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극 11

가르시아 [Bring Me The Head Of Alfredo Garcia] (1974)

[가르시아]는 연못에서 시작한다. 이 영화의 첫번째 샷은 위태롭다. 한 소녀가 연못 경계에 있는 나무에 누워 있다가,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일어서서 저택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소녀는 마치 물에 빠질것처럼 누워있다. 왜 하필 물가에서 영화를 시작할까. 아마도 이 영화 감독이 샘 페킨파여서 그럴지도 모른다. 헤모글로빈과 슬로모션에 취한 성질머리 더러운 마초. 그 마초는 물의 죽음과 땅의 생명 그 사이에 잉태를 할 수 있는 여자를 배치하면서 영화의 주제를 제시한다. 죽음과 삶, 그리고 매장의 경계를 여인이 가로지를 것이다. 그리고 슬로 모션은 죽음을 끊임없이 지연시키며 기록할 것이다. 곧이어 소녀가 위태롭게 누워있었던 이유가 등장한다. "알프레도 가르시아의 머리를 가져와라." 멕시코 갱 제페의 선언으로 [가르..

맥케이브와 밀러 부인 [McCabe & Mrs. Miller] (1971)

(누설이 있습니다.) 로버트 알트만의 [맥케이브와 밀러 부인]의 시작은 그래도 익숙한 서부극 도입부다. 떠돌아다니던 한 남자가 개척 마을에 당도하는 모습에서 관객들은 전형적인 서부극의 도입부를 예상할 것이다. 하지만 알트만은 심술궃게도 서부극에서 기대할법한 상황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주인공 존 맥케이브는 총을 꺼내거나 악당과 대치하는게 아니라 카드를 꺼내들어 포커판을 벌인다. 그 광경을 보면서 사람들은 맥케이브에 대한 소문 (아이러니하게도 "악당을 잔혹하게 죽인 악랄한 총잡이"로 대표되는 전형적인 서부식 소문이다.)을 수군거린다. 다음 시퀀스. 맥케이브는 어느새 이 마을 개발에 관여하고 있다. 요컨데 도입부 시퀀스와 다음 시퀀스 간의 격차가 느껴진다. 맥케이브가 어느 정도 기틀을 닦아놓은 마을에 영국인 ..

로건 [Logan] (2017)

2015/02/08 - [Go To Fly/만화] - 울버린 [Wolverine] (1981)2015/07/20 - [Deeper Into Movie/리뷰] - 더 울버린 [The Wolverine] (2013)이정표가 될 가지를 들고 그 발밑에 떨어뜨리자. 맞은편 언덕에 있는 아이가 헤매지 않도록. 작은 둥지를 만드는 이 날개로, 태어나는 아이들을 연결하기 위해 살아가자. -이시카와 치아키, 'Little Bird' (강력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로건]의 첫 샷은 차 안에 누워있는 로건의 얼굴을 하강하면서 보여준다. 이 샷은 밀폐 공간에 클로즈업으로 이뤄져 있기에 로건이 무언가에 짓눌듯한 인상을 준다. 가히 질식할듯한 이 미장센을 흔들어깨우는 건 외화면에서 깡패들이 때려부수는 소리다. 제임스 맨골드..

복수의 총성 [The Shooting] (1966)

2016/12/03 - [Deeper Into Movie/리뷰] - 바람 속의 질주 [Ride in the Whirlwind] (1966)[복수의 총성]에서 주인공 윌렛은 모래에 흔적을 남기면서 등장한다. 길을 잃지 않으려고 주의하는 그의 모습은 그러나 무의미한 행동으로 판별난다. 윌렛이 친구 콜리를 만나게 되면서, 강력한 미스터리가 윌렛을 포박하기 때문이다. 공포에 떨고 있는 콜리는 윌렛에게 윌렛의 형이자 동행인이였던 코인과 리랜드가 마을에서 어떤 가족을 쏴 죽였으며, 코인이 볼일을 보러 떠난 뒤 리랜드가 커피를 마시다가 갑자기 총에 맞아 죽었다고 말한다. 앞뒤를 살펴보면 마을에서 일어난 사건의 복수인게 분명하다. 하지만 대체 '누가' 리랜드를 쏴죽였단 말인가? 도입부의 미스터리가 제공하는 [복수의 총..

바람 속의 질주 [Ride in the Whirlwind] (1966)

시작은 이렇다: 황야 저 멀리서 마차가 달려오고 일련의 도적 무리들이 튀어나와 돈을 요구한다. 카우보이 세 명이 멀리서 그 과정을 지켜본다. 익숙한 서부극의 설정이다. 하지만 다음 샷. 도적들은 마차에 있던 승객과 마부의 호주머니를 털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도적들은 짜증내며 그들을 내보내고 지켜보던 카우보이 세 명은 다시 길을 떠난다. 서부극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뭔가 기대가 어긋났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 영화의 악인들은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그리고 카우보이들은 악행을 보고도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 [바람 속의 질주]는 무언가 중요한 동기와 열정 자체가 배제되어 있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보면, [바람 속의 질주]는 하지도 않은 일을 오해받은 사람들의 얘기다. 번과 웨스, 오티스는 어떤 대단..

