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eper Into Movie/리뷰

리피피 [Du Rififi Chez Les Hommes / Rififi] (1955)

giantroot2012. 12. 21. 22:57



리피피

Rififi 
9
감독
쥴스 데이신
출연
장 서바이스, 로버트 마누엘, 칼 뫼흐너, 재닌 다아시, 로버트 허슨
정보
스릴러 | 이탈리아 | 118 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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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라곰: 큰뿌리 씨 힘이 없어보이네요.

큰뿌리: 뭐 선거 때문이죠. 하하....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이 되는 세상이라니. 이 나라는 글렀어요.

폴: 무슨 말씀을 하시는거에요. 대한민국에 민주주의가 자리잡은건 30년도 안 됬어요. 아직 우리는 계속 싸워야 합니다. 프랑스 보세요. 150년 전통이지만 걔네들도 사르코지 뽑고  그리고 이제 그 독재자 향수도 끝날겁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건 그 민주주의의 기억을 잊지 않는거에요.

큰: 휴유. 그랬으면 좋겠네요. 오늘 영화 리뷰는 줄스 다신의 [리피피]입니다. 사실은 귀찮아서 안 하려고 했는데 절라리 감동적으로 보신 1인이 있어서요.

폴: 어휴, 말도 마세요. 이 [리피피]는 진짜 금고털이 영화 중에서는 1급이라고 할만한 영화입니다. 오션스 시리즈 (리메이크)나 도둑들 같은 최신 금고털이물들에게도 꿀리지 않을 정도입니다.

큰: 훌륭한 느와르 물이 아니고요?

폴: 훌륭한 느와르 물이기도 하죠.


큰: 흠 일단 스토리 요약을 해봅시다. 무대는 파리. 막 출옥한 토니라는 도둑이 주인공입니다. 그는 한때 잘 나갔으나 늙고 피로해있습니다. 하지만 돈은 필요하죠. 그때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던 부하 조가 보석상점에서 한탕만 하자고 꼬드깁니다. 처음엔 튕기던 토니는 이내 곧 설득해서 마지막이라는 조건을 달고 사람들을 끌어모읍니다. 이탈리아인 마리오, 금고털이의 고수 세자르를 모아서 털이에 성공하지만 일이 꼬이기 시작합니다.

[리피피]는 모범적인 필름 느와르 캐릭터과 플롯 공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들 조금씩 타락해있지만 인간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고 더 나은 삶을 꿈꾸죠. 하지만 그 희망은 영화 끝에 가면 처절하게 박살납니다.


폴: 맞습니다. 먼저 주인공 토니를 볼까요. 거칠고 옛 애인을 폭행하는 악랄한 면모도 있지만 늙고 피로한 면모로 약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죠. 그는 비정하고 잔혹하지만 조금은 따듯해질수 있는 소위 말하는 차가운 도시 남자입니다. 우리는 이 남자의 악랄함에 섬찟섬찟 놀라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 인물이 잘 되기를 기원합니다. 토니를 둘러싸고 있는 세 인물은 토니보다 훨씬 받아들이기 편한 인물들입니다. 아내랑 알콩달콩 살아가는 세자르와 조, 한 여자에게 일편단심을 바치는 순박한 면모까지 있는 마리오... 어찌보면 이런 인간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는 캐릭터들 때문에 영화의 결말이 더 처절해졌다고 볼 수 있어요. [리피피]의 결말이 드러내는 철학은 운명론적인 어두움과 쓸쓸함을 품고 있습니다. 한 번이라도 인간적인 삶을 살기 위해 발버둥치지만 결국엔 몰락하는 그들을 어떻게 타자화할수 있겠어요?

큰: 전 이 영화에서 범죄자들의 관계 묘사가 가장 흥미로웠습니다. 사무엘 풀러의 [사우스 스트리트의 소매치기]가 그랬듯이 인류학적 접근 그런게 느껴진다고 할까요. 특히 마도가 조의 아들을 찾아내기 위해 자신의 인맥 네트워크를 동원하고 토니에게 말하는 대사 좀 보세요. [리피피]의 세계는 의외로 흥미진진한 윤리학으로 돌아가는 곳입니다.

