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eper Into Movie 321

맥케이브와 밀러 부인 [McCabe & Mrs. Miller] (1971)

(누설이 있습니다.) 로버트 알트만의 [맥케이브와 밀러 부인]의 시작은 그래도 익숙한 서부극 도입부다. 떠돌아다니던 한 남자가 개척 마을에 당도하는 모습에서 관객들은 전형적인 서부극의 도입부를 예상할 것이다. 하지만 알트만은 심술궃게도 서부극에서 기대할법한 상황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주인공 존 맥케이브는 총을 꺼내거나 악당과 대치하는게 아니라 카드를 꺼내들어 포커판을 벌인다. 그 광경을 보면서 사람들은 맥케이브에 대한 소문 (아이러니하게도 "악당을 잔혹하게 죽인 악랄한 총잡이"로 대표되는 전형적인 서부식 소문이다.)을 수군거린다. 다음 시퀀스. 맥케이브는 어느새 이 마을 개발에 관여하고 있다. 요컨데 도입부 시퀀스와 다음 시퀀스 간의 격차가 느껴진다. 맥케이브가 어느 정도 기틀을 닦아놓은 마을에 영국인 ..

이삭줍는 사람들과 나 [Les Glaneurs Et La Glaneuse / The Gleaners and I] (2000)

아네스 바르다의 [이삭줍는 사람들과 나]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제목을 듣고 그 유명한 장 프랑수아 밀레의 그림 '이삭줍는 사람들'에 대한 내용을 다룰 것이라는 건 알 수 있다. 실제로 바르다가 다큐멘터리를 시작하는 지점 역시 밀레의 그림이다. 그러나 이 다큐멘터리가 어떤 내용을 다루고 있는지는 직접 보거나 시놉시스를 읽지 않는 한 예측하기 어려울 것이다. 먼저 이 다큐멘터리는 미술사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당연하게도 밀레의 '이삭줍는 사람들'가 어떻게 그려졌는지를 탐구하는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바르다가 그 그림을 보면서 주목한 부분은 바로 '이삭을 줍는다'라는 행위다. 버려진 이삭을 줍는다는 행위는 상품 가치를 잃은 잉여 생산물을 주워서 쓰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던질수도 있을 것이다..

절멸의 천사 [El ángel exterminador / The Exterminating Angel] (1962)

루이스 부뉴엘의 [절멸의 천사]의 첫 장면은 황급하게 노빌의 저택을 빠져나가는 하인들의 모습이다. 그들은 각자 이유를 대면서 저택을 빠져나가지만 그 이유가 알리바이라는건 명백하다. 왜냐하면 저택엔 곧 부르주아들이 몰려오기 때문이다. 당연히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하인들의 머릿속엔 그런건 안중에도 없다. 이들은 마치 모종의 사실을 깨닫고 이건 미친 짓이야 나는 여기서 나가야 되겠어라고 외치며 빠져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아니 실제로 그렇다. 그러거나 말거나 파티는 계속되어야 하고, 하인들이 없어도 그들에겐 집사가 있다. 노빌 부부를 위시한 부르주아들은 하인들이 빠져나간것도 모르고 예정된 파티를 하기 시작한다. 맛있는 음식, 멋진 음악, 아름다운 그림들... 부뉴엘은 하인들이 알수 없는 이유로 빠져나갔다..

토니 에드만 [Toni Erdmann] (2016)

마렌 아데의 [토니 에드만]에 대한 정보를 처음 들었을때, 약간의 신랄함을 동반한 유쾌한 영화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가 시작했을때 그 예감은 완전히 박살났다. 영화의 첫 샷은 문이다. 금방이라도 열릴것 같은 문은 예상과 달리 빨리 열리지 않았다. 그렇게 초조하게 기다리는 동안 드디어 택배 기사가 나타나고 문이 열리지만, 분장하고 나타난 토니 에드만은 생뚱맞다. 유머는 빗나가고, 리듬과 리액션도 그렇게 활기차지 않다. 빈프리트/토니 에드만은 사람들이 웃길 바라지만 그를 대하는 사람들과 영화를 보는 관객은 무표정하게 그를 응시할 뿐이다. 결국 그는 허겁지겁 유머를 접을수 밖에 없다. 차라리 이 영화의 도입부는 초라하게 몰락한 히어로의 일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제임스 맨골드의 [로건]하고 닮아있다. 빈프리..

러빙 [Loving] (2016)

2013/05/10 - [Deeper Into Movie/리뷰] - 테이크 쉘터 [Take Shelter] (2011)2013/12/04 - [Deeper Into Movie/리뷰] - 머드 [Mud] (2012)2017/01/13 - [Deeper Into Movie/리뷰] - 미드나잇 스페셜 [Midnight Special] (2016)"나 임신했어." 고요한 어둠 속 여자의 얼굴에 이 대사가 깔리면서 제프 니콜스의 [러빙]은 시작한다. [러빙]이 흥미로운 점은 이미 두 사람의 관계가 어느 정도 완성된 상태에서 시작한다는 점이다. 그러니깐 시작 부분이 없이 처음부터 전개 단계에 들어선다고 할까. 두 사람이 어떻게 사랑에 빠졌는지 그런 이야기들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니콜스는 생각한다. 아마 그들은 아..