서부극에서 총이 발사되기까지

최근 유행하고 있는 블리자드제 FPS 게임 [오버워치]에 등장하는 맥크리라는 캐릭터가 있다. 대놓고 서부극 무법자를 가져온 이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궁극기는 '황야의 무법자Deadeye'다. 무방비가 되는 리스크를 감수하고 화면에 있는 대상을 오랫동안 조준하고 있으면 한 방으로 처치하는 이 궁극기와 "석양이 진다.... It's High Noon."이라는 대사는 곧 인터넷 상에서 유행어가 되었다. 이 대사는 왜 유행어가 되었는가? 그것은 [오버워치]라는 게임이 빠른 스피드의 하이 테크놀로지를 배경으로 한 하이퍼 FPS의 흐름과 반대로 대상을 처치하기 위해 다소간의 뜸을 들어야 하는, 느긋한 호흡 때문이였다.'황야의 무법자'가 보여주는 이 느긋한 호흡이야말로, 서부극의 리듬을 이해할수 있는 중요한 단서 아..

더 홈즈맨 [The Homesman] (2014)

(누설이 있습니다.) 배우 토미 리 존스의 감독 생활은 현재까지 서부극의 영역에 천착해 있다. 엘머 크레튼의 동명 소설을 영화로 한 감독 데뷔작 [라스트 카우보이]는 늙어가는 카우보이를 주인공으로 삼은 영화였고, 감독으로써 재능을 확인시켜준 [멜키아데스 에스트라다의 세 번의 장례식]은 [바벨]과 [21그램]으로 유명한 기예르모 아리아가가 써내리고 죽은 멕시코인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여정을 떠나는 텍사스 보안관을 주인공으로 삼은, 현대에 이식된 서부극이었다. 본인이 텍사스 출신이기도 한 토미 리 존슨은 자신의 연출작에서도 그 강건하면서도 내적으로 복잡한 감정을 품고 사는 '미국인'의 전형을 연기해왔다. 그 점에서 [더 홈즈맨]은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온 탕아와 같은 영화다. 글렌던 스와트와웃의 동명 소설을 ..

황야의 결투 [My Darling Clementine] (1946)

황야의 결투 My Darling Clementine 9.5감독존 포드출연헨리 폰다, 린다 다넬, 빅터 매추어, 캐시 다운스, 월터 브레넌정보서부, 드라마 | 미국 | 97 분 | - [황야의 결투]는 [역마차]와 [수색자], [리버티 벨런스를 쏜 사나이]와 더불어 존 포드 서부극을 이야기할때 빠지지 않는 영화다. 그리고 실제로도 [황야의 결투]는 [역마차]로 열어젖힌 황금기 서부극 영화의 정수를 담고 있는 영화기도 하다. [수색자]와 [리버티 벨런스를 쏜 사나이]가 만가에 가깝다면 [황야의 결투]는 아직 만가에 이르기 전 나름 성숙해가는 과정이 담겨 있는 영화기도 하다. 물론 [황야의 결투] 역시 우리가 알고 있는 서부극의 편견에 대해 재고할수 있는 부분들을 찾아볼수 있는 영화기도 하다. 서부사를 다룰때..

리버티 벨런스를 쏜 사나이 [The Man Who Shot Liberty Valance] (1962)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 The Man Who Shot Liberty Valance 0감독존 포드출연존 웨인, 제임스 스튜어트, 리 마빈, 베라 마일스, 에드먼드 오브라이언정보로맨스/멜로, 서부 | 미국 | 123 분 | - 존 포드의 [리버티 벨런스를 쏜 사나이]는 보통 서부극의 종언을 알리는 작품으로 자주 꼽히는 작품이다. 물론 포드가 이전에 만든 [아파치 요새]나 [수색자]에서도 서부 세계를 정리하는 기색을 보였지만 적어도 도로시 M. 존스턴의 단편을 영화화한 [리버티 벨런스를 쏜 사나이]를 보면 어떤 한 시대가 완전히 끝나 회고하고 있다는 걸 누구나 눈치챌 수 있다. 당장 이 영화의 시작은 기차를 타고 등장하는 정장의 상원의원 부부니깐 말이다. 서부극에서 문명의 상징으로 등장했던 기차를 타고 등..

외로이 달리다 [Ride Lonesome] (1959)

라이드 론섬 Ride Lonesome 0감독버드 베티커출연랜돌프 스콧, 카렌 스틸, 퍼넬 로버츠, 제임스 베스트, 리 반 클리프정보서부 | 미국 | 73 분 | - [외로이 달리다]에서 인상깊은 것이라면, 벤의 동선이다. 영화 내 인물들이 지적하듯이 벤은 일부러 프랭크 일당에게 자신의 행적을 노출하면서 산타 크루즈로 향한다. 아니 향한다고 보기에도 문제가 있다. 벤의 동선은 급박하지 않고 느긋하다. 왜 그렇게 행동을 했을까? 물론 [선다운의 결전]이나 [투우사와 숙녀]를 위시한 보티커 영화를 지나온 관객들이라면 알겠지만 벤의 행적은 ‘도주’가 아닌, 결투 장소로 이끌기 위한 행동이다. 영화 첫 장면으로 돌아가보자. 이 장면이 재미있는게, 벤과 빌리 사이엔 도망치는 자와 쫓는 자의 긴장 관계가 없다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