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eper Into Movie/리뷰

사랑받는 방법 [Jak być kochaną / How to Be Loved] (1963)

giantroot2022. 4. 3. 01:03

뒤에 만들게 되는 『사라고사 매뉴스크립트』나 『모래시계 요양원』과 달리, 보이체크 하스의 『사랑받는 방법』은 명료한 서사와 순차적인 플래시백라는 비교적 익숙한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카자미에시 브란디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성우로 성공한 펠리시아가 프랑스 파리로 가면서, 전쟁 당시와 이후를 배경으로 있었던 비극적인 연애담을 다루는 이 영화는 살아남기 위해 굴욕적인 선택을 감내해야 했던 한 여성의 멜로드라마를 그려낸다. 이런 멜로드라마를 통해 하스는 민족주의 저항이라는 민족 집단이 가진 환상 뒤 현실을 감내해야 했던 소시민들의 모습을 그려낸다.

먼저 눈에 띄는 지점이 있다면, 파편적이고 추상화된 공간과 숏을 활용해 영화 전체를 기억의 순간들로 구성된 영화적인 신체로 만들어냈다는 점에 있다. 영화 도입부는 그 점에서 클로즈 업과 트래킹으로 인물의 비밀을 만들고 드러내는 영화 전체의 방법론을 보여준다. 하스는 화장을 하는 펠리시아의 클로즈업 숏으로 시작한다. 이 클로즈업 숏이 이상한 이유는, 분명 가까이 다가갔음에도 인물에 대한 정보를 거의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관객이 볼 수 있는 것은 화장 거울에 비친 펠리시아의 입과 술잔을 드는 손이다. 요컨데 구체적인 정보 없는 모호한 신체 이미지만이 있는 셈이다. 이런 모호한 신체 이미지는 펠리시아가 연인 빅토르를 회상할 때도 다시 등장한다.

이렇게 펠리시아가 익명성을 유지하는 동안, 하스는 펠리시아가 출연하는 라디오 쇼와 쇼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바 종업원들의 모습을 포착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관객들은 펠리시아가 유명한 라디오 성우라는 걸 알게 된다. (심지어 펠리시아라는 이름이 실제 본명인지 아니면 배역 이름을 따서 부르는 건지 모호하게 다뤄진다.) 하지만 동시에 영화 밖 디제시스에서 흘러나오는 펠리시아 자신의 나레이션은, 성공한 라디오 성우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는 걸 드러낸다. 그렇게 펠리시아 자신의 나레이션이 한 차례 정리 될 무렵 펠리시아는 관객 쪽으로 얼굴을 돌려 자신을 드러낸다. 마침내 자신을 드러낸 펠리시아는 무엇을 보는가? 하스는 펠리시아의 시점에 대한 반응 숏으로 방 전경과 비명 소리는 제시한다. 도입부 시점에서는 이 방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는 알 수 없다. 영화 내에서도 이 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끝날 쯤에 나온다.

『사랑받는 방법』은 그 점에서 비명이 울러퍼진 방을 열기 위한 여정 그 자체다. 주목할 점은 플래시백이 이뤄지는 현재 공간과 플래시백이 진행되는 과거 공간 설정이 뚜렷하게 대칭되어 있다는 점이다. 먼저 액자 밖 현재 공간 같은 경우 모두 ‘사건’이나 '일상'이 아닌 ‘회상’과 ‘여정’의 일부고, 비일상적인 경향이 강하다. 이런 공간 연출이 의도적이라는 걸 알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먼저 액자 밖 현재 시점 시퀀스 장소들은 대다수가 실내다. 여기다 펠리시아는 프랑스 파리로 가고 있지만, 영화는 단 한번도 비행기 바깥을 보여주지 않는다. 초중반까지 펠리시아는 통로석에 앉아 있고, 심지어 환승 공항에 착륙한 이후로도 펠리시아는 공항 터미널에 머물 뿐이다. 환승한 후반부에는 창가석으로 옮겨감에도, 비행기 창문 커튼은 닫혀있다. 이러다보니 시간 흐름 역시 상당히 애매모호한 구석이 있다. 그저 승무원이나 승객의 말과 행동을 통해 시간이 선형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만 알 수 있을 뿐이다. 비행기 여행과 관련된 작중 대사로도 암시되지만 하스는 현재 시점의 공간들을 상당히 추상화시키면서 심리적 여정을 위한 배경, 나아가 과거에 종속되어 살아가는 펠리시아의 상태를 묘사한다. 펠리시아가 현재 시점에서 만나는 인물들 역시, 펠리시아의 내면을 반영하는 쪽에 가깝다.

