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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Frankenstein] (1818)

giantroot2015. 3. 6. 00:02


프랑켄슈타인

저자
메리 셸리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2-06-18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2009년 뉴스 위크 선정 ‘역대 세계 최고의 명저 100’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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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형적 비극이 새로운 육신을 얻다

둥둥 떠 있다가 허우적거리는 일에 불과한, 허우적거린다는 것은 의식이 생활에 더 밀착해 있다는 것인가요? 아닙니다. 허우적거린다는 것은 사물을 더 이상 이런 방식으로는 표현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평면 위에서 점점 착오가 되어간다는 겁니다. J, 나는 내내 이 착오를 완성하고 그 미개로 죽겠습니다. J. 

-김경주, '프리지어를 안고 있는 프랑켄슈타인' 중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은 너무 잘 알려졌기에 잘 읽지 않는 소설로 유명하다. 그렇기에 이 소설은 지금까지 제법 오독되어 왔던 소설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프랑켄슈타인] 원전을 읽는 것은 우리가 막연하게 생각해왔던 [프랑켄슈타인]의 이미지를 부수기 위한 작업이기도 하다. 이 도입부에선 굳이 잘못 알려진 지식을 지적하진 않겠지만 [프랑켄슈타인]에 대한 편견들은 역설적으로 이 소설이 처음 출간된 이후 어떤 장르적 원형 이상의 인류 무의식에 자리잡은 이미지를 제공했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메리 셸리와 [프랑켄슈타인]를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단초는 바로 낭만주의다. 이성과 합리, 절대적인 것을 거부한 낭만주의는 곧 갓 만들어진 고딕 문학과 결합되었다. 고딕 문학은 인간의 어둡고 극단적인 감정 (사랑과 공포)과 거기서 촉발되는 숙명적인 파국을 축축한 감수성과 언어로 보여주고 있었는데 [프랑켄슈타인]은 그 점에서 낭만주의와 고딕 문학의 충실한 피조물이라 할 수 있다. 여성인 작가를 설명하면서 남편을 예시를 드는건 자칫 잘못 하면 오독의 위험이 있지만 그래도 메리 셸리가 그 유명한 영국 낭만주의 시인인 퍼시 셸리의 아내였다는 사실은 메리가 이 낭만주의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걸 알 수 있다. 또 [프랑켄슈타인] 자체가 괴담 들려주기에서 출발했다는 흥미로운 트라비아 역시 이 소설이 인간의 부정적인 감정인 '공포'에 기반하고 있는, 충실한 고딕 문학의 자손이라는걸 보여주고 있다.

이렇듯 [프랑켄슈타인]의 피부와 뼈를 구성하고 있는 언어들은 매우 지적이면서도 어두운 비탄으로 차 있다. 밀튼의 [실낙원] 인용으로 출발한 [프랑켄슈타인]은 지식의 극한을 추구했다가 통제할수 없는 비극으로 빠져들어가는 과학자 빅터 프랑켄슈타인과 흉측한 모습에 절망하면서도 사랑을 갈구하는 부정한 피조물 간의 애증어린 멜로드라마로 넘어간다. 소설의 대부분을 지탱하고 있는 이 두 캐릭터는 지적이고 유려한 말로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한 끔찍한 혐오감과 창조주로 대표되는 세상에게 사랑받고 싶은 마음과 좌절감, 분노를 표출하는데, 이 와중에 이성과 감각이라는 두 요소가 충돌해 흥미로운 화학반응을 일으킨다. '고상해서 고독한 괴물'의 시조라고 할만한 프랑켄슈타인의 피조물은 자신의 감각과 접한 세상과 지식의 아름다움과 자신을 내친 세상에 대한 분노라는 격렬한 감정을 동시에 표출하며 반대로 프랑켄슈타인은 지식의 끝을 알고 싶어하면서도 그 호기심 때문에 인생이 망가지고 진행될수록 세상에 대한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고 지독한 우울에 시달리는 것과 대비된다. 그리고 이 둘은 내면을 잠식해가는 불안함과 분노를 해소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극단적인 짓을 저지를수 있다. 어느 쪽이든 이 둘은 캐릭터 만들기라는 측면에서 매우 입체적이고 흥미로운 존재들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프랑켄슈타인]은 훌륭한 캐릭터와 감수성을 지닌 고딕 소설로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프랑켄슈타인]이 지금까지 사람들 기억에 남아있는 고전이 된 것은 그 소재와 구성에 있다. 먼저 이 소설의 소재가 일반적인 고딕 소설하고는 거리가 멀었다는 걸 지적하고 싶다. 이 소설의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존재인 괴물은 뱀파이어나 늑대인간처럼 민담으로 대표되는, '과거에서 온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현재에 탄생한 존재'다. 그렇다면 이 괴물은 어떤 영역에 속해있다는 것인가? 답은 간단하다. 개구리 뒷다리에 전기를 흘렸더니 뒷다리가 반응했다던 갈바니즘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메리 셸리의 고백에서 우리는 익숙한 장르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 그렇다. [프랑켄슈타인]은 낭만주의와 고딕 문학의 피조물이기도 하지만 SF 문학의 창조주기도 하다. 물론 이전부터 과학적 발견에 대해 다룬 소설들은 있었지만 [프랑켄슈타인]은 과학적 발견에 기반한 사고실험을 소설의 원동력 삼아 충실하게 밀고가는 SF 문학의 기본 모토를 확실히 정립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렇기에 [프랑켄슈타인]의 낭만주의와 고딕적 감수성은 매우 독특한 영역을 차지하게 된다. 이 소설의 어두운 감수성을 이끌어내는 요소들은 유령이나 미치광이 귀족 같은 초자연적인 존재나 극단적인 감정으로 미쳐버린 인간이 아니라, 당대 사람들에게는 첨단의 영역에 속해있는 것들이다. 한마디로 과학과 과학의 발견이 가져오는 두려움이 고딕적인 감수성을 이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과학의 힘을 얻은 인간이 통제할수 없는 창조물을 만들어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가득찬 [프랑켄슈타인]은 그 점에서 책임감 없는 과학의 발전이 가져올 비극에 대해 고찰하고 있는 소설이기도 하다. 빅터 프랑켄슈타인과 괴물이 미치광이 과학자와 그 피조물의 표본으로 남아 후대 창작자들에게 영원히 모티브로 써먹히는것도 그 때문이다. 

