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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앤 머시 [Love & Mercy] (2014)

giantroot2015. 8. 29. 01:13


러브 앤 머시 (2015)

Love & Mercy 
8.4
감독
빌 포래드
출연
존 쿠색, 폴 다노, 엘리자베스 뱅크스, 폴 지아마티, 제이크 아벨
정보
드라마 | 미국 | 121 분 | 2015-07-30

한 사람의 생을 다루는 전기 영화 같은 경우 보통 여러가지 방향이 있기 마련이다. 사실 관계에 충실하게 영화를 만들거나, 아니면 감독의 필터를 통해 해석되는 스타일의 영화. 전자 같은 경우엔 무수하게 쏟아져 나오는 전기 영화들이 있고 후자 같은 경우엔 토드 헤인즈의 [아임 낫 데어]나 거스 반 산트의 [라스트 데이즈]가 있을것이다. 일단 빌 포래드 감독의 브라이언 윌슨 전기 영화 [러브 앤 머시]는 일단은 전자에 속하는 영화다.

보통 전기 영화는 몇몇 시간대를 선택해 집중적으로 보여주거나 개괄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을 보여주는데, [러브 앤 머시]가 선택한 시간대는 두 개다. 불세출의 걸작 [Pet Sounds]를 탄생시키고 또다른 걸작 [Smile]를 만들려고 하지만 실패했던 젊은 브라이언 윌슨과 가족과 친구들, 자신감마저 잃고 폐인처럼 살던 중년 브라이언 윌슨. 영화는 이 두 시기를 연달아 보여주면서 열정과 영감으로 가득찬 청년 시절과 실망스럽고 초라하고 두려움으로 가득찬 중년 시절을 대조시킨다. 이를 통해 [러브 앤 머시]는 위대했지만 파멸로 치닫는 순간과, 밑바닥에서 다시 일어나는 그 두 순간이 공명하도록 주선하고 있다.

포래드와 각본가 마이클 알란 레르너와 오렌 무버먼는 팝의 전설이 겪어야 했던 예술적 영광과 삶의 굴곡을 다루면서 조심스럽게 그 파멸의 순간들을 접근해간다. 기본적으로 포래드는 사실을 묘사할땐 자신의 에고보다는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게 그려내는데 집중한다. 토드 헤인즈나 반 산트가 밥 딜런이나 커트 코베인이라는 인물을 해체하고 재구성했던 것과는 대조되는 태도다. 이런 신중한 태도가 다소 정석적으로 보이긴 해도 캐릭터의 감정과 시대, 서사를 존중한다는 점에서는 잃을것은 없는 연출라고 본다. 포래드의 신중한 연출은 1960년대와 1980년대 캘리포니아 서프 음악 씬을 묘사하는 부분이라던가, 전형적인 구원자이자, 러브 인터레스트로 소모될뻔한 멜린다 레드베터라는 캐릭터를 살려내는데 빛을 발하고 있다. 후자 같은 경우 브라이언과 멜린다의 로맨스를 살려내고 후반부의 구원에 감정적 깊이를 더한다는 점에서 훌륭하다고 할 수 있다.

포래드가 이해하는 브라이언 윌슨은 고전적인 비극을 지닌 결함있는 '히어로'다. 그가 그려내는 브라이언 윌스는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와 마약 중독으로 문제가 있어서 파멸했지만, 동시에 그 잿더미에서 다시 태어난 불사조다. 포래드와 각본가들은 브라이언이라는 대상을 존중하면서도 그가 망가지고 실패했던 인간이라는것도 잘 드러낸다. 유진 랜디에게 의존하면서 벌벌 떠는 장면이라던가, 아버지에 대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며 뛰쳐 나가는 브라이언 윌슨은 자기 파괴 끝에 퇴행한 아이처럼 보일 정도다. 이처럼 포래드와 각본진이 브라이언이 만들어낸 음악에 대한 재평가나 찬양 대신 (오히려 포래드는 마이크 러브와 아버지인 머리 윌슨 등을 통해 당시 브라이언이 겪어야 했던 혹독한 비판과 실패를 가감없이 재현하고 있다.)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살아갈 의지를 얻는 부분에다 서사를 집중하고 결말도 그에 맞춰서 끝냈던 것도 훌륭한 선택이라 본다.

그렇기에 [러브 앤 머시]는 [다크 나이트 라이즈]나 [더 울버린]과 같은 히어로 영화에서 자주 볼수 있었던 몰락과 부활 서사 패턴을 따른다. 단지 이 영웅이 부활해 얻는건 슈퍼 히어로식 능력과 가치관이 아니라 정상적인 삶에 대한 의지와 예술가로써 감각이다. 실제로 2004년 본인 명의로 마침내 완성시킨 [Smile]이 '마침내 돌아온 팝의 영웅'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나아가 브라이언 윌슨식 바로크 팝에 대한 재평가 및 추종이 2000년대부터 (애니멀 콜렉티브, 그리즐리 베어, 플릿 폭시즈 같은 뮤지션들이 그렇다.) 이뤄진걸 보면 이런 구조가 그럴싸하기도 하다.