과거 시점은 현재랑 달리 비교적 명확한 시공간적인 맥락을 띄긴 하지만, 여기서도 펠리시아는 실내를 잘 나서려 하지 않는다. 과거 시점의 첫 시퀀스 역시 '햄릿' 연극을 하는 펠리시아와 극단원들의 모습이고, 펠리시아는 거리 숏을 경유하지 않고 아파트와 카페, 공청회장, 스튜디오, 술집을 돌아다닌다. 그렇기에 간혹 등장하는 거리 숏은 중요하다. 『사랑받는 방법』에서 거리 숏은 폴란드의 현실 그 자체기도 하며, 인물의 변곡점을 알리는 기점이기 때문이다. 제일 먼저 동료 배우였지만 나치 협력자가 된 페터스가 암살당하는 숏이 있다. 작중 처음으로 실외를 보여주는 이 숏은 펠리시아 시점으로 제시되는데, 지금까지 안에 있던 펠리시아가 바깥의 역사적 비극과 마주한다는 신호로 자리매김한다. 이후로도 거리 숏은 펠리시아의 행보가 변화를 보일때마다 등장하는데, 그 점에서 펠리시아가 독일 어용 극단에서 일하기로 마음 먹은 후 등장하는 거리 숏은 중요하다. 더 이상 펠리시아 시점 숏이 아닌, 펠리시아가 거리를 걷는 숏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펠리시아는 관찰자가 아닌 비극적인 역사에서 살아남기 위해 직접 뛰어들기로 결정한 것이다.

하지만 이 결연한 의지가 담긴 숏은 얼마 안 있어 쓰디쓴 대가를 치르게 된다. 소련군이 진주하는 장면에서 펠리시아가 거리 숏으로 등장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이 시퀀스의 끝에서 펠리시아는 후경에 있는 다른 폴란드인과 달리 크게 반기지 않는다. 앞으로 닥쳐올 미래에 대해 예감한 것이다. 이후 펠리시아는 빅토르에게 무시받은 채, 창 밖에서 집 밖을 빅토르가 소련군과 폴란드인과 어울리는 모습을 시점 숏으로 보게 된다. 잘못되었지만 역사의 비극 앞에 살아남고자 했던 주체의 숏은 소멸되고, 도입부에서 펠리시아가 한탄했던 대로 다시 "관망자"의 시점으로 돌아가게 된다. 하지만 펠리시아는 죽지 않는다. 자신을 방어하지 않고, 민족주의의 흑백논리에 기반한 단죄를 받아들인 펠리시아는 여전히 살아가기로 한다. 이후로 펠리시아는 거리를 나서지 않지만, 반대로 보이지 않는 목소리만으로 커리어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

『사랑받는 방법』이 강렬한 여성 주체 멜로드라마라 할 수 있다면, 잘못되고 어리석은 짓인줄 알면서도 역사의 비극에서 살아남기 위해 "주체"로 거리에 나서야 했던 여성의 비통함과 어떤 생사마저 초월한 의지를 존중하고 그려낸다는 점에 있다. 이는 후반부에 등장하는 빅토르하고 비교하면 확연해진다. 전후 빅토르는 연기 실력마저 엉망이 되고, 오로지 허상으로만 이뤄진 저항의 영광만을 쫓는 사람이 된지 오래다. 심지어 펠리시아와의 대면 도중 자신이 그렇게 적대했던 페터스마저 이중 스파이었다는 허망한 진실이 폭로되기까지 한다. 하지만 펠리시아는 그런 빅토르를 경멸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귀지 않아도 좋으나 연기를 하자는 결연함마저 보인다. 그들은 다시 전쟁 당시 머물렀던 아파트로 돌아오는데, 여기서 펠리시아는 자신의 과거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고백하고 빅토르는 자살하고 만다. 영화의 마지막 거리 숏은 살아갈 의지를 찾지 못한 채 자살한 연인을 바라봐야 하는 여인의 비통함을 그려낸다.

『사랑받는 방법』의 결말은 그 점에서 모든 미스터리가 해결됨과 동시에, 역사의 배경으로 서서히 물러나게 된 자의 쓸쓸함을 보여준다. 모든 과거를 회상한 펠리시아는 어둑한 비행기 좌석에 앉아, 창문으로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바라본다. 현재 시점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바깥을 보는 숏"이지만 하스는 끝내 현재의 바깥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저 과거를 품고 다가올 미래를 기다리는 여성만을 보여줄 따름이다. 역사의 변절자이고 동시에 피해자였지만, 제대로 보상받지 못한 채 묵묵히 익명의 목소리로 살아가는 펠리시아의 모습은 그 점에서 하스가 후일 만들게 되는 『모래시계 요양원』에 등장하는, 어머니를 남겨두고 눈 먼 채로 아버지의 고통과 역사의 상흔을 안고 영원히 떠돌게 되는 주인공과 닮아 있다. 하스는 이런 모습이 폴란드인, 나아가 인류의 초상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