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eper Into Movie/리뷰

사우스 스트리트의 소매치기 [Pickup on South Street] (1953)

giantroot2012. 11. 12. 13:21




사우스 스트리트의 소매치기

Pickup On South Street 
9
감독
사무엘 풀러
출연
리차드 위드마크, 진 피터스, 윌리스 보시, 델마 리터, 밀번 스톤
정보
스릴러 | 미국 | 80 분 | -


사무엘 풀러의 [사우스 스트리트의 소매치기] (이하 사우스 스트리트)는 보통 풀러의 대표작을 고르자면 자주 거론되는 영화다. 막 출감한 소매치기 스킵이 한 여성을 소매치기를 했다가 극비 필름을 얻으면서 모든게 배배꼬인다는, 필름 느와르 장르의 전형처럼 시작하는 영화다. 실제로도 [사우스 스트리트]의 이야기 전개의 동력이라던가 기본적인 캐릭터 설계도 대부분은 전통적인 갱 영화나 필름 느와르에 빚지고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하지만 사무엘 풀러는 대가들이 그렇듯이 거기서 머무르지 않고 독자적인 아이디어를 구축하고 있다. 권위를 비웃고 '내 욕망대로 살겠다' 주의를 내세우는 스킵이야 그럭저럭 느와르 장르에서도 볼 수 있는 캐릭터라고 쳐도 태평스럽게 사람들에게 정보비를 요구하는 모는 관객이 우울하고 칙칙한 느와르 장르에서 기대할 법한 캐릭터가 아니다. 한 술 더 떠 이 캐릭터가 맞는 결말은 얼핏 보면 필름 느와르적이지만 전형에 묘하게 벗어나 있어서 감동적이다. 서브플롯으로 삽입되는 스킵과 캔디의 연애사와 모와 스킵, 모와 캔디의 관계도 따로 놀지 않고 유기적으로 통합되어 있다.


이처럼 영화는 사소한 캐릭터에게도 자주성과 욕망, 생생함을 부여하고 있고 그 때문에 풍성한 감흥으로 가득차게 된다. 거기에 멈추지 않고 영화는 그런 감흥을 이용해 흥미진진한 인류학적, 나아가 윤리적인 탐구를 이뤄내고 있다. 이 영화의 범죄자들의 세계는 나름의 윤리 법칙과 연대를 가지고 움직이고 있으며 동시에 캐릭터의 동력과 판단준거가 되기도 한다. 악역이라 할 수 있는 공산주의자들이 나쁜 것은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그들이 목표를 위해 그 윤리 법칙을 깨트렸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은근슬쩍 필름 느와르의 전형인 "도덕적 판단 준거가 불분명한 캐릭터들의 파멸"이라는 공식에서 탈주하고 있는 영화기도 하다. 특히 결말의 낙천적인 기운은 필름 느와르의 결말하고는 많이 다르다.


사무엘 풀러는 인상적인 서스펜스를 만들어내는데도 성공해내고 있다. 그가 리듬감이 매우 탁월한 감독이라는 걸 증명하는 장면을 골라보자면 조이가 세탁물 엘레베이터에 숨었다가 사이에 끼어 난처해지는 장면이라던가, 모가 침대에 누워있다가 침입자의 존재를 알아차리는 장면, 클라이맥스의 최후의 소매치기 장면이 있다. 물론 위에서 언급한 전형성의 탈주를 통해 만든 풍성함과 활기차면서도 단단한 배우들이 연기들이 서스펜스의 맛깔남을 더해주고 있다는건 빼놓을수 없다. 리처드 위드마크의 연기는 다소 과시적이긴 해도 스킵이란 캐릭터에 잘 맞아 떨어지며 델마 리터의 태평스럽지만 인간적인 회한에 가득찬 모는 풀러의 비전에 충실히 봉사하면서도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뽐내고 있다.


시대상의 한계 (매카시 시절이니...)도 보이지만 전반적으로 [사우스 스트리트의 소매치기]는 필름 느와르와 범죄물의 전통을 이어오면서도 그것을 새롭게 재창조해낸 지성미 넘치는 감독의 대표작이라고 할만한 날렵하고 유머가 넘치는 영화다. 그리고 그 매력은 세월이 지나도 여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