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eper Into Movie/리뷰

가족의 친구 [L'amico di famiglia / The Family Friend] (2006)

giantroot2015. 8. 12. 02:27

파올로 소렌티노의 [가족의 친구]는 제목부터 하나의 은유다. '이름을 말해서는 안 되는 그 분', '높으신 그 분', '어른의 사정' 같은 뉘앙스를 띄고 있는 관용구라고 할까. 소렌티노는 제목부터 관용구를 말하는 발화자와의 관용구 간의 묘한 관계를 드러내려고 하고 있다. 그렇다면 대체 영화는 어떤 묘한 관계를 말하려고 하는가? 시놉시스와 제목을 읽어본 사람이면, 이게 뭘 은유하고 있는지를 쉽게 알아차릴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영화는 도입부에서 그 은유가 뭔지 명백하게 드러내고 시작한다. 머리만 파묻힌 수녀와 수녀를 지켜보고 있는 두 남자. 익숙한 풍경이지 않는가. [가족의 친구]는 마피아 영화다.

하지만 영화가 무엇을 은유하는지 안다고 해도, 도입부를 통해 앞으로 벌어질 이야기를 추정하기 힘든 편이다. 소렌티노는 도입부에서 시퀀스와 시퀀스 간의 관계를 느슨하게 해체해놓고 퍼즐처럼 서서히 짜맞추는 형식의 서사 전개를 쓴다. 머리만 파묻힌 수녀-방에 앉아있는 늙은 남자-버스에서 내리는 소녀-말을 지켜보는 카우보이 차림의 남자-미녀 대회에 나온 여자-배구하는 여자들 이런 식으로 툭툭 튀어나와 기묘한 미스터리를 만든다. 물론 아예 컷 하나 하나를 잘근잘근 잘라내 전시하던 [리바이어던] 같이 대체 무슨 의미인지 파악하기 힘들 정도는 아니지만, 소렌티노가 컷을 구성하는 방식은 이상할 정도로 느슨하다. 우리는 배구하는 여자들이 대체 무슨 관계로 오프닝에 등장하는지 한창 지나야 알수 있다.

그 개별 시퀀스의 캐릭터가 다른 시퀀스에 등장하면서 영화는 본격적으로 서사와 관계를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도입부의 시퀀스들을 조합해보자. 못생기고 늙은 남자인 제레미아는 카우보이 차림을 한 지노랑 같이 고리대금업자다. 수녀는 아마도 제레미아의 사업 문제로 끌려온 여자일것이다. 제레미아와 지노의 고객 중에는 미녀 대회에 나온 여성 로잘바의 아버지가 있다. 로잘바의 결혼식을 위해 아버지는 이들에게 돈을 빌리고, 제레미아는 로잘바를 탐한다. 로잘바는 제레미아를 경멸한다. 그리고 이런 중심 플롯 사이에 제레미아가 돈을 빌린 고객들의 사연이 등장한다.

[가족의 친구]가 이들을 엮고 캐릭터를 구성하는 방식은 지극히 아름다움의 관점에서 이뤄지고 있다. 마피아 영화에서 등장할법한 사채업자 제레미아는 그야말로 돈에 환장한 늙은이의 표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가 살고 있는 집은 죽어가는 병든 어머니와 퀴퀴한 분위기로 가득한 곳이며, 제레미아 자신도 매우 추레한 차림새와 부상을 입은 불완전한 육체가 강조된다. 그것과 대조되게 제레미아는 늘상 아파트 창문으로 배구를 하는 여자를 훔쳐보고 이민자 여성을 더듬고 미녀들에게 집적거린다. 제레미아에게 아름다움은 자신이 가질수 없지만 꼭 있어야 하는 무언가다. 

제레미아 주변 캐릭터들도 미의 관점에서 구성되어 있다. 지노는 가질수 없는 타자의 아름다움을 동경하고 흉내내는 자고 (소렌티노는 분명 지노를 통해 스파게티 웨스턴에 대해 고찰을 하고 있다.) 미녀 대회 로잘바는 반대로 제레미아가 그렇게 원하던 아름다움을 소유한 자다.  소렌티노는 이런 탐미적인 관점을 영화 전반에 뿌리는데, LCD 사운드시스템과 랄라 푸니, 안토니 앤 더 존슨즈부터 클래식 음악까지 이어지는 감각적인 삽입곡과 극도로 스타일을 강조한 미장센으로 드러낸다. 소렌티노는 컷과 컷의 연결보다는 컷 하나의 세공에 극도로 관심을 기울이는 감독이다. 도입부의 컷들을 보라. 부감과 클로즈업, 롱 샷 등 소렌티노가 배치하는 컷들은 안토니 앤 더 존슨즈의 'My Lady Story'의 음률을 따르고 있다. 소렌티노는 오프닝을 마치 자기가 대신 'My Lady Story' 뮤직 비디오를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만든듯 하다.

