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eper Into Movie/리뷰

네트워크 [Network] (1976)

giantroot2013. 2. 6. 01:05



네트워크 (0000)

Network 
8.3
감독
시드니 루멧
출연
피터 핀치, 윌리엄 홀든, 로버트 듀발, 페이 더너웨이, 진 그로스
정보
코미디 | 미국 | 120 분 | 0000-00-00


큰뿌리: 안녕하세요. 폴라곰 씨.

폴라곰: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죠?

큰: 뭐 잘 지내고 있습니다.

폴: 하긴 스플린터 셀 삼부작을 2-3주만에 다 클리어해버리는 걸 보면 잘 지내는건 확실한듯요 ㅋㅋ

큰: 누가 보면 게임만 하고 지낸줄 알겠네요.

폴: 맞는 말이잖아요. 근데 이중 간첩은 언제 합니까? 쓰고 리뷰 올려야죠.

큰: 이 무슨 넌 리뷰 쓰는 기계에 불과해...

폴: 그것도 맞는 말이잖아요. 님 존재의의는 거기 있는데.


큰: 됬고요. 그렇게 따지면 님도 리뷰 할때만 나타나는데... 여튼 이번에 할 영화는 시드니 루멧의 [네트워크]입니다. 제목의 네트워크는 주지하다시피 유선 텔레비전 채널을 뜻하는 영단어죠. 그렇듯이 영화의 배경은 방송국입니다.

폴: 뭐 사전정보가 전혀 없이 영화를 보더라도 시작하자마자 나레이션으로 친절히 정리해주는지라 해멜 걱정은 없습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하워드 빌이라는 유선 뉴스 채널의 앵커와 그 직속 상사인 맥스 슈마처입니다. 한때 잘 나갔지만 지금은 나이를 먹고 시대의 조류를 따라가지 못하는 장년 남성들입니다.

큰: 영화 초반부엔 이들은 [타이거 앤 버니]의 코테츠처럼 이 둘은 삶에 찌들렸지만 가슴 속엔 어떤 순수한 이상을 품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술을 마시면 한탄하며 풀어놓는 일화들 (밤늦게 옷도 제대로 입고 나가지 않고 뛰쳐나가 보도를 했다는 둥)을 보세요. 말하는 투가 조금 꼰대스럽지만 풋풋하기 그지 없는 일화들입니다.

폴: 다들 나이가 들면 젊었던 시절을 뜯어먹고 살게 되는것 같아요.

큰: 이해해야 합니다. 세상 자체가 그렇게 만들어졌으니깐요. 한번 간 젊음은 돌아오지 않고 젊음을 원하는 사회는 늙은이들를 내다 버리죠. 대부분의 늙은 사람들은 마음 한 구석 구멍이 점점 넓어지는걸 채우기 위해 과거에 매달리게 됩니다. 물론 케바케여서 계속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말이죠.

폴: 어떤 마음가짐으로 늙고 늙은 사람들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도 중요한 문제인것 같습니다.


큰: 여튼 그렇게 하워드는 시청률 저하로 퇴직을 앞두고 있습니다. 심적으로 몰린 하워드는 방송에서 1주일 뒤에 자살하겠다고 폭탄 선언을 하게 되죠. 하지만 상황은 고별 방송에서 하워드가 자신의 처지를 털어놓으면서 반전됩니다. 이게 굉장한 지지를 얻게 된 것입니다. 때마침 자살 선언으로 폭등한 시청률에 관심을 두고 있던 다이애나가 하워드를 옹호하며 그를 주역으로 한 새 프로그램을 내놓게 됩니다.

폴: 영화의 풍자가 본격적으로 발동하는 부분도 이 부분이죠. 하워드는 자신이 세상을 향해 가지고 있던 시각을 광증으로 관객들에게 풀어내고 프로그램은 승승장구합니다. 루멧과 각본가 패디 차예프스키는 이 프로그램에 나오는 하워드를 어떤 신들림에 빠진 사람이나 종교에 등장하는 선지자처럼 묘사합니다. 