로건 [Logan] (2017)

2015/02/08 - [Go To Fly/만화] - 울버린 [Wolverine] (1981)2015/07/20 - [Deeper Into Movie/리뷰] - 더 울버린 [The Wolverine] (2013)이정표가 될 가지를 들고 그 발밑에 떨어뜨리자. 맞은편 언덕에 있는 아이가 헤매지 않도록. 작은 둥지를 만드는 이 날개로, 태어나는 아이들을 연결하기 위해 살아가자. -이시카와 치아키, 'Little Bird' (강력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로건]의 첫 샷은 차 안에 누워있는 로건의 얼굴을 하강하면서 보여준다. 이 샷은 밀폐 공간에 클로즈업으로 이뤄져 있기에 로건이 무언가에 짓눌듯한 인상을 준다. 가히 질식할듯한 이 미장센을 흔들어깨우는 건 외화면에서 깡패들이 때려부수는 소리다. 제임스 맨골드..

밤과 안개 [Nuit et brouillard / Night and Fog] (1956)

2009/08/19 - [Deeper Into Movie/리뷰] - 지난 해 마리앙바드에서 [L'Annee Derniere A Marienbad / Last Year At Marienbad] (1961)2013/01/24 - [Deeper Into Movie/리뷰] - 당신은 아직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Vous n'avez encore rien vu / You Haven't Seen Anything Yet] (2012) 알랭 레네는 경력의 시작을 몇 편의 다큐멘터리에서 출발했다. [밤과 안개]는 그 시절 레네에겐 가장 중요한 다큐멘터리라 할 수 있는데, 이 다큐멘터리는 초창기 홀로코스트 다큐멘터리 중에서 논쟁적이고 도발적으로 역사와 기억을 물었고 그를 주목받게 만들었다. [밤과 안개]를 이해하기 위해서..

플레이타임 [Playtime] (1967)

2015/01/18 - [Deeper Into Movie/리뷰] - 나의 아저씨 [Mon Oncle / My Uncle] (1958)자크 타티의 [플레이타임]은 그 자체로 완결된 전설로 남은 작품이다. 왜 타티는 성공적이였던 [나의 아저씨] 후속작을 만들지 않고 8년동안 이 영화를 만들며 침묵을 지켜왔는가? 적어도 그가 반복하는걸 싫어했다는건 명백했다. 그래도 [플레이타임]은 성공을 믿고 만들어냈다고 하기엔 너무나 무모한 영화다. 타티가 [플레이타임]를 위해 만들려고 했던 장소는 건물 몇 개가 아닌, 그 자체로 완성된 도시였다. 하나의 세계를 그대로 담은 세트로 만든다는 시도는 도무지 정상적인 선택이 아니다. 아무리 비물질인 주제를 다룬다고 하더라도 영화는 물질로 구성된 세계를 설계해 담아야 하는 매체다..

복수의 총성 [The Shooting] (1966)

2016/12/03 - [Deeper Into Movie/리뷰] - 바람 속의 질주 [Ride in the Whirlwind] (1966)[복수의 총성]에서 주인공 윌렛은 모래에 흔적을 남기면서 등장한다. 길을 잃지 않으려고 주의하는 그의 모습은 그러나 무의미한 행동으로 판별난다. 윌렛이 친구 콜리를 만나게 되면서, 강력한 미스터리가 윌렛을 포박하기 때문이다. 공포에 떨고 있는 콜리는 윌렛에게 윌렛의 형이자 동행인이였던 코인과 리랜드가 마을에서 어떤 가족을 쏴 죽였으며, 코인이 볼일을 보러 떠난 뒤 리랜드가 커피를 마시다가 갑자기 총에 맞아 죽었다고 말한다. 앞뒤를 살펴보면 마을에서 일어난 사건의 복수인게 분명하다. 하지만 대체 '누가' 리랜드를 쏴죽였단 말인가? 도입부의 미스터리가 제공하는 [복수의 총..

우리 손자 베스트 [Great Patrioteers] (2016)

[우리 손자 베스트]가 처음 공개되었을때, 이 영화에 대한 반응은 소수의 호평 사이에 대다수의 거부감으로 나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영화는 정치적으로 불공정한 사람들의 패악질을 주인공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개빻은 한남"인 어버이연합과 일베 이용자를 주인공으로 삼았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불러일으켰으며, 그 결과는 흥행 실패였다. 하지만 [우리 손자 베스트]가 정녕 그렇게 단순하게 내쳐야 하는 영화인가? 이 영화에 대한 비판들을 읽으면서 어딘가 핀트가 어긋나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현실을 반영했다고, 자동적으로 훌륭한 영화가 될 수 없다는 건 잘 알고 있다. 그런 믿음은 루카치의 순진한 믿음이나 다름없기도 하니깐. 하지만 [우리 손자 베스트]가 놀라운 점은 그동안 [잉투기]나 [불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