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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아 [Celia] (1989)

앤 터너의 [실리아]는 할머니의 죽음으로 시작한다. 인물의 죽음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죽음 이후를 받아들여야 하는 과정을 다루겠다는 의미기도 하다. 그런데 [실리아]가 처음으로 보여주는 받아들임은 ‘괴물’이다. 실리아는 자던 도중 괴물 손이 창문을 침범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비명 소리에 달려온 엄마랑 함께 실리아는 ‘괴물’이 다시 나타나는 걸 보게 된다. 요컨데 [실리아]는 죽음 이후로 자신만이 볼 수 있는 것에 매달리는 여자 아이에 대한 영화다. 그렇다면 실리아는 왜 ‘자신’만이 볼 수 있는 것에 집착하는 것일까? [실리아]는 포크 호러로 분류되는 영화지만, 실상은 포크 호러라는 장르에서 기대할만한 폐쇄적인 시골 공동체나 광기어린 소수 종교 집단은 중요하게 등장하지 않는 영화다. 오히려 이 영화의 배..

사랑받는 방법 [Jak być kochaną / How to Be Loved] (1963)

뒤에 만들게 되는 『사라고사 매뉴스크립트』나 『모래시계 요양원』과 달리, 보이체크 하스의 『사랑받는 방법』은 명료한 서사와 순차적인 플래시백라는 비교적 익숙한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카자미에시 브란디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성우로 성공한 펠리시아가 프랑스 파리로 가면서, 전쟁 당시와 이후를 배경으로 있었던 비극적인 연애담을 다루는 이 영화는 살아남기 위해 굴욕적인 선택을 감내해야 했던 한 여성의 멜로드라마를 그려낸다. 이런 멜로드라마를 통해 하스는 민족주의 저항이라는 민족 집단이 가진 환상 뒤 현실을 감내해야 했던 소시민들의 모습을 그려낸다. 먼저 눈에 띄는 지점이 있다면, 파편적이고 추상화된 공간과 숏을 활용해 영화 전체를 기억의 순간들로 구성된 영화적인 신체로 만들어냈다는 점에 있다. 영화..

20210812 근황

오래간만입니다. 잘 지내셨는지요. (트위터 보시는 분이라면 새삼스럽겠지만) 코로나19는 아직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지만 8개월 동안 많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우선 제가 얀센 백신을 맞아서 코로나19 걱정은 덜었습니다. 그러나 이게 큰 문제는 아니고 당장은 아니더라도 제 일상에 큰 변화가 일어날 것 같습니다. 본격적으로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인데... 제 하고 싶은 거랑 돈 버는 것 하고는 거리가 참 머네요. 그래서 마음이 심란하고 글도 쓸 여유가 나지 않아서 블로그 운영에 소홀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아직도 불안정한 상황이라서 고민입니다. 제 앞가림하는 게 힘들다는 걸 깨닫는 요즘입니다. 와중에 2차 도메인을 끊어서 (망할 티스토리가 2차 도메인 관련으로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바람에 무용지물이 되었습니다. ..

사마에게 [من أجل سما / For Sama] (2019)

1990년대, CNN이 걸프 전쟁을 생중계하면서 세계인들이 전쟁을 감각하는 방식에 변화가 일어났다. 사실 영상으로 전쟁을 감각하는 방법은 이전부터 뉴스 릴 같은 방식이 있었지만 CNN은 종군 기자에게 생중계 방송 카메라를 들려줬고, 사람들은 현장에서 채집된 전쟁의 이미지를 안방에서 즉각 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CNN의 중계는 미국의 압도적인 화력을 보여주는데 치중한, '자극적이고 편향된 시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바야흐로 갱 오브 포가 예측했던 '게릴라전은 새로운 엔터테인먼트'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CNN 쇼크는 많은 창작자들이 진지하게 받아들었고, 그 중엔 ' 극장판 기동경찰 패트레이버 2'를 만든 오시이 마모루도 있었다. 오시이 마모루는 '비디오 이미지'를 추적하는 미스터리 플롯으로,..

20201109 코로나-19 시대의 일상

블로그에다 일상 보고를 시시콜콜 하는 타입은 아니지만, 그래도 코로나-19로 인해 제 일상이 변한 기록을 남겨야 되겠다 싶어서, 이번 기회에 적습니다. 이 사태가 터진지도 벌써 9개월이 넘어가고 얼마 안 있으면 1주년을 맞이하겠네요. 솔직히 싫네요. 일단 나가는게 무지 귀찮습니다. 가볍게 나간다는 개념 자체가 사라졌다는 느낌. 나갈땐 무조건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고, 들어올땐 손을 씻어야 합니다. 물론 예전에도 나갔다 오면 손 씻긴 했는데 이젠 안 하면 죽는다라는 느낌이라서 압박감이 심해졌다고 할까요. 의외로 사람들이 야외 활동을 즐겨하더라고요. 거기선 전염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지. 그런데 등산이나 산책할때 마스크 끼고 하는게 참 고역입니다. 운동을 안 해서 체력이 떨어진 것도 있는데 숨쉬기 정말 힘들더라..

프라운랜드 [Frownland] (2007)

《아빠의 천국》 이후 로버트 브론스타인의 《프라운랜드》를 찾아서 보는 사람은 대체로 사프디 형제의 영화를 통해 거슬러 올라온 사람일 것이다. 《아빠의 천국》 이후 편집과 각본에 빠짐없이 참여하고 있는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이길래, 싶어서 말이다. 사실 《프라운랜드》는 개봉 당시엔, 몇몇 영화제와 뉴욕 아트하우스 영화관을 돌다가 사라진 흔한 동네 독립 영화에 가까웠다. 심지어 "근처 극장에서 볼 수 없는 최우수 영화상"라는 (의도는 이해하지만) 요상한 명칭을 단 상을 수상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다만 흔하다를, 오독하면 안 되는 것이 당시 주목도에서 그렇다는 것이지 내용물을 보면 오히려 아슬아슬하고 뉴욕 독립 영화계에서도 비타협적인 비주류적인 노선을 취하고 있는 영화다. 이런 영화를 데뷔작으로 내놓을 생각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