큰: 하지만 영화는 동시에 하워드 뒤에 있는 사람들과 프로그램 자체의 천박함을 끊임없이 환기시켜서 선지자가 가지고 있는 숭고함을 지워버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자기가 말하고 싶은 이상을 말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노릿개감에 불과한 피곤하고 지친 남자입니다. 

폴: 하워드 역의 피터 핀치가 굉장한 열연을 했어요. 상당한 오버 액팅인데도 그 에너지를 난잡하게 쏟아내지 않고 절도있는 카리스마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물론 루멧의 날카롭고 냉정한 연출로 그 에너지가 넘처흐르지 않게 조절했다는것도 뺄수 없겠죠.

큰: 이거 찍은 후 얼마 안 있어서 세상을 떠났다는데 과연 그럴만하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백조의 노래가 될만한 연기였어요.


폴: 맥스는 하워드를 이용해먹는 사람들에게 제동을 걸다가 쫓겨나게 되고 하워드의 프로그램은 브레이크 없는 폭주 기관차처럼 폭주하게 됩니다. 물론 그 중심엔 다이애나와 프랭크가 있고요. 물론 이야기가 이렇게만 흘러가지만은 않겠죠. 하워드가 아랍 석유 자본에 대한 비판을 가하고 사장 아서 젠슨이 그를 부르면서 이야기는 희비극의 영역에 들어서게 됩니다.

큰: 젠슨도 하워드만큼이나 굉장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죠.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상주의자인 하워드와 달리 젠슨은 능구렁이 같은 현실주의자입니다. 다이애나와 프랭크의 길로 간 하워드라고 할까요. 

폴: 아서는 하워드의 순진한 이상주의를 완벽하게 부숴버리고 새로운 계몽을 안겨줍니다. 그의 논리는 무시무시하고 잔인하지만 완벽한 논리와 통찰력을 가지고 있죠. 새로운 깨달음을 얻은 하워드는 사람들도 그 꿈에서 깨어나길 바라며 자신이 하던 방송에서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전파하죠. 하지만 그 결과는...

큰:  그 점에서 [네트워크]는 참 매정하기 그지 없습니다. 물론 그 매정함의 극단을 보여주는 캐릭터는 다이애나와 프랭크입니다. 그들은 변해버린 방송국 풍경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캐릭터입니다. 한마디로 무자비한 시청률 지상주의자이죠. 특히 다이애나는 완벽한 괴물입니다. 페이 더너웨이가 연기한 다이애나는 아름답고 관능적이지만 동시에 싸늘한 카리스마를 가지고있는 얼음 여왕이에요.


폴: 그런데 캐릭터들이나 그 캐릭터들이 벌이는 사건들이 과장됬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특히 좌파 아나키스트와 관련된 서브 플롯은 현실성이 많이 떨어집니다. 만약 저대로 벌어졌다면 실제라면 다이애나는 쇠고랑을 찼을 겁니다.

큰: 음 제 생각에는 과장된 단순함이야말로 영화의 주제인것 같습니다. [네트워크]의 시각은 다음과 같습니다 현대의 TV는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몽조리 1차원화시켜버리고 그것은 인간 가치를 파괴하는 재앙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 선언 그대로 영화가 진행될수록 TV화라 불리는 1차원화는 영화 속 캐릭터마저 잡아먹어버립니다. 하워드는 후반부로 갈수록 그 인간성을 잃고 간질발작적인 대사만 내뱉는 인형으로 전락하고 다이애나와 프랭크는 마지막에 극단적인 선택도 태연하게 저지르는 기계가 됩니다. 좌파 아나키스트들은 말할 것도 없고요. 

게다가 영화를 자세히 뜯어보면 과장된 단순함만으로 밀고 나가지도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폴: 어떤 식으로 말이죠?

큰: 먼저 배경이 되는 방송국에 대한 묘사가 치밀하고 고증도가 높습니다. 방송국 내에서 일어나는 일상적인 업무 풍경, 알력 관계, 현장 분위기, 시청률에 대한 집착.... 이런 묘사들은 그 과장되고 강렬한 대비로 이뤄지는 사건에 단단한 기반을 마련해주고 있습니다. 실제로 각본가가 TV 쪽에서 일했다는 걸 보면 경험에서 우러나온 걸지도 모릅니다.


