin이다. '우리는 케빈에 대해 이야기 해봐야 한다.' 라이오넬 슈라이버와 그녀가 쓴 소설을 각색한 린 램지 감독의 영화는 이 제목을 통해 케빈을 우리들의 주목 대상으로 놓는다. 그래서 그 주인공 케빈은 어떤 인물인가? 케빈은 여행가로 유명했던 에바의 아들이자, 고등학교에서 학살극을 펼쳐 소년범이 된 인물이다.

이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케빈에 대하여]는 [엘리펀트]나 [볼링 포 콜롬바인], [인 블룸]처럼 콜롬바인 학교의 비극에서 비롯된 학교 학살극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케빈에 대하여]는 저들과 정 반대로 나간다. 학살극이 있었던 그 순간, 학살범과 피해자들의 모호하고도 복잡한 심리와 행동들을 엮은 [엘리펀트]나, 단도직입적으로 총기 소유 문제로 들어가는 [볼링 포 콜롬바인], 그리고 피해자의 심리에 집중하는 [인 블룸]과 달리 [케빈에 대하여]는 가해자의 가족-정확히는 엄마-이 중심이다.

방금 케빈을 주목 대상으로 삼긴 했지만, 사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엄마인 에바다. 영화 역시 실제 사건의 진상에 대한 떡밥을 던지면서 그 사건 이전과 이후의 에바의 삶을 교차해서 다루고 있다. 영화가 보여주는 '그 이후' 에바의 삶은 지옥이기 그지없다. 집은 언제나 페인트 테러로 당해있고 길거리에서 뺨맞기 일쑤며 새로 얻은 직장에서는 흑심을 품은 동료에게 욕을 듣곤 한다. 한마디로 제대로 된 생활 따윈 없다. 한마디로 에바는 자신의 자식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대답을 얻지 못한채 매일매일 고통받으며 살아가야 하고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면 '그 사건' 이전의 에바는 어땠나? 여행가라는 자유로운 직업으로 살던 에바는 어느날 애인과 충동적인 섹스로 원치 않은 임신-케빈-을 하게 된다. 그 충동적인 상황으로 에바는 어머니라는 역할을 '맡게' 된다. 영화가 가장 흥미로워지는 지점은 여기서부터다. 에바는 자유로운 삶에 익숙해져있지 책임을 지는 삶에 대해서는 익숙해 있지 않다. 단적으로 둘째 셀리아의 출산과 첫째 케빈의 출산 장면을 비교해보면 쉽게 알수 있다. 일그러진 병원의 스테인리스 이미지에 비친 출산 장면부터 시작해 휑하다 싶을정도로 흰색으로 도배된 병원에서 전신 샷으로 잡힌 출산후 에바의 표정은 그야말로 망연자실한 표정이고 케빈의 탄생에 대해서도 그리 기뻐하지 않는다. 오직 아버지만이 옆에서 귀여워할 뿐. 반대로 셀리아의 출산은 제법 가까운 컷에 찍혀 있으며 에바의 표정은 행복해보이는 표정이다.

이 간단한 장면의 차이를 통해 영화는 에바의 모성성이라는게 자연적으로 생기지 않았다고 말한다. 우리는 아이를 가지면 모성성과 부성성을 자동적으로 가진다고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영화의 이 장면은 그 통설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그리고 그걸 받침하듯 얼마 안 있어 케빈의 대사가 이어진다. "익숙한거랑 좋아하는거랑은 달라. 엄만 그냥 나에게 익숙한거야." 이 대사는 영화의 중요한 메세지를 관통하고 있다. 에바는 모성성에 '익숙'해졌지 그것을 완벽하게 체화한게 아니다. 그리고 그 차이는 아이마저 깨달을 정도다. 

이 뒤로 그 익숙함을 어떻게든 자신에게 안으려고 하면서도 예전 자신의 '자유로운' 삶을 얻으려고 하는 에바와 그것을 방해하는 케빈의 대결이 이어진다. 케빈은 '자기만의 방'을 주장하는 엄마에게 맞서 페인트로 방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리고, 일부러 '관리하기 귀찮은 아들' 행세를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과정들은 린 램지 감독의 인상적이고도 강렬한 시청각 공격으로 등장한다. 에바는 그런 과정에서 케빈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게 되고 그 틈을 점점 벌어지기 시작해 마지막의 비극을 만들어낸다. 사실 영화는 진상을 하나 더 숨기고 있으며 그것은 케빈의 행동을 추측할수 있는 단서를 만든다. 힌트를 더 주자면, 케빈의 행동들이 매우 자기과시적이고 엔터테이너스럽다는걸 주목하라. 그는 쇼맨십이 강한 아이다.

그렇다. [케빈에 대하여]는 사실 [모성에 대하여]로도 번역할 수 있는 것이다. 에바는 모성에 '익숙'해지려고 했지 완전히 '좋아'하는건 아니였다. 아이가 시끄럽게 우는걸 공사장 소음으로 뒤덮으려는 장면이나 에바가 불만을 토로하는 장면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에바는 케빈을 사랑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표현할지 모른다. 거기다가 아이를 키우면서 겪는 피로함과 짜증스러움도 상당하고 표출된다. ("너가 태어나기 전에 엄마는 더 행복했다") 그런 마이너스 에너지는 점점 멈추지 않고 "포인트는 없어. 그게 포인트야."로 대표되는 케빈의 광기에 가중된다.-어찌보면 이 점에서 [케빈에 대하여]는 키오 시모쿠의 만화 [지옥프리]하고도 일맥상통할지 모른다. 갑작스러운 임신과 전혀 귀엽지 않은 아이가 안겨주는 육아의 고통을 통해 여자가 겪는 당황스러운 심리를 포착한다는 점에서 말이다.-그런 긴장감과 실패들은 결국 '그 사건'을 터트리면서 에바를 지옥으로 밀어넣는다. 에바는 나름대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지옥에 빠진것이다. 이를 통해 영화는 여성이 직접 겪는 심리와 불안들을 표현하면서 모성의 판타지를 해체하고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이 떄문에 개인적으로 나는 남자들도 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남자들은 아무래도 이런 쪽에 판타지가 강할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을 통해 소설과 영화는 어머니도 한 사람의 여자이자 사람이며 모성은 자동적으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 라고 말한다. 이 메세지는 상당히 '여성'의 시선이 강하게 담겨져 있기도 한데 실제로 원작자 라이오넬 슈라이버와 린 램지 감독 모두 자신의 직업을 가지고 있는 기혼 여성이다. 특히 린 램지 쪽은 확실한 증거가 있는데 영화 개봉전에 가진 인터뷰로 기혼자로 아이를 가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토로했던 인터뷰가 있다. 

