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감상은 2013년 10월이였지만 과제용이였기에 지금 올립니다.)
장 뤽 고다르의 [사랑과 경멸]은 알베르트 모라비아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에 대한 영화다. 소설가이자 극본가인 폴은 미국인 영화 프로듀서인 제레미에게 프리츠 랑이 감독하고 있는 [오디세우스] 영화화의 극본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이 와중에 폴과 카밀 사이에 불화가 이어지고, 카밀은 내내 폴에게 경멸을 보며 비틀어지기 시작한다.
[사랑과 경멸]은 여러 복합적인 텍스트와 해석이 얽혀있는 영화다. 제레미를 만나는 장면부터 등장하는 통역가도 그렇다. 이 통역가는 제레미가 하는 영어를 폴에게 프랑스어로 통역해주는데, 문제는 이 통역이 죄다 엉터리라는 것이다. 단어는 비약하기 일쑤이며 의미도 왜곡되거나 아예 삭제되는 일도 발생하기 일쑤다. 이 장면에서 고다르는 언어로 이뤄지는 소통에 대한 불신을 보여주며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에서 볼 수 있었던 사실과 언어의 불일치를 연상케 한다. 또한 그 대상이 제레미라는 점에서 제레미로 대표되는 미국 영화 산업이 가지고 있는 표현과 의미의 불일치, 나아가 그걸 조장하는 영화 프로듀서에 대한 비꼼을 담고 있다.
이런 표현과 진실 간의 괴리는 영화 내내 이어지며 변주된다. 먼저 영화의 시작 부분에 나오는 폴과 카밀의 대화가 그렇다. 카밀은 사랑한다는 확신을 자신의 신체 부분이 예쁘냐는 밑도 끝도 없는 질문을 폴에게 던지며 확인하려고 한다. 결국 이 대화는 폴이 신체 부분이 모두 합해서 예쁘다는 대화로 끝나고 입을 맞추려는 순간 끊어진다.
고다르는 이 장면에 색깔 필터를 갈아 끼어넣으면서 장면의 변주를 시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엔 큰 차이를 낳지 못한다. 만약 그런 연출로 장면 간의 차이를 만들려고 했다면 고다르는 실패했다. 허나 그런 ‘실패’야말로 고다르가 의도했던 바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고다르가 보기엔 카밀의 신체 부분의 아름다움을 확인해 사랑을 확인하려는 행동은 장면들 사이에 컬러를 바꾸는 연출만큼이나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퀀스 끝에 부부의 키스가 이어지려는 찰나 끊어지고 다음 시퀀스로 넘어가버리는 편집도 비슷한 맥락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위태한 언어에 사랑을 확인하던 부부가 파경을 맞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폴은 카밀이 자신을 경멸하는 이유를 성적인 이유에서 찾으려고 한다. 허나 카밀은 자신의 경멸이 폴이 저지른 예술적인 신념에 대한 배덕이라고 주장한다. 자신을 위태한 언어 위에 세워진 사랑은 결국 경멸로 무너지게 된다.
이 와중에 폴은 ‘카밀은 외도를 하지 않았다. 혹은 겉보기에만 그랬을 것이다.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겉보기와 다르게’라고 나레이션을 읇고 ‘서로를 더 의심할수록 거짓된 명료함에 더 매달리는 것을. 뭔가 켕기게 만드는 여러 감정들이 합리화되길 바라면서.’라고 나레이션을 읇는다. 그런데 이 나레이션들은 제레미가 카밀을 유혹하는 장면과 파경을 맞이한 두 부부의 미래 시제의 모습 (카프리 섬), 누드로 있는 카밀의 모습과 함께 배치된다.
이 컷 연결을 통해 제레미의 성적 유혹과 그로 인한 다툼이라는 심리적인 사건 속에 의심암귀에 빠진 남녀의 모습과 여성의 누드라는 ‘거짓된’ 명료함, 그리고 파국을 동시에 배치해 여성의 누드 이미지가 가지고 있는 ‘성적인 매력’이 이런 파국을 불러일으켰다고 합리화하면서 ‘자신을 향한 경멸’이란 켕기는 감정에 이유를 붙이려는 폴 (물론 그의 생각/표현은 진실하고 불일치한다. 마치 마그리트의 그림들처럼.)과 그런 폴을 경멸하는 카밀을 묘사하고 있다.
이런 표현과 진실 간의 불일치에서 발생하는 경멸은 카밀과 폴에만 국한되지 않고 영화 내의 모든 관계로 이어진다. 먼저 랑은 제레미의 표현과 진실을 불일칠하게 하는 속물적이고 이기적인 프로듀서의 감각을 경멸하고 교묘하게 시나리오와 다른 영화를 찍어 그를 골탕먹인다. 제레미 역시 자기 말 (진실)을 듣지 않고 멋대로 영화를 찍는 (표현) 랑을 혐오하며 그를 경멸하는 제스쳐를 취한다. 카밀은 제레미의 속물성을 경멸하며 그에 부화뇌동하는 자신의 남편도 싸잡아 경멸한다. 허나 카밀은 결국 마지막엔 제레미를 선택해 떠나는데, 제레미는 마지막에 타이피스트를 하겠다는 카밀을 경멸하듯이 ‘미쳤다’라고 말한다.