큰: 그리고 서브 플롯은 그런 강렬한 대비에 섬세하고 풍요로운 결을 만들고 있습니다. 좌파 아나키스트들의 타락이라는 첫번째 서브플롯이 TV화의 과정을 상세하게 보여준다면 다이애나와 맥스의 불륜이라는 두번째 서브 플롯은 그 TV화 과정에 복합적인 음영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처음엔 모든 것에 지친 중년 남자와 동경하던 대상에 대한 애정으로 시작한 이 불륜은 점점 진행되면 될수록 그 온기를 잃어가고 냉담한 역할극만 남습니다. 맥스의 마지막 대사를 보세요. 거의 메타픽션 수준입니다.

폴: 불륜 서브 플롯은 각본가가 맥스에 감정이입하고 쓴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큰: 드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확실하죠. 맥스는 유일하게 그 1차원화에 휩쓸리지 않는 인물이니. 하지만 영화는 맥스에게만 몰입하지 않고 불륜 때문에 상처받는 맥스 부인인 루이즈에게도 존중심을 잃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불륜의 댓가를 온전히 맥스가 지고가야 한다는 것도 명확하게 못 박아두고 있죠.

폴: 하긴 루이즈가 화를 내도 맥스는 어떤 변명도 하지 않고 덤덤하고 씁쓸하게 그걸 받아들이죠. 다른 여자를 좋아하는 자신의 감정을 충실히 따르지만 그 감정이 결코 그동안 자신을 믿어왔던 상대가 용납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있다고 할까요.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끝까지 복합성을 잃지 않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큰: 제 생각에는 맥스가 가지고 있는 그런 태도야말로 영화 속에서 무자비하게 진행되던 TV화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가치 아니였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여튼 [네트워크]의 강렬한 대비의 필치는 단점이 아니고 또한 그 대비만 할 줄 밖에 모르는 것도 아닙니다. 그 강약을 조절할줄 아는 필치가 그려내는 사건들은 거의 오페라나 유사 종교 체험 수준까지 도달합니다. ...그리고 이 무시무시함은 나이를 먹지 않았습니다. 슬프게도요. 

폴: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그나저나 루이즈 연기가 짧지만 굉장하더라고요. 베아트리스 스트레이트는 이걸로 아카데미 조역상도 받았다면서요?

큰: 확실히 루멧 감독은 주역들의 연기 뿐만이 아니라 조역들에게도 자기 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기회를 발휘해주는 감독이라 생각합니다.


큰: 정리를 해보죠. [네트워크]는 고령까지 왕성하게 활동했던 시드니 루멧의 매서운 장기가 살아있는 대표작입니다. 그 메세지나 파워는 여전히 건재합니다. 현실적인 영화는 아닐지라도 치밀하고 단단하게 세워진 풍자극이라 할만합니다.

폴: 각본가 경력을 생각해보면 (패디 차예프스키는 50년대에 방송 생활을 했습니다. 그 당시만 하더로도 20년은 족히 지났죠.) 영화 초반에 나누는 대사처럼 '그땐 안 그랬는데 지금은 엿같네' 식의 꼰대들 푸념으로만 끝날 수도 있었는데 지금도 날카롭게 후비는 걸 보면 각본가의 통찰력이 예사가 아닌것 같습니다.

큰: 어쨌든 이젠 당당히 1970년대 헐리우드의 고전으로 자리잡은 영화죠.

폴: [시나리오란 무엇인가]의 로버트 맥기가 정말 좋아하던게 기억납니다.

큰: 하하. 그 빨갛고 두꺼운 책 말인가요? [차이나타운]만큼은 아니지만 굉장히 상세하게 다뤘죠. 확실히 좋아할만하다고 생각합니다.

폴: 그 책 굉장히 좋았는데 말이죠.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개학 준비 잘 하시길. 

큰: 네. 그럼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