폴: 그렇죠. 마도는 토니를 용서할 생각은 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자기가 생각하는 악을 용인할 생각은 절대로 없습니다. 이런 접근은 단순히 토니를 버린 나쁜 년이 될뻔했던 마도에게 입체적인 성격을 불어넣는 윤활제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큰: 마리오가 좋아하던 노래 부르던 가수 비비안느은요? 노래 부르는거 제외하면 좀 팜므파탈적으로 낭비된 캐릭터 아닐까요?

폴: 외려 더 다뤘으면 균형이 깨졌을겁니다. 그리고 비비안느 캐릭터도 생각외로 팜므파탈적으로 낭비된게 아닌게 비비안느이 바보같이 떠벌떠벌거리면서 들통난거나 극 편의상 갑자기 캐릭터가 휙 변하면서 배신 때린게 아니라 '마리오의 어리석음 때문에 일어난 파국' 쪽으로 강조되어 있습니다. 실제로도 들킨 이후에 비비안느이 보여주는 반응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죠. 솔직히 비비안느이 그 반지에 대해서 뭘 알았겠습니까? 사랑하는 사람이 선물해준 반지로만 생각했겠지. 그러니 훔친 보석은 선물해주는게 아닙니다.


폴: 영화의 진짜 압권인 침묵의 보석상 털이 장면을 이야기해야 되겠죠. 이 장면에 들어서면 관객들은 28분 동안 침묵 속으로 빠져들어 그들이 내는 소리와 행동만을 보게 됩니다. 인간의 몸짓과 소리만이 남아있는거죠. 그 결과는 굉장합니다. 탁월한 리듬감각을 타고 흐르는 이 침묵의 사위는 거의 에로틱하다 싶을 정도로 유들유들합니다. 줄스 다신은 이 시퀀스를 통해 무성영화나 마임이 도달했던 침묵과 몸짓의 마법을 근사하게 성공시키고 있습니다. 미장센도 얼마나 아름다운지. 이 시퀀스 말고도 리피피는 흑백 느와르가 도달할 수 있는 어떤 황량한 아름다움을 실현시키고 있습니다. 후반부 총격전이 일어나는 아지트는 정말이지 쓸쓸합니다.

큰: 줄스 다신도 훌륭하게 그걸 실현시킨 배우들도 빼놓으면 안 됩니다. 특히 토니를 연기한 장 세르바이는 최소한의 표정 변화로 다양한 감정들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세자르의 죽음에 분노한 토니의 표정이나 조의 아들을 집으로 되돌리기 보내기 위해 고통을 참는 마지막 시퀀스를 보세요. 세르바이는 컬러풀하진 않지만 미세한 연기를 어떻게 조절해야 할지 알고 있습니다. 주변 조역들도 좋은 앙상블을 펼치고 있습니다. 특히 마도 역의 마리 사보렛은 토니에게 한치도 밀리지 않는 포스를 보여줍니다. 

큰: 근데 세자르 배우는 줄스 다신이라매요? 연기 잘하던데요.

폴: 으엑 진짜요? 좀 나이 들어보이던 아저씨던데. 


큰: 종합하자면 [리피피]는 프렌치 느와르의 한 장을 열어젖힌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줄스 다신은 미국인인데다가 영국과 프랑스를 거쳐 나중에 그리스 문화에 푹 빠져 살았던걸 생각하면 살짝 아이러니군요.

폴: 그런 아이러니가 [리피피]의 매력을 만들고 있는걸지도 모릅니다. [리피피]에는 당시 이방인으로 살 수 밖에 없었던 한 감독의 우울한 심정이 담겨 있어요. 그 점에서 그리스인 아내 멜라니 메르쿠르를 만난게 얼마나 그의 삶을 바꿔놓았는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메르쿠르가 주연을 맡은 [일요일은 안 되요]나 [톱카피]는 제법 발랄한 영화들이니깐요.

큰: 줄스 다신의 다른 필름 느와르 걸작인 [밤 그리고 도시]나 [네이키드 시티], [잔혹한 힘]을 보고 비교해보고 싶은 생각도 듭니다.

폴: 그때 저 부르면 될것 같네요^^

큰: 상황 봐서요.

폴: (삐짐)

큰: 그럼 다음엔 호러 영화라도 좀 해볼까요?

폴: 매일 보는게 호러 영화 아닙니까?^^ 뭐 그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