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ght Test/리뷰

심즈 3 [The Sims 3] (2009)

giantroot2009. 7. 10. 19:09

기본의 중요성


솔직히 전 EA에서 윌 라이트 없이 심즈 3를 내놓겠다고 선언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조금 불안해졌습니다. 아무리 윌 라이트의 참여 비중이 적었던 심즈 2가 성공적이였다 해도 그 세계관을 만들어낸 게임 디자이너를 제외하고 만든다는 계획 자체는 어딘가 위태위태해 보였습니다. 특히나 심즈 시리즈는 게임 디자이너의 개성이 많이 묻어있는 게임이였기 때문에 잘못 확장했다가는 그 시리즈를 (말 그대로) 말아먹을 가능성이 컸습니다. 다행히 심즈 3는 전작들의 성과를 말아먹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훌륭히 이어갔으며, 심지어 재미있기까지 합니다.
 
EA가 선택한 방식은 전작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 세세한 점들을 수정해나가는 형식였습니다. 따라서 심들의 삶을 따라간다는 시리즈의 기본적인 틀은 그리 변화하지 않았고, 확장팩에서 시도되었던 실험들을 개량하거나 수용하는 식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아마 (확장팩들을 포함한) 전작들과 심즈 3 사이의 큰 차이점이라면 게임의 진행 방식일 것입니다. 전작들이 마을 하나를 가지고 정교한 인형놀이를 플레이한다는 느낌이 강했다면, 이번 심즈 3은 주 캐릭터의 시점으로 따라간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이 때문에 심들의 관계 역시 한 개인과 개인이 맺는 관계라는 느낌이 강해졌습니다. 한마디로 심들이 좀 더 개별화되었다고 할까요.

그 다음으로 눈에 띄는 변화라면 평생 행복이라는 개념입니다. 일종의 달성 목표 비슷한 것인데, 기존 게임들의 달성 목표와 달리 강제성은 없게 디자인되어서 심즈 시리즈의 미칠듯한 자유성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게이머의 성취욕을 성공적으로 자극하게 됬습니다. 이 기능에서 파생되는 기능도 있어서, 적절히 쓰면 합법적인 사기 플레이도 가능해졌습니다. 그 외 아르바이트 개념 도입과 구입 모드와 건축 모드의 개량, 캐릭터 제작의 세분화, 감정 조절 미터 수정 등이 눈에 띕니다. 전반적으로 무난하면서도 안정적인 변화입니다.

하지만 이 게임의 재미는 여전히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변화한 부분이 아닌 변화하지 않은 부분들, 즉 기본적인 요소들에서 나옵니다. 심즈 시리즈를 하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게임의 재미는 가족놀이 (혹은 인형놀이)의 원초적 즐거움하고 동일합니다. 가상의 캐릭터의 일상 생활을 따라가면서, 그 캐릭터에게 감정 이입하거나 장난을 치는 점에서 재미가 나오는거죠. 윌 라이트는 거기다가 RPG적인 능력/감정 관리과 독특한 유머 감각, 심시티에서 쌓아왔던 윌 라이트 특유의 미친 자유도를 지닌 시뮬레이션 게임 설계를 독창적으로 혼합해 전후무후한 볼 수 없는 게임을 만들어냈습니다. 이 모든 게 1편에서 이뤄낸 것이라는 점에서 새삼 윌 라이트가 얼마나 대단한 게임 디자이너인지 느끼게 됩니다. 물론 그 이후로 EA와 다른 프로그래머들이 윌 라이트의 업적을 이어가면서도 그것을 디테일하게 다듬어낸 노고도 무시할수 없겠지만 말이죠.

사실 심즈 3는 비평적으로 딱히 할 말이 없는 게임입니다. 물론 떨어지는 점 없이 모범생처럼 잘 만든데다 여전히 재미있다는 점도 있겠죠. 하지만 그것보다는 심즈 1에서 윌 라이트가 이뤄낸 업적이 대단했고, 그 업적이 시리즈 전반을 지탱하고 있기 때문일 가능성이 더 클 것입니다. 하긴 윌 라이트 첫번째 히트작인 심시티 시리즈도 그랬죠. 이번 작에서 EA가 증명한 것은 윌 라이트 없이도 이 시리즈를 잘 이끌고 나갈 수 있다는 점일겁니다. 전 그 점만으로도 만족스럽습니다.

P.S.1 게임 내 오디오 기기를 틀 수 있는 음악 중에 영국 일렉트로 팝 그룹 레이디트론 (Ladytron)의 곡들이 있더라고요. 아는 이름이여서 괜히 반가웠습니다.

P.S.2 너무 튀는 내용이여서 본문에서는 제외했지만, 이번 심즈 3의 쾌거는 단연 런처를 이용한 인터넷 업데이트 기능 아닐까 생각합니다. 유저 모드 공유와 기술 지원이 쾌적하게 변했다고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