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eper Into Movie/리뷰

성스러운 피 [Santa Sangre] (1989)

giantroot2013. 3. 15. 22:53




성스러운 피 (1994)

Holy Blood 
8.4
감독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출연
악셀 조도로프스키, 블란카 구에라, 가이 스톡웰, 델마 틱소우, 사브리나 데니슨
정보
공포, 미스터리, 스릴러 | 멕시코, 이탈리아 | 123 분 | 1994-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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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설이 있습니다.)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의 [성스러운 피]를 기묘한 영화라고 말하는 건 쉬운 일이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이미지가 강렬한데다 이미지들이 일반적의 상상력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감동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선뜻 어렵다. 이미지도 이미지지만 이 영화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이미지만큼이나 미쳐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스러운 피]은 다 보게 되면 눈물을 흘리거나 아니면 그 '감동적'이다라고 말하는 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실제 있었던 연쇄살인마를 모티브로 한 [성스러운 피]는 서커스단의 피닉스라는 남자 아이를 쫓아간다. 자신의 남성성을 과시하며 다른 여자랑 바람나는 아버지와 신경질적인 신흥종교 교주인 어머니 사이에 피닉스는 안정을 찾지 못하고 유일하게 위로해주는 사람은 줄타는 벙어리 소녀 알마뿐이다. 하지만 비극적인 사건이 터지고 소년과 소녀는 헤어지게 된다. 시간이 흘러 정신병원에 갇혀있던 피닉스에게 팔이 없는 어머니가 찾아온다.


조도로프스키는 이 영화를 공개할 당시 "관객을 위해 만들었다"라는 말을 했다. 하지만 [성스러운 피]를 보는 관객들은 그의 관객에 대한 기준을 의심할수 밖에 없다. 세일러 복을 입은 팔 없는 여신, 온 몸이 문신으로 뒤덮인 여자, 팔이 없는데도 마치 팔이 있는 것 같은 행동과 안무를 보이는 팔을 하는 어머니와 그 어머니의 팔을 대신하는 아들이 마임으로 들려주는 창세 신화, 섹스와 코피를 흘리는 코끼리 코의 교차 편집, 코끼리를 분해해버리는 빈민가 사람들, 성별 구분이 모호한 트랜스젠더 레슬러, 수화와 손 놀림으로 무수한 감정을 보여주는 소녀.... 조도로프스키는 이미지를 차용하는 게 아니라 아예 다른 우주의 이미지를 상상해 영화 속에 쏟아붓고 있다. 그 속에서 관객은 현기증을 느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 현기증을 넘으면 우리는 조도로프스키가 그 속에 숨겨둔 섬세한 감정을 찾아낼 수 있다. 거칠고 괴상하고 피로 물들어 있긴 하지만 [성스러운 피]는 무척이나 낭만적이고 가슴 아픈, 우리를 바꾸는 '사랑의 힘'을 말하는 영화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응당 받아야 했던 사랑을 받지 못하고 버려진 피닉스는 곧 왜곡된 성 관념과 인간 관계 밖에 맺을 수 없는 괴물로 자라난다.


[성스러운 피]는 이 기형적인 상황을 팔과 손의 이미지로 드러낸다. 먼저 이 이미지가 나오는 건 초반부 아무런 저항 없이 강간당하고 팔이 잘려 죽은 소녀 성자다. 제 의지와 상관없이 난도질 당하고 죽은 순결한 영혼을 상징하는 이 이미지는 하지만 이후 팔이 잘린 어머니와 살인을 하는 손으로 잔혹한 이미지로 반전된다. 특히 팔이 없는 어머니의 팔이 된다라는 설정은 오이디푸스적으로 비틀린 이 상황을 명쾌하고 강렬하게 보여주고 있다. 살인을 할때도 그는 자신의 의지로 행하지 못한다. 마리오네트처럼.


자연히 이에 대조되는 날개의 이미지가 등장하게 된다. 그 날개의 이미지는 마초성을 위해 억지로 한 독수리 문신을 알마가 문신 위에서 손으로 날개짓하며 떠나는 걸 보여주는 마임으로 등장한다. 낙인의 이미지에서 실제적인 날개/자유로 변하는 과정을 담은 이 상징적인 마임은 곧 영화 내내 살인을 거부하고 어떻게든 '해방'을 얻으려고 하는 피닉스의 행동으로 변주된다. 그 행동은 순수했던 시절로 돌아가려고 하지만 비극으로 끝날 수 밖에 없는 '사랑/에로스'기도 하고 (피닉스가 사랑을 구애하는 두 여자가 알마처럼 곱슬머리를 하고 있다는게 의미심장하다.) 스스로 자멸하려는 '죽음/타나토스'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 물론 시체가 새로 변하는 장면처럼 두 개가 섞일때도 있다. 조도로프스키는 이 과정을 거창하면서도 굉장한 설득력으로 밀어붙인다.


이런 비틀린채 팔 없는 마리오네트의 춤을 추는 피닉스의 상태는 곧 알마의 방문으로 깨진다. 유년의 순수한 사랑과 해방의 가능성을 일깨우는 알마는 그러나 폭압적인 어머니에게 죽을 위기에 처한다. 그러나 그때 기적이 일어난다. 피닉스가 어머니를 죽이는 것이다. 그리고 팔 없는 세일러 소녀상을 불태운다. 


여기서 영화는 사실 어머니는 이미 죽었고 오로지 피닉스 머릿속에만 있는 존재였다는 걸 밝힌다.  역설적으로 소녀 성자의 우상화된 이미지를 부수면서 그는 살인과 폭력의 주박에서 풀러나 '피닉스=불사조'라는 이름처럼 소녀 성자의 순결한 이미지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된 그를 다른 서커스 단원들은 축복하며 사라지고 '현재'를 살아가는 알마만이 남는다. 그리고 밖에 나온 피닉스는 환희에 찬 듯이 말한다. "내 손..." 


[얼굴 없는 눈]가 그랬듯이 조도로프스키는 초라하고 필연적인 비극에 차있는 인간을 위로하고 희망을 긍정하는 아름답고 슬픈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그 괴이한 껍질에도 불구하고 감동적이다. 이렇게 추하고 비틀린데도 마음 아픈 영화가 있을까. [성스러운 피]는 자극적인 표피만 추구하는 일부 컬트 영화에 일침을 가하는 컬트 거장의 영화라 할만하다.


P.S. 영화의 주인공을 압박하는 마초성이 미국 이미지로 등장하는게 (아버지의 의상, 아버지가 운영한 서커스 텐트 같은 부분...) 재미있다. 게다가 그 마초성에 대립하는 (어머니-성스러운 피 교회로 대표되는) 여성성은 라틴 이미지가 배어있다. 명시적인 미국 비판이 드러나는 영화는 아니지만 적어도 칠레와 멕시코라는 미국과 불편한 관계에 있었던 나라에서 자란 조도로프스키의 시선이 느껴지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