소렌티노는 이런 아름다움에 대한 탐닉을 캐릭터와 행동 동기를 구성하는 요소로 삼으면서 그것의 권력 관계를 그려낸다. 소렌티노가 보기에 이탈리아, 나아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아름다움은 돈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대표적으로 제레미아가 빚을 탕감해주는 대신 여자를 추행하는걸 허락하는 장면에서 소렌티노는 자본가의 폭력적인 착취와 구조를 구체화시킨다. 그리고 그 구조는 은밀하게 배어들어 있다는걸 제레미아가 만나는 캐릭터들을 통해 끊임없이 주지시킨다. 그들은 돈을 빌리기 위해 제레미아를 경멸하면서도 그에게 굴종한다. 제레미아는 그런 그들에게 자신이 '가족의 친구'라는 점을 주지시킨다. 마치 마피아 대부처럼 말이다. 물론 그 돈에 대한 문제가 해결되면 그들은 제레미아를 배반하거나 무시한다. 소렌티노는 이 시절 자신의 영화가 매우 정치적이라 주장했는데, 일상의 정치을 다룬다는 점에서 일리가 있다. 많은 평론가가 지적했듯이 소렌티노의 영화는 아름다움에 탐닉하면서도 그 아름다움을 둘러싼 현실의 추한 면모를 드러내는데도 주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페데리코 펠리니의 적자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소렌티노는 제레미아에게 매정하지 않다. 영화 중반부 소렌티노는 회사에 돈을 빌리기 위해 방문하는 제레미아와 지노가 창녀의 대접을 거절하는 부분에서 제레미아가 아름다움에 집착하는 모습의 이면을 보여준다. 그의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은 방법은 잘못되더라도 진실한 것이다. 그리고 로잘바가 결혼 생활에 실망해 제레미아를 찾아오는 순간부터 제레미아가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이 돈키호테적인 열정였다는걸 숨김없이 드러낸다. 거의 강간에 가까울 정도로 불편하게 시작한 로잘바와 제레미아의 관계가 역전되는 이 순간에서, 소렌티노는 자신의 시선이 어느정도 제레미아와 공유하는 부분이 있다고 인정해버린다. 제레미아는 추한 늙은이지만 그가 아름다움을 탐하는 열정 자체는 진실하며 소렌티노는 종종 그 열정에 공명한다. 이때 소렌티노는 느끼한 삶과 죽음, 아름다움에 대한 경구를 집어넣는것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소렌티노는 다시 한번 그 공명을 뒤집어 엎는다. 최후에 로잘바가 도피를 위해 선택하는 사람은 제레미아가 아니라 지노다. 지노와 제레미아가 다른 부분은 제레미아는 여전히 이탈리아 안에 머물러 있다면, 지노의 탐미는 이탈리아 밖으로 향해 있다는 점일것인데, 로잘바가 도피를 위해서는 제레미아보다는 지노가 자신에게 맞았다고 생각해볼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로잘바의 선택 이후 소렌티노는 이상할정도로 결론 내리는걸 주저한다. 대신 그가 선택하는건 도피다. 인물들의 종적과 심리는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태양은 외로워]처럼 애매한 컷들 사이에서 흐지부지 사라지고, 소렌티노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장면은 금속탐지기를 들고 아무도 없는 해변가에서 무언가를 찾는 제레미아다. 이 장면이 제레미아의 아름다움에 대한 열정이 결국 자기만족적이라는걸 명백히 한다. 소렌티노는 그러면서도 자신이 제레미아에 대한 인물을 쉽게 단죄하지 못하겠다고 은근슬쩍 털어놓는다. 

[가족의 친구]는 상당히 아름다운 영화며 그 아름다움을 추함을 대비시켜 현대 이탈리아를 살아가는 인물들간의 권력 관계를 그려내는데 탁월하다. 기질적으로 파올로 소렌티노는 '힙스터'며 그 힙스터적인 탐미와 자신이 속해있는 현실의 정치성 간의 간극에 대해 고뇌하고 있는 영화 감독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가족의 친구]에서 소렌티노는 미를 탐하는 추한 권력자에 대한 가치 판단을 주저하고 은근히 공감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그의 정치 의식이 미의식에서 주춤거리고 있는거 아닐까라는 인상을 준다. 그가 [일 디보]를 끝으로 정치적인 내용을 줄이고 생로병사와 아름다움에 대한 경구를 채워넣기 시작한 것도 그런 한계를 알아서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