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eper Into Movie/리뷰

붉은 사막 [Il Deserto Rosso / Red Desert] (1964)

giantroot2012. 11. 5. 15:56



붉은 사막

Red Desert 
6
감독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출연
리차드 해리스, 모니카 비티, 카를로 치오네티, 제니아 발데리, 리타 르느아르
정보
드라마 | 이탈리아, 프랑스 | 120 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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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영화들은 보통 실존적인 고독으로 해석되곤 한다. 그의 영화에선 분명한 플롯은 없고 인물들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공기와 풍경이 가장 중요하게 대두된다. [붉은 사막]은 그 공기와 풍경이 아주 극적으로 드러나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영화는 흐릿한 포커스로 잡은 공장 지대에 이상한 기계음과 신경 거슬리는 허밍으로 배경이 되는 이탈리아의 공업지대의 비인간적인 공기와 삭막한 풍경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어찌보면 [태양은 외로워]의 시끄러운 주식시장과 이탈리아 교외가 확장된 곳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압도하는 수준은 [태양은 외로워] 때하고는 차원이 다르다. 아니 [붉은 사막]은 안토니오니 필모그래피를 놓고 보아도 특이한 작품이다. [태양은 외로워]의 주식시장과 교외엔 그래도 개인이 숨 돌릴 틈은 있었다. [붉은 사막]의 공장지대는 개인적이고 친밀해야할 공간조차 잡아 먹어버린다. 몬드리안 풍의 세련되지만 온기없이 설계된 줄리아니의 집 창 밖에는 항상 공장 지대의 풍경과 배가 보이고, 따사로운 피크닉이여야 할 오두막 창문 밖에는 병이 퍼지고 있는 배와 오염된 강과 자연 풍경들,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안개로 둘러쌓여 있다. 거리로 나서면 공장이 내뿜는 노랗고 흰 안개가 자욱하며 공장에서 내는 날카로운 기계음은 관객의 청각을 공격한다. 


자크 타티의 [플레이타임] 수준은 아니지만 [붉은 사막]이 시청각으로 잡아내는 잡아내는 압도적인 공업 도시의 풍경들은 SF나 다름없다. 안토니오니 영화 최초로 도입된 컬러 역시 그런 공장 지대와 현대 도시의 '생기가 죽어버린' 색채를 잡아내고 있다. 이쯤되면 줄리아니의 소외감과 두려움이 [태양은 외로워]때와 달리 표면화되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우선 줄리아니를 보자. 과거 교통사고-다른 사고도 아니고 자동차라는 근대적인 물품 때문에 일어난 사고라는 점이 재미있다. 영화의 현대적인 배경이 가져다 온 소외를 암시하고 있는것일까?-를 당해 공황에 빠진 줄리아니는 정신치료를 받은 전력이 있다. 처음에 줄리아니는 그 당시 문제 있었던 자신을 다른 사람인양 이야기하는데, 이는 그가 자신의 소외감을 애써 무시하고 타자화시켜왔다는걸 암시한다. 하지만 그렇게 무시한다고 해서 한구석에 켜켜히 쌓인 소외감과 외로움은 갑자기 사라지지 않는다. 영화는 그 소외감을 근본적으로 해소시키려는 줄리아니의 시도를 보여주지만 그 어느 것도 제대로 충족되지 않는다. 한 예로 줄리아니는 '빈' 공간을 채워 가게를 열려고 생각 중이지만 그 가게는 영화 끝날때까지 열리지 않는다.


줄리아니의 충족되지 않는 소외감은 곧 이상행동들과 파라노이드를 만들게 된다. 누가 먹고 있는 음식을 불안한듯이 일부러 사서 몰래 먹는 첫 시퀀스의 이상 행동으로 충격적으로 제시되는 줄리아니의 막을 수 없는 소외감은 안개 속에서 히스테리를 부릴때 외계인을 바라 보듯이 보는 주변인들의 시선과 사랑하고 의지해야 할 아들이 걷지 못한다는 사실에 패닉에 빠졌다가 사실은 그게 뻥이였다는 걸 알게 되는 것으로 절정에 치닫는다. 좀 비약일지 몰라도 줄리아니 입장으로 보면 [붉은 사막]은 공포 영화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외계 세계에 외따로 떨어져 정체를 알수 없는 불안함에 떨며 발작하는 공포 영화 말이다. 이러니 자신을 이해'한다고' 보이는 코라도와 불륜에 빠지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상대인 코라도는 어떤까? 일단 배우부터 [해리 포터] 영화판 1대 덤블도어로 유명한 아일랜드 배우 리처드 해리스다. 그래도 프랑스인이라는 혈통 때문에 무난하게 이탈리아인들 사이에 섞여들어갔던 [태양은 외로워]의 알랭 들롱과 달리 아일랜드인인 리처드 해리스의 외모는 영화 속 이탈리아인들 사이에서 유달리 튄다. 게다가 여기저기 떠돌아다니고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어질때가 있다는 코라도의 백스토리와 오두막에서 '당신은 뭘 봐야 하는가 물어보고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궁금해하고 있는데 그건 같은 것이다.' 같은 대사들은 그도 줄리아니와 비슷한 소외감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암시한다. 결국 과거사를 고백하며 서로 친근감을 쌓아가던 이 둘은 불륜을 통해 그 소외감을 해소시키려고 시도한다.


하지만 줄리아니와 코라도의 불륜조차 그 소외감을 해소시키지 못한다. 그걸 알아차린 줄리아니는 매몰차게 코라도에게 이별을 선언하고 (이는 사랑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지만 어찌되었든 다시 만나길 약속하는 [태양은 외로워]의 빅토리아와 피에로 커플하고 대조된다.) 떠돌아다니다가 선원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줄리아니는 배 타고 어디론가 떠나지도 못하고 이탈리아어를 못하는 선원 앞에서 자신은 병에 걸렸지만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고 혼자서 떠든다. 그리고 장면이 바뀌어 줄리아니는 공장을 보면서 아들에게 독한 매연은 새들도 피한단다,라고 가르친다. 영화는 거기서 끝난다. 이 결말의 아이러니함은 소통 없음 속에서 결국 병을 치유하지 못하고 천천히 죽어가고 있는 현대인을 보여주고 있다. 줄리아니의 소외와 고독은 여전히 남아있지만 아무일 없듯이 일상은 돌아간다.


[붉은 사막]은 소외 삼부작에서 떠돌았던 외로움과 쓸쓸함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영화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병적인 징후들 때문인지 [태양은 외로워]에서 느껴졌던 농염함은 적은 편이다. 하지만 [붉은 사막]은 소외 삼부작이나 이후 안토니오니 영화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차갑고 날카로운 매력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붉은 사막]은 그 어쩡정한 필모그래피 위치 (시기적으로 보면 소외 삼부작과 영어 안토니오니 사이에 끼어있는 영화다.) 속에서도 묻히지 않은 걸지도 모른다.


P.S.1 근데 영화의 공업 도시 풍경이 [칠드런 오브 멘]이라던가 [디스아너드]하고 비슷하다는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