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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울버린 [The Wolverine] (2013)

giantroot2015. 7. 20. 11:30


더 울버린 (2013)

The Wolverine 
5
감독
제임스 맨골드
출연
휴 잭맨, 오카모토 타오, 후쿠시마 릴라, 사나다 히로유키, 스베틀라나 코드첸코바
정보
액션, SF | 미국 | 129 분 | 2013-07-25

2015/02/08 - [Go To Fly/만화] - 울버린 [Wolverine] (1981)

제임스 맨골드의 2013년작 [더 울버린]은 [라스트 사무라이]처럼 일본 무사도 정신을 주 소재로 다루고 있는 영화다. 한국 제목에서는 알 수 없지만 일본에서는 SAMURAI라는 제목을 붙이면서 그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그렇다면 [더 울버린]은 어떻게 그 정신을 구체화하고 있는가?

먼저 [더 울버린]은 [엑스멘]이라는 마블의 만화 원작을 바탕으로 한 실사 영화 시리즈의 스핀오프 영화라는걸 밝혀둬야 되겠다. [엑스멘]은 뮤턴트라는 초능력자들을 소재로 한 액션 만화로, 1960년대에 처음 등장한 뒤 1970년대에 본격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주목 받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점은 [액스멘]이 본격적으로 인기를 얻기 시작하고 울버린이라는 캐릭터가 등장한게 저 일본 문화가 본격적으로 서구 문화에 침투하기 시작한 197-80년대라는 점이다. 미국 만화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엑스멘]이 일본 문화의 세 불리기와 그 시기와 공유하고 있다는 점은 여러모로 흥미로운데, [더 울버린]의 원작이 된 프랭크 밀러와 크리스 클레어몬트의 1981년 원작 [울버린]을 보면 이 두 지점이 서로 만나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서문에서 크리스 클레어몬트와 프랭크 밀러는 울버린이라는 캐릭터를 ‘실패한 로닌’이라고 규정했는데, 이 언급이야말로 [엑스멘]으로 대표되는 미국 코믹스 문화가 어떻게 일본 사무라이와 무사도 문화를 받아들였는지에 대한 단초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28년이나 지나 만들어진 (심지어 [라스트 사무라이]에서 9년이나 지난) [더 울버린]에서는 원작의 접근은 어떤 식으로 해석되고 있는가? 우선 캐릭터 조형이 많이 달라졌다는걸 지적해야 되겠다. 유키오 같은 경우 팜 파탈적인 성격이 많이 사라졌으며, 마리코 같은 경우엔 여전히 명예와 의무에 매여있고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나오지만 심리적 묘사 같은건 훨씬 자세해졌다. 하지만 가장 중요하게 달라진 부분이 있는데, 바로 원작에서 다뤄지지 않았던 불사의 문제가 무사도 정신과 관련되어 전개된다는 점이다.

[더 울버린]의 첫 장면이 죽음으로 가득찬 태평양 전쟁이라는 점은 흥미롭다. 여기서 울버린은 일본군의 포로로 잡혀있다가 우연히 핵폭발을 피해 도망치려는 마리코의 할아버지인 군인 야시다 이치로를 구하게 된다. 그런데 재미있는건 야시다 이치로가 살게 된 까닭이 소위 ‘무사답게’ 죽으려는 할복을 거부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야시다 이치로는 [라스트 사무라이]에서 의연하게 할복하는 가츠모토랑 다른 캐릭터며 이 차이는 [더 울버린]이 무사도 정신을 형상화하는데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는걸 알 수 있다. 그렇게 우물로 들어온 이치로는 울버린의 경이적인 초재생 능력을 통해 살아남는데, 이치로는 그 재생 능력에 감탄하며 울버린에게 자신의 일본도를 넘겨주려고 한다. 하지만 울버린은 그걸 거절하고 돌아선다. 사무라이를 상징하는 일본도를 타인에게 넘겨주려는 이 장면에서 우리는 이치로가 울버린이 무사도의 정신을 체화하고 있다고 보고 있으며 반대로 울버린은 그 평가를 거부했다는걸 보여주고 있다. 동시에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이 강조해왔던 ‘귀축영미를 물리치기 위해 사무라이답게 죽어라’라는 카미카제식 군기가 얼마나 부질없고 생존에 대한 욕망을 가진 평범한 개인과 그런 욕망을 가진 개인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정신이야말로 진정한 무사도 정신이라고 영화는 정의하고 있다.

현재 시점으로 넘어오면 이 무사도 정신에 대한 질문은 다른 식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제 일본 제일의 기업인이 된 이치로의 생존에 대한 욕구는 울버린의 초재생 능력에 집착하는 쪽으로 욕망이 발전하게 된다. 반대로 울버린은 그런 생에 대한 욕망이 지나치다고 생각하고 떠나려고 한다. 재미있게도 현재 시점에서 울버린은 정신적으로는 무사도 정신을 제대로 실현시키기 매우 어려운 상태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엑스맨 3]에서 울버린은 진 그레이를 죽였고 [더 울버린]에서도 그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거나 떠나는걸 보면서 그는 영원불멸한 삶을 사는 자신의 존재 가치에 회의를 느끼고 있는 중이다.

