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eper Into Movie/리뷰

리바이어던 [Leviathan] (2012)

giantroot2015. 3. 19. 23:54


리바이어던

Leviathan 
6
감독
루시엔 카스탱 타일러, 베레나 파라벨
출연
데클란 코닐리, 조니 갓콤브, 아드리안 귈레트, 브라이언 자넬, 클라이드 리
정보
다큐멘터리 | 프랑스, 영국, 미국 | 87 분 | -

고프로에서 만든 히어로라는 카메라가 있다. 몸이나 다른 곳에 부착할수 있는 소형 카메라로 극단적인 광각을 통해 얻은 시야폭과 극한의 상황에서도 작동할수 있는 카메라인데, 발매 이후 스포츠/액션 캠코더의 대명사로 자리잡게 되었다. 여기서 한가지 질문을 던져볼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카메라들은 인간의 지각 체계에 맞춰 대상과 어느정도 거리를 두고 촬영해왔고, 그렇게 만들어진 이미지들은 아무리 격렬하게 움직인다 해도 기본적으로 '대상'을 인지할수 있을 정도였거나 짧게 만들어져 다음 컷의 지각을 방해하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만약 고프로 히어로의 기동성을 이용해 인간의 '정상적'인 지각 체계를 넘어선 영상물을 만든다면 관객들에겐 어떤식으로 받아들여질 것인가?

[리바이어던]의 상상력은 여기서 출발한다. 미국 원양어선의 일상을 다루고 있는 이 다큐멘터리는 그러나 첫 장면에서 그런 내용이라는걸 바로 인지하기엔 너무나도 어렵다. 거친 화면으로 일그러진 검은 색의 스크린을 응시하면서 가끔 들려오는 바닷소리와 소음을 통해 우리가 있는 곳이 바다라는걸 겨우 알수 있을 정도다. 한창 뒤에 나오는 것도 구체적인 상황을 인지하기엔 곤란한, 왜곡되고 찌그러진 바다의 이미지다. 그것도 1080p라는 2k에도 못 미치는 콘트라스트가 높은 HD 화면 말이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이 이미지를 뒤덮은 조잡한 음질로 녹음된 소음은 관객의 집중력을 계속 방해한다.

한창 후에야 우리는 건져올려지는 고기들을 통해 어업 작업을 이어가는 어부들의 모습을 볼 수 있지만 그것조차도 이내 연관성 없어 보이는 컷 연결에 방해받는다. 각각의 시퀀스 간에는 아주 희미한 연결 고리가 있을 뿐이다. 게다가 이 두 감독은 거기에 멈추지 않고 카메라의 내구도를 테스트하듯이 온갖 상황에 넣어대고 마구 찍어댄다. 생선 버리는 통에다 카메라를 집어넣거나 물이 빠지는 곳 같이 도무지 찍을수 없을것 같은 곳까지 찍어낸다. 그 결과 지금까지 원양어선을 다루면서 지켜져왔던 안전한 거리감은 사라지고 스크린엔 질척한 바다냄새와 죽은 생선들의 이미지로 가득차게 된다. [리바이어던]이 보여주는 원양어선 세계는 까놓고 얘기하면 위생하고는 거리가 먼 곳이다.

사람들을 보여주는 장면에서도 [리바이어던]은 일반적인 다큐멘터리하고는 다른 방식을 취한다. 우선 이 영화에서는 유의미한 대사가 등장하질 않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말하는 장면이 있긴 하지만 의미있는 대화로 이어지지 않고 프레임 내부의 인간들이 소통하기 위해서 내는 음향적 효과에 그친다. 한술 더 떠 두 감독은 종종 사람들을 생선과 마찬가지로 일그러트려 찍기도 한다. 배 밖을 벗어나 바다로 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감독들은 바다에다가 카메라를 던져 차가운 바닷물과 날아드는 새들과 녹슨 배의 모습을 찍어내서 광폭한 몽타쥬를 만들어내는데, 이 몽타쥬들은 디지털 화면 특유의 날아가버린 표현 (스크린으로 보면 이 차이는 확연하게 나타난다) 때문에 어떤 구체적인 의미라기 보다는 추상적인 무언가로 탈바꿈하게 된다. 극단적인 광각에 담겨진 바다의 이미지들은 밤이나 낮이나 기괴하기 그지 없다.

전반적으로 [리바이어던]은 완고하게 '드라마'의 자장에 들어가는걸 거부하며 집요할 정도로 비인간적인 시선을 유지하려고 한다. 카메라는 인간의 지각을 넘어선 위치에서 이미지들을 채집해 배치하며 그렇기에 [리바이어던]의 지각 세계는 지금까지 다큐멘터리하고는 달라질수 밖에 없다. 이 지각의 세계는 지독하게 파편화되어 있으며, 탈인간화되어있다. [리바이어던]의 이런 기술의 발전과 에롤 모리스나 스턴 브래키지, 고드프리 레지오에서 이어진, 플래허티적인 사실 재현의 다큐멘터리로써 자유로워지려고 하는 현대 다큐멘터리의 조류하고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하지만 [리바이어던]의 세계는 정말로 죽은게 아니다. 차라리 자연의 생명력이라는 이름에 은근슬쩍 무시되어왔던 죽음과 피로가 담긴 이미지를 꺼내면서도 그것에게도 어떤 힘을 불어놓고자 하는, 일견 모순된 시도를 담고 있는 영화기도 하다. 고프로 히어로에 담긴 디지털 특유의 거친 화면은 그렇기에 오히려 이 죽음과 피로를 미화시키지 않으면서도 생동감을 불어넣어준다. 그렇기에 [리바이어던]은 어느 순간 들어서면 모든 의미나 맥락을 잃어버리고 광폭한 시청각 공격으로 가득찬 바다에 대한 초현실적이면서도 추상적인 시가 되어버린다. 콘트라스트 강한 어두운 하늘을 날아다니는 하얀 새들, 물 빠지는데 들어와서 생선을 호시탐탐 노리는 새, TV를 보면서 곯아떨어지는 선원, 비릿한 생선들, 녹슨 배... 어둠이 짙게 깔린 이 이미지들에서 의외로 낭만주의와 고딕의 영향력을 느낄수 있다. 삶의 투쟁 속에서 나타나는 피로함과 죽음이 시적 감수성이 디지털을 통해 재발견되었다고 할까. 그 점에서 [리바이어던]은 조르쥬 프랑주가 만든 [짐승의 피]의 적통을 이었다고 볼수 있는 다큐멘터리기도 하다.

이 시적 감수성이 그저 고프로 히어로라는 기술의 힘과 편집을 빌린 우연의 산물인지 아니면 감독들이 정교하게 계산해서 얻은 것인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겠지만 [리바이어던]은 영화 제목처럼 인간의 지각과 운동을 넘어선 영역에 카메라를 설치해 바다에 사는 광폭한 괴물처럼 이미지를 풀어낸다는 점에서 희귀한 영역을 탐구하고 있는 다큐멘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