다만 작중 악역으로 등장하는 유진 랜디는 좀 아쉬운 감이 있다. 폴 지아미티의 연기는 언제나 훌륭하지만 뭔가 더 있을거라는 아쉬움이 있다고 할까. 유진 랜디가 브라이언 윌슨의 작업물에 크레딧을 올리고 간섭하는 장면에서 우리는 유진이 예술가로써 자부심을 누리고 싶어했다는 욕망을 어렵지 않게 읽어낼수 있다. 하지만 영화는 왜 유진이 그렇게 생각하고 집착했는지에 대해서는 비워두고 있다. [빅 아이즈]의 월터 킨 같은 유형의 인물이라 할까. 각본가 레르너도 실제 유진 랜디가 너무 '만화적'이라 다루는게 매우 힘들었다고 하고 브라이언 부부 본인이 유진 랜디가 저것보다 더 심했다고 주장하는걸 보면 정말로 유진 랜디가 별다른 생각이 없이 컬러풀했던 사람이였을 가능성도 있지만 그래도 그 빈 부분을 상상력으로 채워넣었어도 괜찮았을건데, 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 외  [Smile] 세션 묘사하는 장면에 반 다이크 파크스 본인 말처럼 이건 "브라이언의 영화"기 때문에 어쩔수 없는 부분도 더러 보인다.

포래드가 역사적 사실에서 자유로워지는 순간이 있다면 바로 브라이언의 광증을 묘사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이 부분에서 포래드는 브라이언 윌슨이 겪는 현실들의 톤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광증을 표현하고 있다. 식기들이 부딪혀 소리가 합성되어 참을수 없는 짜증을 유발하는 장면이라던가, 멤버들이 모인 수영장에서 영문도 모르는 헛소리를 지껄이는 장면, 유진 랜디와의 굴종적인 관계를 묘사하는 장면 등이 그렇다. 자칫하면 브라이언 혼자만 우스꽝스러워질수 있는 부분들였지만 폴 다노와 존 쿠삭이라는 훌륭한 배우는 그 우스꽝스러움을 배재하고 브라이언이 겪어야만 했던 고통을 진솔하게 그려내고 있다. 홀로 남겨져 그렇게 찾던 소리에 둘러싸여 꽃이 피어나는 환각에 해방감를 느끼는 장면이나 브라이언이 과거에서 해방되는 장면처럼 역사적 상상력 없이 순수히 포래드만의 상상력만으로 이뤄져 있는 장면들 간의 톤 조절도 잘 되어있다.

무엇보다도 포래드는 아티커스 로스라는 훌륭한 음악적 우군을 얻을수 있었다. 아티커스 로스는 음악 영화의 가장 큰 난관인 '음악 묘사'을 가볍게 돌파했다는 점에서 영화의 미덕에 가장 큰 부분을 책임지고 있다. 아티커스 로스는 꽤나 버거운 난관을 비치 보이스와 브라이언 윌슨이 좋아하는 포 프레시맨, 브라이언 윌슨 본인의 작업을 잘라붙이고 재구성하는 방식 (매시업)으로 돌파했는데, 이게 상당히 효과적이다. [러브 앤 머시] 자체가 머릿속에서만 떠도는 사이렌 같은 아름다운 소리들의 '조각을 엮고 배치'하려는 천재의 얘기이며, [Pet Sounds]를 위시한 실제 비치 보이스와 브라이언 윌슨의 작업들이 스튜디오를 악기처럼 쓰면서 '사이키델릭'한 느낌을 추구했다는 걸 생각해보면 매우 적절한 방법론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포래드는 그렇게 만들어낸 아티커스 로스의 외재적인 사운드트랙을 브라이언의 머릿속에 존재했던 것처럼 내재적 사운드트랙으로 묘사하는데 성공했다. 과거의 유령들이 홀린듯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고요하면서도 오싹한 슬픔을 머금은 사운드트랙이라 할 수 있다.

[러브 앤 머시]는 역사적 사실과 인물에 충실하게 만들어진 모범적인 사이코 드라마-전기 영화다. 배우들의 연기는 훌륭하고, 음악 연출도 세련되게 잘 뽑아냈다. 물론 이 영화가 [라스트 데이즈]나 [아임 낫 데어]처럼 어떤 거장의 아우라가 느껴지는 영화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빌 포래드 감독이 상당히 어려울수 있는 작업을 훌륭하게 돌파해냈다는 점에서 나름의 가치가 있다고 본다. 브라이언 윌슨과 비치 보이스 팬들이라는 좋은 선물이 될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