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대영화 3

파벨만스 [The Fablemans] (2022)

스티븐 스필버그의 [파벨만스]는 지금껏 경력에서 암시로 머물렀던 영역에 성큼 들어선다. 바로 자신의 ‘가족사’다. 스필버그는 지금껏 가족 이야기를 다뤄왔지만, 정작 자기 가족으로 영화로 만든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스필버그의 복잡한 가정사에 대한 한 단면은 영화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었다. 많은 평론가가 지적했듯이 스필버그는 기본적으로 가족 간의 정에 대해 호의적이고, 혈육 가족과 유사 가족이 제공하는 안정적인 해피 엔딩으로 인도하는 감독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가족 간의 불화와 불안정한 관계에 대해 파헤치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스필버그가 가족애를 얘기할수록 거기엔 어떤 간절함과 절박함이 있다는 것이다. 너무 순수한 나머지 비현실적이기까지 한 모성애의 갈구와 좌절, 충돌과 염원을 다룬 [A.I], 이미..

TAR 타르 [Tár] (2022)

토드 필드의 『TAR 타르』는 고전적이면서도 동시대적인 몰락 비극 서사를 다루는 영화다. 인물이 내적 결함으로 몰락한다는 점에서는 고전적이지만 그 몰락의 과정이 SNS로 대표되는 디지털 기술로 이뤄진다는 점에서 동시대적이기 때문이다. 클래식 지휘자 리디아 타르의 몰락기는 온갖 문학적 상징성과 알리바이로 가득하다. 리디아 타르는 레즈비언 여성으로서 남성의 영역이었던 베를린 필하모닉에서 성공했다는 점에서, 페미니즘 또는 정체성 정치의 성공 사례로 내세울 만한 캐릭터다. 하지만 동시에 권력자로서 타르는 현실의 남성 권력자에게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비서를 하대하며, 학생들을 조롱하면서도 성적으로 유혹하려는 타르의 모습은 분명 미투 가해자로 언급할 수 있는 해로운 권력자다. 토드 필드는 음영을 명백히 ..

포제서 [Possessor] (2020)

브랜던 크로넨버그의 두 번째 영화 『포제서』는 전형적인 B급 SF/호러 영화의 콘셉트에서 시작한다. 타인의 인격을 빼앗아 살인을 저지르는 청부살인업자라는 설정은 SF나 호러 장르 소설이나 영화에서 보기 드문 소재는 아니다. 하지만 이런 인격 해킹을 다루는 방식에서 『포제서』만의 개성이 드러난다. 『포제서』의 인격 해킹은 주술이나 마법 같은 비논리적으로 기운 방법론이나 데이터로 치환한 전뇌 같은 중간자적인 매개체를 활용한 방법론을 거치지 않고, 직접 인간의 신체/의식을 연결해 바꿔치기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신체는 자연과학의 영역에 속하면서도 막상 신체를 관장하는 정신이 어떻게 동작하는지는 아직도 미지의 영역이라는 점에서 모순된 정체성에 놓여 있는데, 브랜던은 정체성 연기와 혼입 몽타주, 그리고 질감이라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