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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거리 주자의 고독 [The Loneliness Of The Long Distance Runner] (1962)

giantroot2012. 11. 20. 23:40




장거리 주자의 고독 (0000)

The Loneliness Of The Long Distance Run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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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토니 리처드슨
출연
애비스 번나지, 톰 커트니, 마이클 레드그레이브, 줄리아 포스터, 알렉 맥코웬
정보
드라마 | 영국 | 104 분 | 0000-00-00


토니 리처드슨의 [장거리 주자의 고독]은 앨런 씰리토의 단편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다. 콜린 스미스라는 반항적인 노동자 계급 청년이 소년원 장거리 주자로 뽑히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다루고 있는 이 영화는 시기상으로 보면 [장거리 주자의 고독]은 영국 성난 젊은이들과 그들이 만든 영국 뉴웨이브에 속해있는 영화다. 다큐멘터리의 영향을 받은 로케이션 촬영 위주의 생생한 톤의 연기라는 점에서 프랑스 누벨바그와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지만 영국 뉴웨이브는 사회주의 사실주의 (키친 싱크 리얼리즘이라 불리기도 한다.)에 기반한 영화들이 많았다. [장거리 주자의 고독]의 관점 역시 그 사회주의 사실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다.


제목처럼 [장거리 주자의 고독]의 중심 모티프는 '달리기'다. 소설과 영화는 콜린의 입을 빌어 자신의 집안 내력은 '달리기를 잘하는 것'이며 특히 '경찰에게 피하기 위해 달리는 것'을 잘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작 그렇게 말하는 콜린은 소년원에 갇혀있다. 이 간단한 아이러니는 곧 영화의 큰 뼈대로 자리잡는다. [장거리 주자의 고독]는 '억압'과 '억압에 대한 반발'이라는 두 명제를 드라마의 동력으로 삼는 작품이다.


콜린을 억압하는 것은 바로 자신을 둘러싼 현실이다. 그의 집안은 한마디로 구질구질하다. 전형적인 노동자 계층이 그렇듯이 재정은 빠듯한데다 자식은 많다. 거기에 아버지는 발작적인 외침을 내뱉으며 죽어가고 있으며 아버지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어머니는 죽어가는 아버지에 무심한데다 속물 근성을 아낌없이 드러낸다. 영화는 아버지가 죽은 후 어머니가 준 돈을 태우고 어머니의 기생오래비 같은 새 애인-그가 콜린의 집안에 풍요로움을 가져온다는 사실은 중요하다.-에게 적대적으로 대하는 콜린을 보여주면서 그가 단순히 경제적 쪼들림 이상의 무언가에 억압되어 있으며 그 억압을 향해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그렇게 콜린은 집 밖을 나서서 친구와 함께 자동차를 훔치고 여자들을 꼬셔서 데이트를 나누고 마지막엔 절도를 저지른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제대로 충족되지 않는다. 자동차는 얌전히 원래 자리로 되돌아가고 스케니그스는 가기엔 돈이 너무 많이 들고 여자 친구는 직장을 가지라고 잔소리한다. 절도는 소년원 수감으로 막을 내리게 된다. 


콜린이 새로 도착한 소년원도 집안의 연장선상에 있다. 좀 더 규격화되고 더 억압되어 있다고 할까. 당연히 콜린은 낯설지만 익숙한 풍경을 보면서 냉소적인 태도를 취한다. 그런데 여기서 달리기가 다가온다. 선천적으로 잘 달릴수 있는 그의 신체 조건을 보고 소년원장이 그를 선수로 내보내려고 하는 것이다. 여기서 그는 달리기라는 행위에 매료되기 시작한다. 그는 이곳저곳 뛰어다니면서 자신에게 허락된 자유를 맛본다.


[장거리 주자의 고독]이 흥미로워지는 부분은 이 '허락된 자유'가 '억압'으로 변모하는 과정과 그에 대한 대항을 보여준다는 점에 있다. 이 과정을 설명하자면 한마디로 '길들어짐'이다. 콜린이 달리기 연습을 하면서 소년원 원장에게도 총애를 받지만 동시에 주변인들에게 '가석방되기 위해 소년원 원장에게 꼬리나 살래살래 치는 녀석'으로 험담을 듣게 되고, 그와 함께 대항했던 친구도 교도소 들어와서 '너 변했다'라는 식의 반응을 듣게 된다. 콜린은 이 과정을 통해 '달리기'가 외부에 있었던 것과 달리 또다른 억압으로 변해간다는 걸 깨닫게 된다. 이에 대한 그의 대답은? 달리기를 멈춘다다. 이런 콜린의 선택은 아이러니하면서도 무척 실존적이다. 카뮈가 떠오를 정도다. 그렇게 콜린은 패배자로 낙인찍히지만 동시에 길들어지지 않는 영혼으로 남게 된다. 


[장거리 주자의 고독]은 이젠 고전적이다 할 수 있는 청춘의 반항을 단순하지만 명쾌한 질주와 멈춤의 미학에 담아낸 영화다. 초라하고 쌀쌀한 영국 중부의 자연과 도시들은 토니 리처드슨 감독의 눈을 통해 시적인 순간으로 탈바꿈해 콜린의 실존적인 선택에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프리 시네마 기법은 질주와 멈춤에 대한 매료를 극명하게 담아내고 있다. 청춘 영화의 고전으로 불릴만한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