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 없는 역전
[역전재판] 시리즈는 게임 제작자인 타쿠미 슈가 별다른 야심없이 저예산으로 시작한 어드벤처 게임입니다. 하지만 2001년에 GBA 소프트로 첫 발매된 1편은 의외의 성공을 거두게 되고, 게임은 점점 자기만의 세계와 팬 층을 쌓아왔습니다. 그렇게 2007년, GBA에서 NDS로 갈아탄 완전 신작인 [역전재판 4]가 공개됬습니다.
1,2,3과 달리 4의 주인공은 나루호도가 아닌 오도로키 호우스케라는 변호사입니다.(나루호도... 나오긴 나옵니다만, 나중에 다루겠습니다.) 1편의 나루호도처럼 오도로키도 생초짜 변호사고, 그에게 맡겨진 사건 속에 숨겨져 있는 진실을 파헤쳐야 합니다.
우선 법정 파트에서 증언의 이상한 부분을 공략해서 진실을 밝혀내고 탐정 파트에서 인물들과 대화와 현장 조사를 통해 사실들을 얻는 게임 진행 전반적인 틀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조작감도 전작과 비슷한 느낌입니다. 다만 현장 조사 부분은 터치 스크린의 효과를 톡톡히 보더군요. 직관적으로 변했습니다.
물론 추가된 점도 있습니다. 탐정 파트의 '과학 조사'와 법정 파트의 '꿰뚫어 보기' 라는 요소인데, '과학 조사'는 말 그대로 터치 스크린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파트이고, '꿰뚫어 보기'는 '사이코 록'와 유사한데, 안압 태클(...)로 증인의 버릇을 찾아내는 시스템입니다. 별로 변한 부분이 없는지라, 게임이 무척 안정적입니다. 역재 특유의 '증언 꼬투리 잡기'로 파생되는 유머는 여전히 재미있고, 퀘스트들도 어렵지 않게 '비교적' 논리적으로 잘 짜여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편은 단점이 많습니다. 우선 '과학 조사' 파트는 좀 구색 같습니다. 원래 역재 시리즈 자체가 엄정한 법정물이 아니였기 때문에, 이런 식의 현실적인 요소는 역재와 어울리지 않습니다. 실제로도 '과학 조사' 부분은 잘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틀로 보았을때는 어색하게 끼어있다는 느낌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후반부의 메이슨 시스템과 재판원 시스템도 비슷한 문제점을 안고 있습니다. 나름대로 현실성을 위해 법조계의 최신 흐름을 도입할려고 했으나, 메이슨 시스템은 지나친 비선형 구조로 짜여지는 바람에 매뉴얼 없으면 헤메기 십상이며, 재판원 시스템은 벌려놓은 판에 비해 별 소득이 없다는 인상이 강합니다. '꿰뚫어보기' 같은 건 '사이코 록' 보다 오히려 사실성이 떨어지고요. 인물 파일을 제시할 수 없게 만들어서 게임 진행이 깔끔해지지 못했다는 점도 들 수 있겠네요.
스토리라인 또한 썩 좋은 편은 아닙니다. 1-3편은 그래도 비현실적인 소재를 가지고 썩 괜찮은 이야기를 만들어 냈습니다. 하지만 4편의 이야기들은 그 전편들에 비해 강한 충격이 없고, 결정적으로 '치명적인 구멍들이 많습니다.' 원래 역재 시리즈가 이야기에 구멍이 한둘 있다지만, 이 편은 좀 심합니다. 스포일러 되지 않는 선에서 적어보자면, 최종 악역의 동기가 단순변심에 대한 분노라는 설정은 너무 허술합니다. 게다가 그 악역이 한명도 아닌 여럿 인생 망쳐놓는 일을 저질렀다면 말이지요. 자기완결성을 지닌 1-3편과 달리, 결말에 후속을 암시하는 떡밥도 너무 많습니다.
캐릭터들도 몇몇 제외하면 별 인상이 깊지 않네요. 검사나 변호사나 밍숭맹숭해서 치고 받는 맛은 많이 사라졌습니다. 그래도 히로인이나 2편 증인 같은 경우는 괜찮은 편이였습니다. 참고로 나루호도는 이미지 변화가 굉장히 심하더군요. 전 괴리감마저 느꼈습니다. 뭐 최종보스 같은 분위기(악역은 아닙니다.)도 나름 나쁘지 않아서 즐겼긴 했지만 말입니다.
역전재판 4는 평균적인 완성도와 좋은 유머를 가진 게임입니다. 여전히 흥미진진하고요. 하지만 이런 점들은 이미 1-3편에서도 충분히 봐 온건지라, 이젠 단점들도 슬슬 보이는군요. 나름 대안을 마련하지 않으면 '후기작으로 갈 수로 망가져가는' 전형적인 인기작의 패턴을 밟을지도 모르겠습니다.
PS. 이상하게 쓰기 힘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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