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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시계 요양원 [Sanatorium pod klepsydrą / Sanatorium Under the Sign of the Hourglass] (1937)

giantroot2013. 1. 6. 22:00

모래시계 요양원(슬라브 문학 3)

저자
브루노 슐츠 지음
출판사
| 2003-02-2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폴란드의 국민작가로 사랑을 받고 있는 브루노 슐츠의 소설집. 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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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독서토론회용으로 쓴 독후감입니다.


판타즈마의 요양원에서


모래시계 요양원은 브루노 슐츠라는 폴란드 작가가 쓴 단편(?) 소설집이다. 물음표를 친 이유는 이 소설은 개별적인 단편 소설이라 보기엔 느슨한 연결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 야꿉과 아들이자 화자인 조제프, 아델라 같은 이름들이 등장하고 또 미묘한 연결성을 가지고 있다. 차라리 연작 소설집, 라고 하는게 더 정확할듯 하다.


브루노 슐츠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몽롱하다. 이야기들은 상식을 벗어나기 일쑤며 도약과 비약을 통해 펼쳐지는 환상들은 종잡을수 없다. 게다가 그 묘사란 어떤가. 거의 시에 가까운 문장들이 쏟아진다. 플롯 전개보다는 묘사를 통해 사람의 이성을 몽롱하게 녹여버린다고 할까. 그렇기에 이 책을 읽는게 쉬운 경험은 아니였다. 하지만 처음엔 이게 뭐지? 하면서 읽다가 후반부에 들어서면서 뭘 말하는지 알 것 같았다.


[모래시계 요양원]은 한마디로 '패배하고 좌절하는 돈키호테들을 마술적인 강림을 통해 되살리려는 문학적 시도'라고 할 수 있을것이다. 이 돈키호테는 '나'나 '에지오', '연금수령자'일때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아버지로 나타나는데 이 아버지 야꿉은 단지 시럽을 얻기 위해 허풍 찬 연설을 늘어놓거나 위협적이고 거만한 검은 콧수염의 사내와 몸싸움을 벌이는 황당하지만 엄청난 에너지를 가진 사람이다. 하지만 그 아버지도 운명 앞에서 패배를 맞이하게 된다.


그런데 작가는 이 아버지를 시간을 되돌리는 모래시계 요양원에 넣어버린다. 이 모래시계 요양원은 모든 시간의 법칙들이 뒤집혀지고 죽은 사람들이 살아나고 초현실적인 사건들이 일어나는 유령의 영토다. 아들 조제프는 처음엔 그 유령의 시간과 인과율에 당황하지만 결말에 도달하면 그 유령의 시간과 인과율을 받아들이게 된다. 마침내 유령의 시간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이 행위에서도 볼 수 있듯이 브루노 슐츠가 이런 돈키호테 식 영웅들을 되살리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시간과 인과율를 환상으로 파괴/해체한 뒤 유령의 시간과 인과율로 통해 재생하는 방법이다. 밀랍인형을 되살려 군대를 만들고 (봄) 노인이 시간을 거슬러 아이가 되고 (연금 수령자), 남자는 하늘을 날아 사랑하는 여인의 창문에 도달한다. (에지오) 모든 사건들은 비약을 거듭하고 초현실주의와 탐미주의에 가까운 문장들이 쏟아진다. 


소설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아버지의 마지막 탈출'에 이르면 이 되살림이 어떤 실존적인 경지에 도달하는걸 볼 수 있다. 카프카의 [변신]의 영감을 얻은게 분명한 이 단편에서 슐츠는 카프카가 가지 않았던 길을 시도한다. 할부처럼 천천히 죽은 아버지는 벌레가 되어 나타난다. 그 죽음에 대한 저항은 이내 요리가 되는걸로 가혹한 판정을 받게 된다. 하지만 아버지는 죽지 않는다. 아버지는 불구의 몸을 이끌고 요리에서 벗어나 끝내 가버린다. 그레고르의 패배와 소멸로 끝낸 카프카와 달리 슐츠는 아버지를 살려 보낸다.


그러나 지상에서 아버지의 방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 다음 번의 분할된 죽음, 허용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 확장된 그 이야기는 그 중에서도 가장 고통스럽다. 왜 아버지는 포기하지 않았을까. 어느 모로 보나 졌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는데, 운명은 너무나 완전하게 아버지를 좌절시켜 더 이상 어쩔 수 없을 정도였는데, 왜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을까? 

(중략) 

푹 삶아지고, 가는 길에 다리 하나를 흘리기는 했지만, 남은 기력을 모아 아버지는 집 없는 방황을 시작하기 위해 어딘가로 지친 몸을 끌고 갔으며, 우리는 다시는 아버지를 보지 못했다.


'아버지의 마지막 탈출' 중


다만 소설적 재미는 별로 없다는 단점도 있다. '모래시계 요양원', '연금 생활자', '아버지의 마지막 탈출' 같은 경우엔 몽롱하게 녹여버리는 묘사와 소설적 구조, 주제를 모두 갖춘 수작이지만 '봄' 같은 경우엔 사람을 미치게 하는 봄이라는 마력에 대해 굉장한 묘사력을 보여주고 있지만 묘사가 이야기하고 살짝 겉도는 불균질한 면모도 있다. (물론 이야기 자체는 괜찮다.) 아예 아무런 사건 전개나 캐릭터 발전 없이 무드 피스로 날아가버리는 단편도 있다. 이건 단편이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불행히도 슐츠는 이 소설집으로 통해 어떤 극에 달했지만 그 극을 풀어내기도 전에 (장편을 준비중이였다고 한다.) 죽어버렸다. 그렇기에 한국에서는 인지도가 낮은 컬트 작가가 된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래시계 요양원이 선사하는 폴란드의 감수성이 묻어있는 쓸쓸하고 몽롱한 분위기들과 문학적인 시도는 한번 읽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소 읽는게 어렵긴 하지만.....


P.S.이 소설은 [사라고사 매뉴스크립트]로 유명한 보이체크 하스가 감독을 맡아 1973년 영화로 만들어졌다. 영화는 단편 [모래시계 요양원]을 기본으로 브루노 슐츠의 다른 단편들과 그의 생애를 섞어 만들었다고 한다. 이 소설을 하자고 한 이유도 영화판 포스터 때문이였다.



나는 이 포스터가 소설의 미학를 압축해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해골에 뇌가 없고 눈이 있다는 것은 이 소설을 '뇌=이성'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눈=감각'으로 느끼라는 뜻이라고 본다. 뭐 이런 것들이 그렇듯이 해석하기 나름이지만 포스터 그림 자체가 브루노 슐츠의 미적 세계관하고 잘 어울리지 않는가.


P.S.2 슬라브 문학 시리즈로 나온 작품인데 카렐 차펙의 로봇과 브루노 슐츠 단편집 두 권만 내고 망해버렸다. (현재 로봇은 절판 상태...) 책이나 번역 퀄리티가 제법 좋은 편이여서 더욱 안타깝다. 해석 같은 것도 꼼꼼하게 달려있고 작가가 그린 그림도 삽입되어 있다. 번역 난도도 상당히 높은데 문장의 미려함을 잘 살려내고 있다. 번역자 생계가 걱정되서 검색을 해봤더니 그래도 안정적으로 잘 나가고 있어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