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리뷰는 PC판(영어)을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원래는 부제가 없지만, DOS 시절 나온 게임과 구분하기 위해 타락한 왕이라는 DS판 부제를 붙였음을 알려드립니다. 이후 2008년 페르시아의 왕자(본작)는 타락한 왕으로 칭하겠습니다.
언제나 아무 말 없이 그대 손으로
페르시아의 왕자 시리즈는 여러모로 게임사에 중요한 시리즈입니다. DOS 시절에 나온 두 편의 작품은 액션 게임의 이정표를 하나 세웠으며, 페르시아의 왕자: 시간의 모래는 고전의 매력과 3D의 현란함을 동시에 잡으면서 훌륭한 명작으로 나왔습니다. 그 이후로 이어진 시간의 모래 삼부작도 나름대로 준수한 완성도를 자랑했습니다.
시간의 모래 삼부작의 마지막 작품인 두개의 왕좌 이후, UBI는 시간의 단도 삼부작을 종결시키고, 완전히 새로운 페르시아의 왕자를 들고 나타났습니다. 바로 이번 작품입니다. 이번 타락한 왕은 기본적으로 기존 삼부작 시스템을 충실히 따르고 있지만 세세한 점에서는 혁신적인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우선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당연히 게임오버가 없다는 점일텐데, 평상시나 전투때나 죽을 위기에 처하면 히로인이자 파트너인 엘리카가 구해줍니다. 이런 게임 오버가 없다는 점은 발매 전부터 난이도를 낮출 수 있다는 우려를 샀으며 실제로 몇몇 플레이어나 게임 매체에서는 단점으로 이것을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게임을 해보면 의외로 이 시스템이 꽤 괜찮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우선 절벽이나 높은 곳에 떨어져 구해지면 엘리카가 편리하게 다음 목적지에 내려주는게 아닌 떨어지기 이전에 시작했던 곳에 다시 돌려보냅니다. 전투때도 이 시스템이 비슷하게 이뤄지는데 위기때 엘리카가 구해주는 대신, 적 에너지가 다시 채워집니다. 즉 수호천사 엘리카(*1) 시스템은 절대로 플레이어를 '떠먹여 주지' 않으면서 '불필요한 로딩 없이 성취욕을 자극'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성공적입니다.
전투 시스템에 대해 적어보자면 타락한 왕은 시간의 모래 삼부작와 달리 1:1 전투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으며 체력이나 기타 등등 신경 쓸 부분이 상당히 줄어들었습니다. 대신 인디고 프로퍼시(aka. 파렌하이트)나 리듬 액션 게임처럼 리듬감과 순발력을 극도로 강조했는데, 이로 인한 스릴감이 상당합니다. 전 전투는 처음엔 다소 헤맨지라 중후반부 부터 다양한 콤보를 넣어봤는데, 콤보 연출이 스피디하고 날렵해서 꽤 흥미진진하더군요. 다만 콤보 구성이 좀 단순해서 후속작에서는 조금 더 복잡하게 구성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사실 이번 작품이 전체적으로 액션보다 어드벤처에 방점이 맞춰져 있어서 액션성이 전 시리즈 중 가장 낮은 편입니다. 다음 작품에는 변화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전반적으로 난이도가 낮아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후반에도 쉬운 난이도를 유지하는 것은 아닙니다. 중반 들어서면 적들이 다양한 상태 이상을 구사하고, 타락자 네 명이 풀어놓은 트랩들 회피, 오즈마르드 발판을 이용한 조작(*2), 퍼즐 등 체감 난이도가 점점 올라가기 시작합니다. 설렁설렁 진행해서는 통과 못 할 부분도 존재하고요. 난이도 밸런스는 무난하게 잘 맞춘 편입니다.
일직선 진행이였던 전작들과 달리 이번 작품은 자유도가 높습니다. GTA 시리즈처럼 극단적으로 자유도가 높은 건 아니지만 가야 할때도 꽤 많고, 발판 해방 순서에 따라 보스 순서 역시 달라집니다. (이벤트는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다만 한 지역을 깨고 나서 할 수 있는 게 적다는 게 다소 아쉽습니다. 고작 빛의 근원 모으거나, 경치 구경이 전부니깐요. 그나마 빛의 근원도 540개 정도 모으면 엔딩 볼수 있기 때문에 후반 들어서면 '난 1001개를 다 얻어서 도전 과제 점수를 얻고야 말겠어!'라는 코어 게이머들을 제외하면 별 의미가 없습니다. 그걸 다 모은다고 엔딩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요.(*3) 도전 과제 따윈 없는 PC판에는 그 아쉬움이 더합니다.
전반적으로 일본 게임의 영향이 많이 느껴지는 부분이 많습니다. 엘리카와 열심히 대화하는 건 테일즈 시리즈의 스킷에서 영향을 받은 듯 하고, 배경이나 캐릭터 설정에서는 이코나 완다의 거상 같은 독특한 일본 어드벤처 게임의 영향도 어느 정도 보입니다. 전 이런 일본 게임 외에도 어드벤처의 고전인 미스트 시리즈의 입김도 조금 느껴지더군요. 물론 이런 요소들은 영향 수준에서 그칩니다.
