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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적 떼 [Die Rauber] (1782)

giantroot2014. 12. 17. 22:48


도적 떼

저자
프리드리히 폰 실러 지음
출판사
열린책들 | 2009-11-3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독일 고전주의 문학의 거장 프리드리히 폰 실러의 처녀작이자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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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서 내 직업이 보복이라고 말해라

프리드리히 폰 실러의 [도적 떼] (aka. 군도)는 데뷔작이자 질풍노도 문학의 대표작으로 불리는 희곡이다. 질풍노도는 독일 문학 사조 중 하나로 계몽주의와 낭만주의가 뒤섞인 독특한 사조를 말한다. 폭압에 대한 저항과 자유를 향한 열망 (계몽주의), 그리스 로마 시대에 대한 재발굴 (고전주의), 숙명적인 비극 (낭만주의)이라는 점에서 [도적 떼]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처럼 질풍노도가 어떤지 확인할수 있는 희곡이다. 한마디로 휘몰아친다. 하지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달리 [도적 떼]는 개인적이라기보다는 사회적인 영역에도 손을 대고 있었기에 다른 개성을 가지게 된다. 비슷한 작품이라면 하인리히 폰 클라비스트의 [미카엘 콜하스]를 들 수 있겠다.


발표 당시 굉장한 필화 사건을 일으켰던 [도적 떼]는 셰익스피어의 [리어왕]과 [오셀롯], [리처드 3세]를 섞어넣은듯한 작품이다. 한마디로 영주 아들 카를이 밑바닥 생활 끝에 음모로 쫓겨 난 뒤 도적이 되어 군주가 된 폭압적인 동생 프란츠를 향해 그리 깨끗하지만은 않은 혁명을 일으킨다는 내용인데, 궁중 내 암투와 음모를 꾸미는 인물, 밑바닥 삶에 대한 애정부터 시작해 문체와 대사까지 여러모로 실러가 셰익스피어에 영감을 받았다는게 느껴진다. 다만 [도적 떼]는 어디까지나 일반론적인 인식과 비판에 머물렀던 (그래서 범용성이 높은 '고전'이 된거지만) 셰익스피어와 달리 훨씬 시대 상황과 맞닿아있다. 프랑스 혁명 직전에 부글부글 끓어올랐던 변혁의 징조가 곳곳에 감지된다고 할까.


[도적 떼]의 주역들을 움직이게 하는 에너지는 한마디로 그리스 로마 시절부터 시작한 르네상스 시절에 대한 향수와 복권이다. 카를을 비롯한 도적 떼들은 인간을 억누르는 종교와 구습을 추방하고 (특이하게도 이 희곡에서 가톨릭 신부는 부정적으로 그려지지만 반대로 개신교 목사는 악역의 악행을 비판하면서도 구원을 바라는 긍정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인간의 가치를 복권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기존의 체제는 부정된다. 당시 독일은 중앙집권체제가 완성된 프랑스나 다른 나라들과 달리 개별 영주가 권력을 차지하고 있었고 영주가 전횡을 저지르는게 가능했던것도 이런 사회적 부조리에 한 몫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한마디로 남들보다 뒤떨어져 있다는 젊은이들의 사회 인식 자체가 도적질이라는 극단적인 행동을 가능케한 것이다. 심지어 이 잘못된 시스템 때문에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건 악역인 프란츠에게도 적용되는데, 그는 장자 상속으로 인한 부당함에 삐뚤어져 음모를 꾸민다.


하지만 [도적 떼]는 혁명의 성공을 다루는 희곡이 아니다. 오히려 그 혁명의 실패를 다루는 희곡이다. 결말을 말하자면, 카를의 도적질로 통한 혁명은 반쪽만 성공한다.프란츠를 몰아내고 복수하는데 성공하지만 카를은 모든 것을 잃은 상태다. 불행히도 카를의 정신상태는 현명하기에 자신의 상태를 쿨하게 무시할수 없는 지경까지 몰리게 된다. 이런 파괴와 약탈을 계속하자는 도적들을 카를은 모든 것을 버려버린다.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 조차도. 카를의 이런 유약하고도 섬세한 내면과 도피적인 행각과 이로 인해 촉발되는 비극은 독일 낭만주의의 일면을 볼 수 있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현실은 무겁고 이상적인 도원향을 향해 나아가고 싶지만 그 행동은 극단적인 쪽으로 촉발되고 결국엔 파국으로 이른다. 어찌보면 카를과 프란츠는 매우 바이런적인 캐릭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도적 떼]는 매우 다크 히어로/안티 히어로적인 작품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도적 떼]는 지금 보면 매우 모순적인 작품이 된다. 독자가 지금 현재에 도래한 미래를 꿈꾸는 혁명을 얘기하면서도 그것에 대해 이뤄질수 없을거라고 체념하고 좌절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끓어넘치는 에너지가 꺾이고 쓰러져가는 '허무'가 강하게 남는 작품이라고 할까. 카를이 아말리아를 죽이게 되는 것도, 모든 것을 잃었기 때문에 벌인 체념이라는 인상도 강하다. 원래 [도적 떼]가 결말이 카를의 행위를 정당화하는걸 끝난걸 보면 지금의 [도적 떼]는 타협의 산물일 가능성도 크다. (그럼에 실러는 한동안 도피 생활을 해야 했었다.) 실러가 후일 귀족 작위를 받은 것도 어찌보면 그런 현실에 대한 체념의 연장선상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실러는 혁명가라기 보다는 혁명을 꿈꾸던 문학가였기에 가능했던 행적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도적 떼]는 보편적인 진리를 꿈꾸며 극을 마무리하게 된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카를이 자신을 희생하는 방법은 자세히 뜯어보면 체제의 투항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순교에 가깝다. 배고픈 농부 가족에게 자신을 맡기는 그 단순하지만 슬픈 희생은 이 단순한 체념이 실은 세상의 부조리함에 던지는 마지막 폭탄 아니였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점에서 [도적 떼]는 검열의 칼날 속에서도 지금도 고전으로 남게 된 것 아닐까 생각해본다.


[도적 떼]는 여러모로 첫 작품 답게 야심과 서투름으로 가득찬 작품이다. 몇몇 장면 묘사는 미진한 부분이 있으며 아말리아 캐릭터는 실제하는 여자라기 보다는 이상적인 여성상에 가까운 존재로 그려진다. 시대적 한계로 인한 검열의 흔적도 쉽게 찾아볼수 있다. 그 하지만 실러는 이를 굉장한 에너지와 설득력으로 풀어낼 재주가 있었으며 몇몇 대사들은 그 에너지만으로도 기억할만한 가치가 있다. 완벽한 작품은 아니더라도 기억할만한 데뷔작으로 기록될 자질은 충분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