이런 경멸들로 얽혀있는 관계 속에서 프리츠 랑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헐리우드’를 인용하며 호머의 세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랑이 말하는 호머의 세계는 실재하는 세계이며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조화를 이루며 성장하는 문명이였다. 그렇기에 호머가 만든 오딧세이의 아름다움은 객관적으로 표출되며, 파괴될 수 없는 형태의 현실 자체를 믿는다. 그것을 받아들이든지 아니면 떠나는지에 대한 여부는 남겨둔채.
이런 랑이 언급한 호머의 세계는 파이프 그림과 그 아래에 적힌 언어 간의 불일치를 드러난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들이나 [경멸] 속 등장인물들이 겪어야 하는 표현과 진실 간의 불일치에서 나타나는 경멸하고는 다른 이상적인 형태라는 것은 명백하다. 고다르는 이를 통해 영화는 이미지와 텍스트 (혹은 표현과 진실) 간의 일치가 일어나고 그것이 객관적으로 표출되며 파괴될 수 없는 어떤 형태의 현실 자체를 믿도록 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그런데 이 호머의 세계는 마지막에 폴이 제레미에게 극본을 못 써주겠다고 화를 내면서 느닷없이 표출된다. 왜일까? 이는 위에서 언급한 제레미의 첫 등장에서 보여줬던 통역과 실제 언어의 불일치하고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지금까지 폴은 제레미의 돈에 매혹되어 표현과 진실이 불일치하는 (제레미는 영화의 의미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섹스어필을 위한 장면을 넣으라고 랑과 폴에게 강요한다.) 제레미를 위해 시나리오를 영혼없이 써 제껴왔다. 하지만 거기서 비롯된 부부 간의 불화를 겪은 후 폴은 가치가 바뀌었고 제레미에게 이상은 그렇게 못 쓰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랑과 호머로 대표되는 유럽적인 가치를 옹호하면서.
허나 불일치를 주도해왔던 사람인 제레미의 비서는 ‘그런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하고 제레미는 ‘꿈만 가지고는 영화를 만들 수 없다.’라고 잘라 말한다. 결정적으로 카밀은 그 말에도 불구하고 폴을 여전히 경멸하며 제레미를 선택해 떠나간다. 이는 작중에 등장하는 [오디세우스]에 대한 새로운 해석처럼 제레미의 경멸스러움보다 남편의 경멸스러움이 더욱 극에 달하는 바람에 선택한 결말이라 보여진다. 또 제레미의 경멸스러움이 가지고 있는 물질적 가치에 매료되어서 (폴이 아파트 관리비를 위해 제레미에게 시나리오를 써주겠다고 했다는건 중요하다.) 일지도 모른다.
그 대화가 끝나자 카밀과 제레미는 영화 촬영장을 이탈하던 도중 갑작스러운 사고로 죽게 된다. 그리고 호머적인 가치관을 받아들인 폴은 로마로 돌아가 연극을 마저 쓰겠다고 하고 랑 역시 영화의 끝을 보겠다고 말한다. 카밀과 제레미의 죽음은 호머적인 세계관을 거부한 자에 대한 징벌인 것일까? 만약 그렇게 본다면 폴과 랑이 영화 끝까지 살아남아 창작을 하는 것은 징벌을 피했다고 볼 수 있을까? [경멸]은 표현과 진실에 대한 예술적인 가치관은 어느 쪽이 옳은가에 대한 영화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고다르의 [경멸]은 “논리를 차용한 비논리적인 이야기”로 정의할 수 있는 영화다. 논리적인 대사와 행동 뒤엔 전통적인 영화 찍기 대신 감독의 의지와 선택으로 가득한 ‘비논리적인’ 컷들이 가득하며 일견 프로듀서의 의견에 따른 상업적이고 논리적인 선택으로 보이는 브리짓 바르도의 누드 장면들을 성적인 음탕함을 배제해버린 사유와 비판의 대상으로 삼아버린다. 허나 정치적인 발언들과 이미지의 결합으로 정치적인 영화를 만들려고 했던 68혁명 시절 고다르 영화들과 달리 [경멸]은 아직은 영화의 내적 논리 문제에 머물러 있다. 그 점에서 [경멸]은 2차 세계대전 후에 새로 도래한 프랑스 누벨바그가 어떤 식으로 영화와 사회적 관계를 바라봤는지를 집어주는 중요한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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