이번 타락한 왕은 분위기나 이야기가 상당히 좋습니다. 사실 시간의 모래 이후 나온 전사의 길이나 두개의 왕좌는 너무 어둡고 폭력적인 분위기로 가는 실수를 범했습니다. 그런 폭력적인 분위기는 갓 오브 워 시리즈의 전매특허지, 페르시아의 왕자 시리즈의 전매특허는 아닙니다. 이 시리즈의 전매특허는 신화나 동화적인 분위기입니다. 아름답지만, 때론 잔혹하기까지 한 그런 분위기라고 해야 할까요? 이런 점에서 타락한 왕은 낯선 세계에 온 듯한 신비로움과 아리만과 그 타락한 부하들의 음습함이 잘 결합된 편입니다. 시간의 모래의 미덕을 잘 살리면서 차별화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이런 미학으로 삼부작 전체를 밀고 나가도 괜찮을 듯 싶습니다.
이야기 자체는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캐릭터 설계나 캐릭터 간의 드라마가 굉장히 잘 짜여져 있습니다. 먼저 이번 왕자는 능글능글하게 유머를 날리고 돈돈거리는 속물적인 무신론자(...)(*4)지만, 의외로 진지하고 책임감도 강하고 후반 들어서 보여주는 엘리카에 대한 감정 등으로 역대 왕자 중에서 가장 인간적인 깊이가 있습니다. 히로인이자 파트너인 엘리카 역시 진행 방해 AI나 스토리 진행 도구에 머물렀던 파라에 비해 굉장히 도움이 많이 되고, 품위있으며 신앙심 가득한 캐릭터로 왕자와 좋은 대비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야기 때문에 이 둘이 거의 붙어 다니는데, 이로 인해 생기는 충돌이나 감정이나 유머들이 꽤 재미있습니다. 영어로 들어도 재미있는데, 완벽 한글화로 이 게임을 즐긴 분들이라면 더 재미있을 꺼라는 생각도 드네요. 대사가 꽤 많은 편이지만, 지루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감정 묘사를 성실히 한 덕택에 마지막 왕자의 다소 무모한 선택도 굉장히 설득력 있습니다.
그래픽 역시 무척 좋습니다. 전작처럼 모공간지 사실적인 그래픽은 아니지만, 유럽 만화 풍의 카툰 렌더링이 동화적, 신화적 분위기하고 잘 어울립니다. 옛스러운 기계문명 배경도 상당히 좋고요. 음악 역시 괜찮습니다.
이번 타락한 왕은 이래저래 평이 나뉘는 중이지만, 그렇게 박하게 볼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기본적으로 뭘 만드는 지 아는 사람들이 변화와 안정을 적절히 취하면서 충실하게 만들어낸 '게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잡아볼만한 수작'입니다.
다만 지금보다 다음 편이 더 좋을 것 같다는 느낌은 듭니다. 시간의 모래가 그 자체로 자기 완결성을 띠고 있다면 (*4), 타락한 왕은 완결성보다는 가능성이 더욱 두드러져 보입니다. 이걸 제대로 살려낼지는 다음 편에서 판가름 나겠지만, (비록 제가 좀 까긴 했지만) 준수하게 시리즈를 이어갔던 전사의 길이나 두개의 왕좌를 생각해볼때 기대해봐도 좋을 듯 싶습니다.
*1 이 이름의 고안자는 다름아닌 저희 아버지(...)입니다.
*2 개인적으로 발길,날개->입김,도약 순으로 짜증이 나더군요. 발길하고 날개는 조작하는데 꽤 귀찮습니다.
*3 누설이여서 자세히 적진 않겠습니다만, 엔딩 스탭 롤이 두 개 씩이나 존재합니다. 이게 뭘 의미하는지는 클리어하신 분들은 아실듯 :) 1001개 빛의 근원하고도 연관이 있습니다.
*4 캐릭터 모티브가 스타워즈의 한 솔로하고 인디아나 존스라는군요.
PS1.부제는 루시드 폴의 [버스, 정류장] 앨범 수록곡인 '그대 손으로 (Main Theme)' 가사에서 가져왔습니다.
PS2.여담인데 일본판 엘리카 더빙은 안습의 극치를 달립니다. ORZ 자세한 것은 제 블로그에 포스팅해놨습니다.
PS3.후속작엔 엘리카에게 신발을 신겨주면 좋겠습니다. 맨발로 뛰어다는게 좀 안습하더군요. 신비로운 이미지를 의도한 거 같은데, 물집이라도 트지 않았으려나 걱정하는 1人
PS4. 여담인데 E3 예고편에 시규어 로스의 'Sæglópur'(바다에서 길을 잃다)를 삽입했는데 게임 내 신비로운 분위기와 잘 어울렸습니다. 본 예고편에서는 시아 풀러라는 호주 여가수의 곡이 쓰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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