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bviously, Doctor, you've never been a 13-year-old girl.
-Cecilia Lisbon
사이렌을 위한 노래 (나는 네 놀이터의 연인이야)
제프리 유제니디스의 [처녀들, 자살하다]는 다섯 자매의 자살을 다루고 있는 소설이다. 소설의 시작은 서실리아의 자살 기도다. 여기서 독자들은 '우리'라고 지칭하는 화자들의 인도를 받아 리즈번 다섯 자매를 소개받는다. 아름다운 리즈번 자매들은 '우리'들의 선망과 욕망의 대상이지만 서실리아의 죽음 이후 이 자매는 점점 망가져가며 자신을 유폐시켜가면서 죽어간다.
[처녀들, 자살하다]는 여러모로 나보코프의 [롤리타] 영향을 받은 소설이다. 10대 소녀에 매혹된 남성들이 끈적끈적하고 페티시즘적인 분위기에 허우적댄다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우리'가 증거품을 그렇게 오래 가지고 있는건 정상은 아니다.),점이 그렇다. 하지만 매정하게 화자 험버트를 향해 킬킬거렸던 [롤리타]와 달리 [처녀들, 자살하다]는 나른하고 애조에 찬 회고에 가깝다. 일단 이 소설의 '우리'는 현재 시점으로 이 소설을 전개하고 있는게 아니라 '과거'의 시점으로 회고하고 있다. 리즈번 자매의 자살은 단순히 가슴아픈 첫사랑의 끝만이 아니라 유년기의 끝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왜 리즈번 자매는 자살했을까? 소설은 제법 많은 이유들을 내놓지만 구체적으로 콕 찝어 말해주진 않는다. 다만 이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억압적이고 종교와 아들에 집착하고 소녀성性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성과 성적 각성에 대한 유제니디스의 시선은 후속작 [미들섹스]에서 여자로 살아왔다가 사실은 생물학적 남자라는걸 알게 된 트랜스젠더 소년/소녀의 성적 모험기로 극에 달한다.), 리즈번 부부을 위시한 어른들, 풍요롭지만 가식적이고 질식할 것 같은 교외 사회,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는 세상에 대한 실망... 이 모든 것들이 끈적끈적하게 달라 붙어 진액과 같은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솔직히 어머니 아버지는 리즈번 부부가 정상적인 부부라 봤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나마 비슷한 위치에 있는 소년들이 그녀들을 이해하려고 했지만 결국엔 그 소통은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 그 점에서 [처녀들, 자살하다]는 세이렌들의 슬픔을 이해하려고 했던 자들이 겪어야만 했던 소통 실패의 기록이며 세이렌의 망령에 빠져 행복해하다가 괴로워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소설은 의외로 그리스인의 시선도 많이 느껴지곤 하는데 서술자의 속성이 모호하고 그 사건에 간섭했다가 다시 코멘트를 다는 등 그리스 비극의 코러스와 닮았다던지, 그리스 출신 할머니의 코멘트가 이 소설의 주제를 이해할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는 점이 그렇다. 그 사회의 주류가 아닌 주변인들의 시선으로 1970년대 미국을 바라본다고 할까. 이 점에서 이 소설은 다시 유럽 이민자 험버트를 통해 미국을 본 [롤리타]와 공유하고 있다.
[처녀들, 자살하다]의 단점이라면 너무 많은 것을 쥐어주지만 정작 별로 말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 있다. 미스테리가 되기엔 너무 많은게 주어지고 명확한 주제를 표출하기엔 약간 2% 부족하다고 할까. 그리고 처녀작이여서 그런지 아직은 테크닉적으로 미숙하다던가 깊이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점도 있었다. 하지만 리즈번 자매의 아름다운 모습을 상상하며 냉소적이지만 애조를 띈 몽환적인 어조로 풍요로웠던 1970년대 미국의 이면을 보는것도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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