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eper Into Movie/리뷰

소매치기 [Pickpocket] (1959)

giantroot2015. 1. 7. 16:34



소매치기

Pickpocket 
8
감독
로베르 브레송
출연
마틴 라살, 마리카 그린, 장 펠레그리, 돌리 스칼, 피에르 레이마리
정보
범죄, 드라마 | 프랑스 | 75 분 | -


로베르 브레송의 [소매치기]는 [무셰트]가 그랬던 것처럼 선언으로 시작한다. 이 영화는 스릴러가 아니라는 걸 밝히면서 한 청년의 죄의식을 다룰것이라고 선언한다. 그 뒤 우리는 가난한 청년 미셸이 등장해 소매치기를 할 것이라고 다짐하는 걸 듣는데, 미셸은 행동하지 않는 자에 대해 결별을 선언하면서 그는 '행동'하겠다고 말한다. 그 후 우리는 미셸이 무슨 행동을 할때마다 자신의 생각을 내레이션을 들려주는걸 듣게 된다. 이렇게 섬세하게 짜여진 내레이션와 미셸의 방에 등장하는 책을 보면 알겠지만 미셸은 책을 읽는 젊은 청년 지식인이다. 청년 지식인이 '부도덕한 행동'을 하기로 마음 먹는걸로 시작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소매치기]가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에서 추구했던 문제의식에서 출발하고 있다는걸 깨닫게 된다. (지식인의 도덕적인 딜레마에 대한 문제는 이후 나온 [아마도 악마가]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런 점에서 [소매치기]는 현실에 잠식되어 가는 지성에 대한 얘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상대로 [소매치기]는 도덕의식에 대한 문제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처음엔 벌벌 떨면서 돈을 훔칠수 있을지 없을지 고민하던 미셸은 시간이 지나갈수록 점점 자신의 죄의식에 대해 무뎌져가기 시작한다. 첫 범죄 후 사소한 징후들에 신경쓰며 잡혀갈걸 걱정하던 미셸은 이내 손 움직임이 굉장해지고 자신의 범죄를 합리화하는 과정에 빠지게 된다. 그 와중에 미셸은 두 사람을 만나게 된다. 하나는 수사관이고 하나는 잔이라는 여인이다. 수사관은 그를 찾아와 그의 범죄 사실을 추궁하면서도 그의 인간답지 못한 삶을 걱정한다. 잔은 미셸의 어머니 근처에 살면서 미셸처럼 밑바닥 삶을 전전하는 인물이지만 나름의 도덕을 지키는 인물이다.

이 둘이 어떤 상징성을 가지고 있는건 확실한데 작중 전개에서 어머니라는 존재가 중요하게 존재하는 것도 재미있다. 미셸은 병들어가는 어머니의 돈을 훔치면서도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을 지니고 있는데, 브레송의 다른 작품들에서 등장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인용과 가톨릭적인 죄의식을 생각해보면 미셸의 어머니는 성모 마리아와 같은 어머니상으로 볼 수 있을것이다. 반대로 미셸의 아버지는 술주정뱅이에 가족을 버린 것으로 언급될뿐 등장하지 않는다. 영화 내에서 수사관이 일종의 아버지와 같은 존재로 그려지는걸 보면 미셸의 희미해져 가는 도덕 의식은 아버지의 부재와 어머니의 죽어감이 복합적으로 작용되고 있다는걸 눈치챌 수 있다. [소매치기]가 나왔던 시대를 생각해보면 이는 전쟁의 상흔이 완전히 치유되지 않은 젊은 세대의 공황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어머니가 죽고 난 뒤 미셸의 도덕관념은 붕괴하고 그는 거리낌없이 소매치기를 하기 시작한다. 버스 정류장으로 가서 사람들의 주머니를 터는 이 장면을 묘사하면서 브레송은 매우 간결하고 정확한 터치로 범죄물의 매력을 살려낸다. 빠르고 테크니컬한 손놀림에 맞춰 편집된 컷들로 이뤄진 은밀하게 사람들의 주머니를 터는 장면들은 브레송이 이 장르의 언어에 전혀 모른다는건 아니라는걸 주지시킨다. 그렇다면 초반부의 선언은 차라리 이 매력에 빠져 영화의 메시지를 잊지 말라는 경고라고 볼수도 있을 것이다.