메리 셸리는 창조주와 창조주에게 도전하는 피조물이라는 지극히 원형적인 구도를 빌려오면서도 발상의 전환으로 완전히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낸다. 그리고 이 창조물과 피조물의 관계에 생식의 문제를 제거하고 여성 캐릭터들을 주체가 아닌 배경으로 배치하면서 자신의 어머니가 물려준 페미니즘에 기초한 문제의식도 드러낸다. 프랑켄슈타인이 여성 괴물을 만들지 못하는 이유가 '여성 괴물은 실패할 것'이라는 두려움에 기반하고 있는것도 의미심장하다. 이 두려움엔 괴물에게 생식이 부여된다면 괴물이 증식해 인류를 위협할거라는 두려움도 있고, 어머니-아내-하녀 이외의 여성 주체는 완벽하게 이해할수 없으며 이해하거나 만드려는 노력도 실패하리라는 남성-과학자 주체의 막연한 두려움도 있다. 어느 쪽이든 [프랑켄슈타인]이 도발적으로 던지는 문제의식엔 성정치 문제와 이성우위 사고관에 대한 문제제기도 끼어있다는걸 지적하고 싶다.

그 점에서 소설의 마지막에 그저 프랑켄슈타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데 충실했던 화자가 개입하는 부분도 의미심장하다. 배를 이끌고 북극을 탐험하려고 하던 화자는 마지막 파트에서 물자가 부족한 상황에서 북극으로 가느냐 마느냐의 딜레마에 빠진다. 이때 이성과 탐구욕으로 대표되는 프랑켄슈타인은 열변으로 이성과 호기심을 따라 영웅이 되자며 북극으로 가자고 주장하나, 화자는 (잠깐 열변에 혹하면서도) 결국 선원들의 말을 들어 삶을 선택해 돌아간다. 돌아가던 도중 프랑켄슈타인은 병들어 죽고 괴물이 화자 앞에 나타나 창조주의 죽음에 절망을 토로하며 자신도 죽으러 갈것이라고 말하며 사라진다. 메리 셸리는 화자로 대표되는 독자들에게 통제를 잃은 이성 위주의 사고관이 얼마나 위험한지 결말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프랑켄슈타인]은 현대 소설에 익숙해진 독자들이 보기에 서사적로 정교하지 못한 구석이 많다. 괴물에 대한 묘사도 상상력 부족이였는지 어물쩍 넘어가는 구석도 있고 고딕 소설 특유의 극단적으로 명암이 뚜렷한 캐릭터들도 지금 사실주의와 정교하게 구성된 캐릭터들에 익숙한 독자들에게 호불호가 갈리기 쉬운 편이다. 하지만 그 극단적인 감수성에 결합된 흥미로운 사고실험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프랑켄슈타인]을 쉽게 내치지 못하게 한다. 특히 인공지능과 안드로이드를 다룬 작품들에 드리운 [프랑켄슈타인]의 그림자는 (안드로이드/로봇 장르 소설의 효시라 할 수 있는 릴아당의 [미래의 이브]조차도 [프랑켄슈타인]의 오마주라 할 정도로 틀린 말은 아니다.) 이 소설이 찌르고 있는 '인간이 만들어 낸 예측 불가능한 피조물'이 가져오는 공포가 지금도 유효하다는걸 잘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