그렇지만 [케빈에 대하여]는 에바를 단죄하거나 케빈을 소위 말하는 단순한 싸패로 만들지 않는다. [케빈에 대하여]는 인간이 가진 한계가 만들어낸 비극과 그걸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하는 한 어머니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다. 작중에서 암시하듯이 에바는 나쁜 엄마는 아니다. 다만 그런 삶에 대해 익숙하지 않았고 두렵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몰랐을뿐. 그리고 그 두려움과 당혹감은 케빈의 돌출 행동으로 더욱 강해진다. 여자로써 자신과 어머니로써 자신을 양립하려는 시도는 자꾸 실패로 돌아가고 그 과정에서 에바가 느끼는 좌절감과 당혹감은 그대로 관객에게 전해진다. 에바는 그저 약한 인간이였을 뿐이다. 

영화의 전반적인 비전은 상당히 암울한 편이다. 에바의 삶은 한 두장면-피해자 아이가 스스럼없이 다가와 에바를 걱정해주는 장면-빼곤 수난과 모욕으로 점철되어있고, 더 나아질 기색도 없어보인다. 에바는 더 이상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수도 없고 앞으로 나아갈 구원도 없다. 그리고 케빈이 왜 그랬는지 평생 질문을 하며 살아야 한다. 하지만 영화는 후반부부터 조금씩 빛을 보여준다. 에바는 자신과 같은 고통을 받고 있는 어머니의 손을 잡아주고 케빈의 옷을 입고 케빈의 방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에바는 자기가 뭘 했는지 전혀 모르고 혼란스러워하는 케빈을 안아준다. 

어찌보면 통속적, 이다 할수 있는 결말이지만 무척이나 먹먹하게 만드는 결말이기도 하다. 에바의 비극은 인간이 겪을수 있는 비극이다. 우리 역시 에바처럼 인간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으며 종종 그 한계 때문에 끔찍한 비극을 저지르곤 한다. 그런 한계 때문에 비극의 수렁에 빠진 에바는 마침내 구원의 빛을 얻을수 있을까? 영화는 조용히 예.라고 말한다. 영화는 그것은 자신 스스로 찾아내는것이라 말한다. 마치 [헤비 레인]의 망가져버린 에단이나 [밀양]의 신애가 갖은 수난을 통해 마침내 스스로 사랑하는 법을 찾아냈듯이 말이다.

린 램지가 동원하는 연출들은 상당히 MTV 세대의 감각하고 닮아있다. (실제로도 긴 휴지 기간동안 영국 밴드 도브스의 뮤비를 찍은 경력이 있으니 틀린것도 아니다.) 강렬한 이미지들과 상징적인 미장센 (개인적으로 인상적인 미장센을 하나 꼽으라면 주변 가구들로 포위된 에바의 병원 장면이다.)들에 곁들어진 [데어 윌 비 블러드]로 무시무시한 실력을 발휘한 조니 그린우드의 기괴하게 비틀어진 음악과 음향효과들은 관객의 신경줄을 벅벅 긁는다. 긴장도로 따지자면 거의 데이빗 핀처의 [세븐] 수준이다. 그리고 짧은 인서트 컷으로 등장하는 이미지들과 직설적이고도 아이러니하게 쓰인 기성 삽입곡들은 케빈과 에바의 긴장관계과 인물들의 심리과 주제들을 포착해낸다. [쥐잡이]로 새로운 세대의 영국 감독으로 주목받았던 그녀는 9년동안의 공백을 설욕하듯이 완숙하고도 강렬한 연출을 선보인다. 이 정도면 충분히 재기작이라 할만하다.

물론 영화를 이끌어가는 틸다 스윈튼과 에즈라 밀러의 연기도 빼놓을수 없다. 스윈튼 특유의 중성적인 마스크로 퀭한 눈빛과 단정한 직장인 여성, 혼돈스러워하는 엄마를 오가며 복잡미묘한 불안함과 고통을 덤덤하지만 매끄럽게 다루는 솜씨는 놀랍다. 하지만 진짜 '발견'은 에즈라 밀러다. 그는 [데어 윌 비 블러드]의 폴 다노가 그렇듯이 날이 선 광기를 무지막지하지만 정교하게 구성된 에너지로 표출하며 스윈튼과 팽팽한 긴장감을 형성한다. 괴물이라고 할 수 있는 신인이다.


[케빈에 대하여]는 편한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분명히 우리가 이야기를 나눠봐야 할 이야기들과 주제들을 다루고 있는 영화다. 린 램지 감독은 9년만에 차곡차곡 쌓아온 공력으로 라이오넬 슈라이버의 강렬한 소설을 바탕으로 굉장한 파워를 지닌 영화를 내놨고, 이는 우리가 계속 이야기 나눠봐야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케빈에 대하여 이야기 해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