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z Walzer
애니메이션 및 만화는 사실 현실감을 도입하기엔 좀 부적합한 장르이다. 아무리 세밀한 그림을 그려내도 실사가 가지는 압도적인 무게와 몸짓을 살리기엔 역부족이다. 그림이라는게 이미 현실에 있는 것을 창작자의 시선으로 재해석한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어서 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 애니메이션과 만화는 실사가 하지 못하는 무제한의 상상력을 마음껏 펼쳐 왔다.
하지만 미국 만화가인 아트 슈피겔만의 [쥐]라는 무시무시한 작품이 나오면서 이야기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만화의 상상력과 다큐멘터리의 강렬한 현실 고발이 결합한 이 작품은 처음 보았을때, 난 정신 세계가 뒤바뀌는 충격을 받았다. '이런 식으로도 상상할 수 있구나!'라는. 그리고 오늘 난 [바시르와 왈츠를] 보면서 비슷한 충격을 받았다. '이건 듣지도 보지도 못한 물건이다!'라고.
레바논 내전 당시 작전 때문에 죽인 23마리 개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환영을 꿈꾼다는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주인공인 아리 풀먼은 자신에게 레바논 내전에 대한 기억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후 친구들을 찾아다니고 다양한 사람들을 인터뷰하면서 자신의 사라진 기억을 찾아가기 시작하는데...
[바시르와 왈츠를]은 말 그대로 무시무시한 애니메이션이다. 아마 영향을 받은듯한 [쥐]가 가지고 있던 특유의 은유법은 사라졌지만, 대신 그 자리엔 뭐라 말할 수 없는 잔혹한 시적 아름다움이 있다. 조명탄의 불빛을 배경으로 지옥의 묵시룩 처럼 바닷가에서 천천히 일어서는 아리와 친구들, 바다를 떠다니는 나체 여인에 매달려 우울하게 위로받는 듯한 군인,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터를 당당하게 걸어가는 종군 기자와 그 반대로 벌벌 떠는 카메라 기사, 죽어가는 말과 클로즈 업 된 눈동자등 이 애니에는 초현실주의 시처럼 난해하지만 강렬한, 말 그대로 애니메이션만이 가능한 장면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이 애니의 놀라운 점 중 하나는 그런 애니메이션만이 가능한 미학을 추구하면서도 다큐멘터리의 강렬한 현실 고발을 동시에 공존시켰다는 것이다. 저 초현실적인 이미지들은 단순히 아름다움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전쟁으로 피폐해진 인간들의 정신과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종종 인터뷰 부분에서 살짝 늘어지는 감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날렵하게 통제되어 있다. 그 예로 아리가 공항에서 환상에 빠졌다가 다시 현실로 되돌아가는 부분은 그야말로 통렬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애니는 그런 강점들을 능숙하게 이용해 개인의 기억이 정치적인 담론으로 확장되는 순간을 멋들어지고 강하게 묘사했다는 것이다. 아리의 잃어버린 기억과 초현실적 이미지들은 모두 전쟁의 잔혹함을 목격자로써 관찰해야 하는 양심을 지닌 평범한 인간의 죄책감과 그렇게 만든 전쟁의 잔혹성을 모두 증언하고 있다. 마지막에 끝내 되찾은 기억 속에서 그는 가족을 잃고 울부짖는 팔레스타인 여인들을 그저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실제 다큐멘터리 영상이 나오면서 끝난다. 이것이 모두 진짜 있었던 일이라고 증언 하듯.
이제 내 개인적인 이야기를 좀 해보겠다. 난 이 애니가 끝났을때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울었다. (2008년 12월 5일 4시 50분 메가박스 동대문점에서 소리내서 울던 어떤 사람이 있었다면 그건 나다. 사과의 말을 전한다.) 날 슬프게 만든 건 중동의 분쟁이 종식되더라도 인간이 있는 한 전쟁은 어디선가 계속 될 것이며 목격자로 고통받는 아리 풀먼과 그 친구들이나 무고하게 죽은 팔레스타인 인 같은 사람들이 계속 생겨날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였다. 그리고 그런 부조리한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또 나를 슬프게 했다.
하지만 난 금세 눈물을 닦았다. 아리 풀먼이 이 작품을 만든 것은 단순히 신세 한탄을 위해 만든 것은 아닐테니 말이다. 그가 전하고 싶었던 것은 이런 비극이 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도록 관객들이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을 하자는 것일테니. 그것이 목격자로써 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증언일 것이다. 그러기에 이 애니가 그리도 강렬하고 아프게 다가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올해의 극장용 애니메이션은 여지없이 이거다.
어쨰서인지 게임 메탈 기어 솔리드 4 엔딩의 오타콘과 솔리드 스네이크의 대사가 머리 속을 맴돈다. 정작 게임은 안 해보고 잡지에 실린 대사만 보았지만, 왠지 이 애니와 어울리는 것 같아 인용하겠다.
솔리드 스네이크: 아니,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어. 지켜보는 거야. 이 다음 시대가 어떻게 움직일지를.
오타콘: 알겠어. 그러면 나도 따라 가지.
(솔리드 스네이크가 왜 따라오냐고 물어보자)
오타콘: 그래, 그래서 내가 필요한 거야. 목격자 (오디언스)로서 말이지. 스네이크의 최후에 입회하는 바깥(아웃사이드)에서의 목격자라는 것이지. 내가 그것을 후세에 전하겠어.
PS1. 삽입곡 면면이 무척 화려하다. 퍼블릭 이미지 리미티드, OMD, 케이크 등 록을 사랑하면 절대 놓칠 수 없는 이름들이 엔딩 크레딧을 수놓고 있다. 다만 어떤 곡은 원곡 그대로 쓰지 않고 어느정도 번안을 한 듯 싶다.
PS2. 어찌보면 리뷰에도 언급한 [쥐]의 후속작이라 봐도 무방할 듯 싶다. [쥐]에서 살아남은 유대인들이 결국 독일인이 했던 짓을 똑같이 반복하고 있다는 내용이니... 이렇게 보면 [쥐]의 엔딩이 참 암울해 보인다.
PS3. [레몬 트리]를 보셨다면 데자뷔가 일어날만한 장면이 있다.
PS4. 부제는 일본 록 밴드 쿠루리의 2007년 앨범에서. 독일어인데, 번역하자면 '왈츠를 추어라' 정도 된다.
PS5. 그나저나 한국 예술 영화 시장은 중년 여성이 잡고 있나 보다. 지금까지 본 예술 영화에서 거의 예외없이 중년 여성 관객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