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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향시편 유레카 7: 포켓에 무지개가 가득 [交響詩篇エウレカセブン ポケットが虹でいっぱい / Psalms of Planets Eureka seveN good night, sleep tight, young lovers] (2009)

giantroot2009. 7. 22. 13:52

교향시편 에우레카 7: 주머니가 무지개로 한가득
감독 쿄다 토모키, 사이토 츠네노리 (2009 / 일본)
출연 산페이 유코, 나즈카 카오리, 후지와라 케이지, 네야 미치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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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의 무지개빛 세상

[교향시편 유레카 7: 포켓에 무지개가 가득](이후 극장판으로 약칭)은 2005년 방영되었던 TV 애니메이션 교향시편 유레카7(이하 TV판)의 극장판입니다. 주인공인 렌턴 서스턴과 히로인인 에우레카의 우주와 운명을 초월하는 사랑을 다룬 이 애니는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일본 애니메이션입니다. 따라서 이번 극장판 역시 2009년 Pifan에서 보고 왔습니다. 단점도 있었지만, 한때 제 감수성을 건드렸던 애니메이션의 극장판답게 저를 만족시켜줬습니다.

극장판은 TV판하고는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렌턴과 에우레카의 운명적인 사랑을 다루는 이야기 구조는 TV판하고 같습니다. 하지만 그 외에는 모두 달라졌습니다.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은 TV판과 같은 외양을 하고 있지만 정신적인 조형이나 설정들은 판이합니다. 이 중 가장 극적인 변화를 보인 인물은 홀랜드일텐데 이 인물를 비롯한 월광 스테이트 멤버들의 설정이 달라지면서 그의 정신적 성숙이 상당히 절박해졌습니다. TV판에서는 주변 인물들 간의 갈등만 겪으면 됐지만, 극장판에서는 목숨을 내놓느냐 마느냐의 문제로 발전했기 때문입니다.

같이 보러 갔던 저희 형은 이 애니의 이야기 구조가 신화 구조와 많이 비슷하지 않냐는 지적을 했는데, 만약 그렇게 본다면 이 애니는 신화 자체라기 보다는, 신화의 탄생과 기록 과정에 대한 이야기일 것입니다. 실제로도 기록자, 구술자, 당사자의 역할에 대한 고찰이 돋보이는 부분이 있고요. 재미있는게, 이 탄생과 기록 과정 속에 담긴 문제 의식이 의외로 일본 내적인 상황하고 연관이 되어 있다는 겁니다. 아네모네의 "당신들은 왜 당신들의 신화를 만들지 않는데?" 대사가 그렇죠. 저는 이 대사에서 [도쿄 소나타]의 회사에서 쫓겨난 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가부장을 떠올렸습니다. 이 대사와 감독의 말을 듣고, 일본이라는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이 일본 창작자들에게 어떻게 영향을 주고 있는건지 궁금해졌습니다. 적어도 그들이 보기엔 일본 사회는 패기나 열정이 없는 사회인가 봅니다.

전반적으로 이야기는 두 축으로 진행됩니다. 한 쪽에서 에우레카와 렌턴의 운명적인 사랑을 다루는 동안, 다른 한 쪽에서 세계정부 지도자인 코다를 중심 인물로 삼아 세계관에 대한 정보들을 쏟아냅니다. 이런 두 축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극장판이라는 포맷에 맞추려는 전략으로 보이지만, 그 때문에 정보가 너무 쏟아져서 종종 보는 동안 헤매기도 했습니다. 물론 지루하거나 페이스가 나쁘거나 그렇진 않지만, 종종 많은 정보량을 감당하질 못해 대사들이 관념적으로 변하기도 하고, 전개도 거칩니다. 게다가 연출 역시 TV판의 재구성(감독은 리믹스라 정의하더군요.)을 기조로 해서 새롭다는 느낌은 적습니다. 실제로도 TV판과의 링크가 상당히 큰 편이고요. 팬이야 좋지만 독자적인 완결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이 작품은 그 단점들을 감싸안을 정도로 좋은 점들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이 극장판에서 렌턴과 에우레카는 고전적인 비극에 등장하는 연인들처럼 보입니다.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사이였지만 그들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이 무수한거죠. 무척 전형적이지만, 여전히 힘이 센 멜로드라마이고 신화적인 구조하고도 잘 어울립니다. 묘사 역시 쓸때없이 과장된 묘사 없이 진솔한 묘사여서 좋더라고요. 다소 으시시하면서도 슬픈 월광 스테이트 멤버들의 묘사도 좋았습니다. 이처럼 이 애니의 장점들 역시 새롭진 않습니다만, 성실해서 좋은 부분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또! 유생 니르바슈와 디 엔드의 귀여움은 역대 최강입니다.

극장판이 독립적인 완성도를 지녔다고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원래 리믹스라는 것은 결국 원곡에 종속되어 있는 작업이니깐요. 게다가 내용으로 봐도 TV판의 후속작 혹은 연관작이라는 느낌이 무척 강합니다. 하지만 세간의 부정적인 여론과 달리, 전 이 리믹스를 즐겼습니다. 진지하게 파고들 구석도 있었고 전형적이지만 힘이 센 멜로드라마도 좋았고요. 전 아직도 이 세계관과 등장 인물들을 사랑하나 봅니다.

P.S.1 부제는 [미 앤 유 앤 에브리원]의 일본판 제목에서 따왔습니다.
P.S.2 TV판 보신 분들, 문도기가 홀랜드에게 반말까는 풍경이나 햅프가 등짝을 보자!를 외치는 장면을 상상해보셨습니까? 여기서 합니다. :P 그나마 문도기나 햅프는 그걸로나마 존재감이라도 있었지 다른 멤버들은 뭐...
P.S.3 감독이 코넬리우스 (오야마다 케이고)를 닮아서, 상영 끝나고 감독에게 코넬리우스를 닮았다고 엉터리 일본어로 뭐라뭐라 했습니다. 감독이 코넬리우스 멋지다고 그러더고요. 잘한건지 모르겠습니다. (...) 여튼 싸인을 받았는데, 붓펜으로 받아서 안습.
P.S.4 엔딩 테마는 슈퍼카 보컬(iLL)이 맡았습니다.

2006/08/20 - [Man Next Door/리뷰] - 교향시편 유레카 7 [交響詩篇エウレカセブン/Eureka Seven] - All You Need is 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