울버린이 초재생 능력을 잃은 뒤 이어지는 야시다 마리코와의 로맨스는 그 점에서 원작 [울버린]과는 다른 지향점을 지니게 된다. 마리코와 함께 과거의 이치로를 만났던 나가사키로 내려간 울버린은 마리코가 명예와 의무에서 자유로워져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는걸 알게 된다. 그리고 마리코가 예전에 할아버지에게서 자신을 도와준 울버린=쿠즈리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고 말하며 그에게서 용기와 희망을 얻었다는걸 알게 된다. 이런 각성의 과정이 도쿄에서 떨어진 나가사키 어촌의 야시다 가문의 일본식 저택에서 이뤄진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마리코가 기모노를 입고 있으면서 일본 문화에 대해 가르쳐주는 장면도 빼놓으면 안 된다.) 이때 즉 [더 울버린]에서 무사도 정신은 일본인 캐릭터이 무사도를 체화하고 있는게 아니라 무사도를 이미 체화하고 있는 서구인 캐릭터가 일본인과 일본적인 배경과 공간을 통해 제의를 거치면서 그것이 ‘무사도 정신’이라는걸 다시 깨닫게 되는 것이다.

재미있게도 이렇게 울버린이 제의의 과정을 거친 뒤 아무리 봐도 할복을 의도한 장면이 나온다는 것이다. 울버린은 자신의 심장에 이상이 있다는 걸 느끼고 심장에 있는 벌레를 스스로 꺼내기로 한다. 이때 죽는다고 할복을 말리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미래를 볼 수 있는 일본인인 유키오다. 하지만 울버린은 끝내 그 과정을 실현시키고 기절해 있다가 자신의 회복 능력을 얻어 다시 살아나 신겐을 물리친다. 일본인에게 할복은 혼의 결백과 애정이 뱃속에 담겨있으며 그걸 보여주기 위한 행동이라는 김효순의 지적을 생각해보면 이 장면은 두려움을 떨치려는 울버린의 혼의 결백과 애정을 보여주기 위한 무사도적 정신과 동시에 싸움에서 살아남기 위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라는 이중적인 의미를 띄고 있다. 이 할복 과정 도중 맨골드는 울버린의 심장 박동 그래프가 벌레를 빼낸 뒤 멈춘 뒤 다시 살아나는 걸 보여주는데. 이는 그가 무사도 정신의 제의를 매우 슈퍼 히어로적인 형식으로 통과해 다시 탄생했다는 걸 의미한다. 결말에 이르면 울버린은 생에 대한 집착으로 회복 능력을 빼앗으려는 실버 사무라이라는 갑옷을 입고 나온 이치로를 물리치는데 성공한다.

생에 대한 집착으로 과욕을 부리는 이치로가 악당으로 설정되었다는 점에서, 우리는 [더 울버린]의 무사도 정신이 어떤식으로 이뤄져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이치로는 생에 대한 의지가 강하지만 동시에 그것을 제어할수 있는 가치관이 없는 캐릭터이다. 반대로 울버린은 생에 대한 의지의 극단으로 발현된 초재생 능력과 그에 수반된 불사 능력를 가지고 있음에도 그것이 가지고 있는 어두운 면모를 경계하고 자신의 내면을 바르게 정립하려고 애를 쓴다. [더 울버린]은 무사도 정신이 내면 정립이라 정리하고, 불사 능력을 얻고도 그것의 어두움과 고통을 알고 거기서 자신을 정리할 수 있는 울버린이 진정한 사무라이이자 슈퍼 히어로라 할 수 있다고 정리한다. 그렇기에 그는 심장을 할복을 하고도 살아남아 신겐과 이치로를 물리치고 마리코를 정상적인 위치로 돌려놓을수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 [더 울버린]은 [라스트 사무라이]랑 달리 사무라이와 무사도 정신을 다른 문화 간의 충돌이 아니라 한 개인의 내면의 정립이라는 문제로 놓은 뒤 그것을 슈퍼 히어로적인 가치관과 결합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더 울버린]은 상술한 ‘이화’ 효과가 나타났던 [라스트 사무라이]랑 달리 그다지 ‘이화’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서구인들이 모르는 일본 문화의 기묘한 부분에 대해서는 오리엔탈리즘적 호기심을 드러나긴 하지만 (어김없이 등장하는 닌자나 러브호텔에 들어와 당황해하는 마리코와 전혀 모르고 들어서는 울버린이 대표적이다.) [더 울버린]은 애시당초 그런 ‘이화’로 무사도 문화를 형상화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더 울버린]은 [킬빌]이나 [신 시티]처럼 서양인 캐릭터 내면이나 외형에 무사도 정신과 문화를 심는 쪽으로 무사도 정신을 구체화하고 있는 부류의 영화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