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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의 사나이 [The Third Man] (1949)

giantroot2012. 12. 3. 22:09




제3의 사나이 (0000)

The Third Man 
8.8
감독
캐롤 리드
출연
아리다 발리, 오손 웰스, 조셉 코튼, 트레버 하워드, 폴 호비거
정보
스릴러 | 영국 | 100 분 | 0000-00-00



캐롤 리드의 [제 3의 사나이]가 우리를 데려가는 곳은 전후 오스트리아다. 영화는 친구 해리 라임이 일자리를 소개 시켜주겠다는 말에 오스트리아로 넘어온 미국 펄프 소설가 홀리 마틴즈를 쫓는다. 하지만 해리는 이미 죽어있는 상태. 홀리가 만나는 오스트리아는 낯선 '언어'로 가득찬 곳이다. 


영화는 먼저 그 언어들 속에서 헤매는-홀리가 지독히 미국적인 내용인 카우보이 소설을 쓴다는 것도 의미심장하다-홀리를 보여주면서 미국/영국과 그 외 다른 유럽들이라는 두 개의 프레임을 세운다. 이 영화에서 오스트리아어/러시아어 대사들은 그 내용이 의미가 있는게 아니라, 그 낯선 언어를 홀리가 듣지 못한다는 사실에 방점이 찍혀 있다. 유달리 홀리가 오스트리아 인들의 대화를 못 알아듣거나 애나나 다른 사람들이 대신 번역해주는 장면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프레임을 영화를 이해하는데 큰 단서가 되고 있다.


이 프레임 속에서 홀리는 길잃은 아이처럼 방황을 하다가 해리의 옛 연인이자 망명중인 체코인 애나를 만나게 된다. 그들은 해리의 추억을 공유하면서 친해지고 그와 관련된 음모에 휩쓸리게 된다. 개념만 보면 [제 3의 사나이]는 소피아 코폴라의 [사랑도 통역도 되나요]하고 유사하다. 낯선 도시에서 공통점이 있는 남녀가 사랑을 시작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슬슬 이 영화가 필름 느와르가 맞는가 생각이 들때쯤 제 3의 사나이 해리가 사실은 살아있었다는 진상이 밝혀지면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여기부터 해리 라임즈가 등장한다. 영화를 보는 관객이라면 홀리와 애나 말대로 해리가 착한 사람이거나 혹은 어떤 사정이 있어서 어쩔수 없이 악한 구렁텅이에 떨어졌을거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해리는 그런 인물이 아니다. 물론 옛날에는 착한 사람이였던 것은 맞다. (그것은 인물들의 회고가 보증하고 있으니깐.) 하지만 해리는 악의 구렁텅이에 스스로 내려가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이다. 그가 그렇게 살아가는 이유는 관람차 시퀀스의 유창한 연설로 드러난다. 그는 평화에서는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혼돈에서만 무언가 탄생한다고 보고 있다. 그렇기에 자신이 혼돈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런 해리의 거창한 연설과 오손 웰즈의 거창한 연기는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혼탁해져버린 서구인들의 가치관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물론 해리 라임의 끝은 몰락이다. 여기서 홀리와 애나의 태도가 극명하게 갈리면서 사랑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홀리는 체포에 협력하라는 경찰 측의 요구에 다소 소극적이고 방관적인 태도를 취하다가 결국엔 해리의 악업에 마음을 돌려 체포에 앞장서게 되고, 애나는 반대로 그런 홀리를 비난하며 망명할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고 돌아온다. 이런 행동의 차이는 홀리가 미국인이고 애나는 체코인이라는 점에서 비롯된다. 미국인들은 2차 세계 대전을 한발짝 물러서서 보았기 때문에 전후 세대의 냉소주의와 타락의 상징인 해리를 어느정도 거리감을 유지하거나 회피할 수 있었지만, 체코인 같은 전쟁의 당사자들인 유럽인들은 그럴수가 없었다. 


그 와중에 묵묵히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 또다른 제 3의 사나이가 있다. 바로 영국인인 캘로웨이 소령이다. 그는 처음엔 홀리에게 소동에 휘말리기 싫으면 그냥 나가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후 홀리가 음모에 말려들고도 소극적으로 행동하자 적극적인 행동을 하도록 해리의 악행을 보여주고 애나의 망명을 도와준다. 이런 캘로웨이 소령의 존재는 전후 영국인들의 시선을 드러내고 있다. 그들은 유럽처럼 완전히 전쟁에 휩쓸리진 않았지만 반대로 미국처럼 완전히 동떨어진 이야기도 아니였다. 그렇기에 해리에 대해서도 동정적이지도 않지만 홀리와 달리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개입한다. 이런 각자의 시선차 속에 일어나는 해리의 몰락은 [제 3의 사나이]를 필름 느와르의 고전으로 확고한 위치를 세우게 한다.


[제 3의 사나이]에서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역시 비주얼이다. 필름 느와르의 주요 특징인 표현주의적 특성이 무엇인가, 를 알기 위해서는 [제 3의 사나이]의 장면들을 드는게 가장 효과적일듯하다. (물론 내용면에서도 훌륭한 느와르다.) 그만큼 영화는 빛이 만드는 흑백의 대조를 아주 극명하게 살려내고 있으며, 뒤틀려진 카메라 시선-더치 앵글로 찍혀진 영화를 들때 자주 나오는 영화다-과 극단적인 원근 대조법 (홀리가 추격당하는 장면)은 지금 봐도 신선한 구석이 많다. 클라이맥스의 하수도 추격전은 그 비주얼의 극치며 영화의 결말이 보여주는 미장센은 필름 느와르의 쓸쓸한 감수성을 멋지게 드러내고 있다.


[제 3의 사나이]는 미국에서 유행했던 하드보일드와 필름 느와를 전후 유럽으로 끌어와 그 당시의 시대상의 어두운 면모들을 드러내는 영화다. 각본가 그레이엄 그린의 유려한 필체와 캐롤 리드의 강렬한 시청각 스타일로 그려낸 모럴 딜레마를 다룬 느와르 걸작이라고 할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