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eper Into Movie/리뷰

빛을 향한 그리움 [Nostalgia de la Luz / Nostalgia For The Light] (2010)

giantroot2013. 1. 19. 23:12


몇 세기 전 지층이 발견되었다

 

그는 지층에 묻혀 있던 짐승의 울음소리를 조심히 벗겨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발굴한 화석의 연대기를 물었고 다투어서 생몰연대를 찾았다

그는 다시 몇 세기 전 돌 속으로 스민 빗방울을 조금씩 긁어내면서

자꾸만 캄캄한 동굴 속에서 자신이 흐느끼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동굴 밖에선 횃불이 마구 날아들었고 눈과 비가 내리고 있었다

 

시간을 오래 가진 돌들은 역한 냄새를 풍기는 법인데 그것은 돌 속으로

들어간 몇 세기 전 바람과 빛덩이들이 곤죽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썩지 못하고 땅이 뒤집어 서야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동일 시간에 귀속되지 못한다는 점에서 그들은 전이를 일으키기도 한다

화석의 내부에서 빗방울과 햇빛과 바람을 다 빼내면 이 화석은 죽을 것이다

 

그는 새로운 연구 결과를 타이핑하기 시작했다

 

<바람은 죽으려 한 적이 있다>

 

어머니와 나는 같은 피를 나누어 가졌다기보단 어쩐지 똑같은 울음소리를

가진 것 같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김경주, '주저흔'


[칠레 전투] 삼부작 다큐멘터리로 유명한 파트리시오 구즈만 감독의 2010년 다큐멘터리 [빛을 위한 그리움]은 관객들을 칠레 북부 아타카마 사막으로 데려간다. 구즈만은 어렸을때 천문학에 관심을 가졌던 과거를 털어놓으면서 아타카마 사막에 세워진 천문 관측소에 관측하는 사람들을 찾아간다. 하지만 아티카마 사막은 과거 피노체트 정권이 저지른 학살의 증거들이 땅에 묻혀져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찾을 수 없는 가족의 시체들과 피노체트 정권이 저지른 악행들을 찾으러 사막을 헤멘다. 


구즈만 감독은 관계없어보이던 이 두 개를 하나로 묶는다. 물론 아주 꼼꼼하고 치밀하게 묶는건 아니다. 기본적으로 이 다큐멘터리의 방점은 천문학이 아닌 역사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으니깐. 하지만 천문학과 고고학에 대해 구즈만 감독이 가지고 있는 존중심과 미시적인 세계와 거시적인 세계를 넘나드는 핵심을 찌르는 통찰력, 그리고 전문가들에게 던지는 성실하고도 날카로운 인터뷰는 단순한 겉핣기 이상의 단단한 기반을 구축하고 있다.


이런 단단한 기반을 가진 통찰과 구성을 통해 구즈만 감독은 '우주와 자연이 안겨주는 경외스러운 아름다움과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학자들의 분투'라는 층위와 '역사의 참혹함에 희생된, 소중했던 누군가의 흔적을 찾기 위해 평생을 바친 사람들의 눈물겨운 노력'이라는 다른 층위를 하나의 프레임으로 겹치게 한다. 그 결과 [빛을 향한 그리움]은 희귀할 정도로 시적인 아름다움을 얻게 된다. 아타카마 사막과 그 하늘들은 곧 '삶'라는 하나의 우주로 재탄생하게 되고 해독되지 않은 무수한 별들과 아직도 찾을수 없는 희생된 사람들은 동일시되며 그것들을 찾는 사람들이 아름답게 수놓아진다. 영화의 제목인 빛을 향한 그리움은 곧 한 생을 살아내기 위한 투쟁을 향한 그리움이라고도 할 수 있을것이다.

 

후반부로 가면 갈수록 두 층위에 속해있던 사람들의 경계는 서서히 허물어진다. 가족을 잃는다는 것을 별에 비유해 설명하는 천문학자, 자기에게도 전파망원경 같은게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유족, 비록 부모님을 피노체트에게 잃었지만 꿋꿋히 살면서 천문학자가 되고 어머니가 된 소녀... 그 겹쳐짐의 절정은 전파 망원경을 보면서 행복해하는 유족들일것이다. 그 순간 영화 중간중간 조용히 내리던 먼지의 빛들이 그들에게 겹쳐진다. 탁월한 미적 메타포라 할만하다. 


[칠레 전투]가 공산주의적이고 민중을 위한 정부를 주창했지만 실패한 아옌데 정부의 시작과 끝을 다루고 있었고 [피노체트 재판]가 그 아옌데를 쓰러트린 독재자 피노체트의 몰락을 다루고 있었고 [살바도르 아옌데]는 아옌데에 대한 회고를 다뤘다고 하면 [빛을 향한 그리움]은 아옌데와 피노체트라는 두 격랑을 헤쳐가야 했던 칠레인들의 과거와 현재를 정리하고 미래를 바라보고 있다. 어찌보면 이 다큐는 그 잔혹한 시대에도 '멸종'하지 않고 살아남아 '멸종'한 자들을 잊지 않는 자들에게 바치는 시라고도 할 수 있을것이다. 드물도록 슬프고 아름답게 잔혹하고 잊혀지지 않는 상처와 그래도 꿋꿋히 나가는 삶과 우주의 아름다움을 말하고 있는 다큐멘터리다.


멸종하고 있다는 것은 어떤 종의 울음소리가 사라져간다는 것이다 나는 멸종하지 않을 것이다


-김경주, '우주로 날아가는 방 5'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