미셸의 속죄 과정은 도피로 시작된다. 잔은 같이 살자는 미셸의 요청을 들어주지 않고 어머니마저 잃은 미셸은 그렇게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모으게 된 미셸은 도무지 견딜수 없어서 프랑스를 떠나 이탈리아로 간다. 브레송은 미셸의 이탈리아 생활에 대해 전혀 묘사하지 않는다. 짧게도 아니고 1년을 그렇게 보냈다는데도 말이다. 브레송은 내레이션으로 그가 그런 행동을 했다고 딱 설명해준 뒤 다음 장면에서 미셸은 프랑스로 돌아온다. 이 칼같은 선택은 미셸의 도피가 결국엔 그의 죄의식과 무뎌진 도덕 감각을 회복하는데 도움이 안 된다는걸 주지시키고 있다. 그렇게 돌아온 미셸은 다시 처음 그가 소매치기를 하려고 했던 경마장으로 돌아와 소매치기를 하려고 한다. 

그런데 이 마지막 소매치기를 브레송은 이례적으로 긴 호흡으로 망설임과 능숙함 사이에서 갈등하는 미셸을 보여준다. 미셸이 초반부처럼 처음 소매치기를 해서 달달달 떠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벽하게 회심한 것도 아니다. 미셸은 그 애매한 경계 사이에서 해메고 있다. 실제로는 이 장면의 연출은 이전에 등장한 소매치기 장면들처럼 매우 단순하고 능수능란하지만 어느 한 부분에서 예리하게 변주되어 있는데, 이 단순함이 갖는 서스펜스와 감정적인 진폭은 만만치 않다. 이 장면 때문에 [소매치기]는 평범한 범죄 영화와 다른 예리한 윤리에 대한 질문과 메시지를 획득하게 된다. 물론 그것이 가져다주는 장르적 쾌감도 놓치지 않는다.

이 마지막 소매치기의 끝은 체포다. 미셸은 감옥에 갇히고 도덕적 방황은 일단락된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영화 내내 그가 올바른 길로 가길 원하던 수사관은 체포 이후 존재감을 잃어버린다. 결말에서 존재감을 내비치는 것은 여성인 잔이다. 미셸이 감옥에 앉아서 자신의 죄를 성찰하고 있는 동안, 잔이 미셸을 찾아온다. 이때 미셸은 정상참작을 해주겠다는걸 번복해서 상황을 어렵게 만들었다고 잔에게 고백한다. 그리고 잔에게 '당신은 내 추락하는 모습을 즐길 셈이요? 누구도, 아무것도 내게는 필요없소.'라고 말하면 한번 내친다. 이는 미셸의 도덕적 방황이 아직도 완전하게 정리되지 않았다는걸 보여줌과 동시에 그가 잔에게 유약해지고 있다는걸 복합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 다음 이어지는 미셸의 초조함은 다른 종류를 띄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잔이 자신을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는걸 두려워하고 있다. 하지만 그 두려움은 이내 사소한 것으로 밝혀진다. 결국 마지막에 자신을 찾아온 잔의 손을 창살 사이로 잡으며 미셸은 이렇게 독백한다. 그리고 독백이야말로 영화를 요약하기 딱 좋은 말일지도 모른다. 


"잔... 당신에게 이르기 위해서 나는 이 얼마나 기이한 길을 걸어 왔단 말이오!"


[소매치기]는 이처럼 평범하고 나약해보이지만 누구보다 강한 여성이자 선함으로 대표되는 잔에게 돌아가기 위해 한 나약한 남성 지식인이 겪는 도덕적인 모험과 구원을 다루고 있는 영화다. 브레송 영화 중에서는 중기에 속하는 이 영화는 감정적으로는 이후에 나온 걸작 [무셰트]보다는 덤덤한 편이지만 (무엇보다 미셸은 매우 들여다보기 쉬운 인물이라는 점도 있다.), 그렇다고 매력이 없는 영화라는건 아니다. 브레송은 언제나 그렇듯이 짧은 러닝타임 속에서도 자신이 하고 싶싶은 이야기를 간결하게 뽑아내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장르보다는 이미지와 감정에 집중했던 [무셰트]와 달리 [소매치기]는 범죄물이라는 대중적인 장르 속에서도 자신의 메시지를 능수능란하게 다루고 있다. 로베르 브레송에 전혀 일면식이 없다면 추천하고 싶은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