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를 좋아했던 사람들은 모두 떠나갔다
데이빗 핀처 감독의 [소셜 네트워크]는 남녀의 데이트에서 시작한다. 평범한 일상처럼 보이던 그 데이트는 그러나 어딘가 삐긋거리기 시작한다. 남자 쪽에서 대화를 맞춰주지 못하고 자꾸 엉뚱한 쪽으로 신경을 긁어대며 여자는 참다가 결국 화를 낸다. 남자는 마크 주커버그, 그러니까 영화의 주 소재인 페이스북의 창립자다. 그리고 이 사람이 주인공이다. [소셜 네트워크]의 시작은 너무나 아이러니하기 그지 없으며, 그 아이러니는 영화 전반의 주제를 담당하고 있다.
영화 속 마크 주커버그는 한마디로 인간 관계에 대해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사람에게 어떻게 대할지도 모르고, 그게 큰 흥미거리도 아니다. 그가 흥미를 가지는 건 정교하게 구성된 수식과 쿨한 감각이다. 그가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 준 행위는 별 악의가 없다. 그냥 그 사람의 행동이 쿨한 것과 거리가 멀기에 당연히 선택한 행동이다. 애인의 흉을 보는 포스팅을 거리낌없이 올리는 행위도 애인이 전혀 쿨하지 않다고 주커버그가 느꼈기 때문이다. (물론 법정에서 감정이 격해져서 뭐라 조롱하긴 하지만 그 조롱도 대체적으로 '너님들은 전혀 쿨하지 않거든요?'라는 기반을 깔고 있다.) 그가 중도에 만나 푹 빠지게 되는 숀 파커 역시 비슷한 사상적 기반을 가지고 있다.
이런 주커버그의 캐릭터는 소셜 네트워크의 주된 아이러니를 만들어낸다. 페이스북의 핵심은 실제 인간 관계의 핵심하고는 거리가 멀다는 것. 그 핵심은 그저 어느 똑똑하지만 인간 관계에 관심이 없는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정교하게 만들어낸 시스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소셜 네트워크]가 보여주는 현대인들의 인간 관계는 무척이나 이중적이고 위태위태하다. 속고 속이는 약육강식의 세계여서가 아니다. 오히려 예측 가능한 알고리즘과 얄팍한 정보로 이뤄진, '기계적'이고 '대체가능'한 관계여서 그렇다. 주커버그가 에두아르드를 버리는 이유도, 그를 대체할 다른 누군가가 있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와 주커버그의 승리는, 윙클보스 형제로 대표되는 기존 상류급 지도자층들의 지덕체를 겸비한 전통적인 홍익인간적 가치관과 에두아르드로 대표되는 미국을 지배했던 청교도적 자본주의 윤리와 충돌을 만들어낸다. 윙클보스 형제는 지도층의 품위를 지키려다가 총장에게 망신 당하고 제대로 소송하지도 못하고, 친구를 믿고 돈의 윤리를 지키고자 했던 에두아르드는 쫓겨나게 된다. 이런 과정은 자본주의의 대세가 트렌드와 첨단 기술 위주로 옮겨가고 있는 현실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삶과 관계는 그렇게 쉽게 프로그래밍하거나 대체될 수 없는 존재라는건 명백한 사실이다. 주커버그는 그런 식으로 성공을 하지만, 이후 이어지는 소송들과 사건들을 겪으면서 자신의 가치관을 다시 재고하게 된다. 영화의 마지막, 주커버그는 나는 나쁜 놈이였나라고 변호사에게 물어본다. 변호사는 이에 나쁜 놈이 되려고 노력했을 뿐, 나쁜 놈이 아니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영화 초반에 헤어졌던 전 애인의 페이스북으로 들어가 친구 신청을 누른다.
이 결론도 굉장히 아이러니한데, 자신의 가치관을 재고한다는 점에서 성장이라는 긍정적인 의미를 제시하지만, 그 성장의 제스쳐가 직접 대면이 아닌 페이스북 친구 신청이라는 점은 주커버그가 변하려면 가야할 길이 아직도 멀다는 그림자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 그림자는 인터넷 인간 관계의 가벼움에 매여있는 현대인들의 것이기도 하다.
심각하게 적었지만, [소셜 네트워크]는 흥미로운 지적 유희다. 카리스마적인 행적을 남긴 한 인물의 삶을 그린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IT판 [데어 윌 비 블러드]로 볼수도 있을것이다. 하지만 묵시룩적인 분위기와 무거움으로 가득한 [데어 윌 비 블러드]와 달리, [소셜 네트워크]는 날렵하기 그지 없다. 이건 단점이 아니다. [소셜 네트워크]의 소재와 등장 인물들은 아직 20대이며, 결정적으로 현재 진행형인 사건이기 때문이다. 핀처와 아론 소킨은 소재에 맞는 접근 방식을 택한 것이다.
장르적으로 봤을때 [소셜 네트워크]는 갱스터 영화다. 총 대신 펜과 컴퓨터, 트렌치 코트 대신 양복과 캐주얼 복, 뒷골목과 불법 사업장 대신 번쩍번쩍한 거대 사무실과 로스엔젤레스 주택가 그리고 하버드 대학로 바뀌었지 비정하게 경쟁자들을 제거하는 주인공, 협상과 협박, 말살, 소송, 음모, 배신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소셜 네트워크]는 훌륭한 갱스터 영화다. 사실 [데어 윌 비 블러드]나 [시민 케인], [월 스트리트], 그리고 최근의 [부당거래]까지 자본주의와 경제를 다룬 영화들이 모두 이런 속성을 가진 걸 보면 자본주의 자체가 갱스터적인 부분이 있다는 유추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핀처의 커리어에서 봤을때 이 영화는 [조디악] 이후 이어져 온 새로운 핀처의 도약일 것이다. 그는 점점 클래시컬한 할리우드 영화 만들기의 품에 가까워지고 있으며, [소셜 네트워크]의 영화 속 분위기는 미국 영화의 도도한 흐름과 맞닿아 있다. 다만 [소셜 네트워크]는 디지털로 찍은듯한 1970년대 미국 영화 같았던 [조디악]보다는 예전 핀처에 가까운 영화다. 인터넷 세상의 재빠른 속도감을 반영하듯 핀처는 슬로우 모션, 빠른 컷 전환, 회상과 현재를 뒤섞는 편집 등을 이용해 관객을 밀어붙인다. 하지만 이런 테크닉에서 여유가 배여나온다는 점은 그가 단순한 테크니션 이상의 좋은 감독이 되어간다는 점을 입증하고 있다.
아론 소킨의 시나리오는 훌륭하다. 사실 핀처보다도 이 영화에서 더욱 평가받아야 할 사람은 아론 소킨일것이다. 그만큼 이 영화에서 시나리오의 비중은 무시할수 없다. 비록 더스틴 랜스 블랙의 [밀크]처럼 실제 인물를 필름 위에 다시 살려내는 경지까지는 아니지만, 그가 써내려가는 재치있고 풍부한 대사와 강렬한 캐릭터, 잘 짜여진 시퀀스들은 관객들을 이야기의 마법으로 이끌어들인다. 자칫 자극적일수도 있는 소재를 싸구려 가십 수준으로 떨어트리지 않고 단단한 드라마를 만들어놓은 공도 빼놓을 수 없다. 나인 인치 네일즈의 트렌트 레즈너가 맡은 영화 음악도 조니 그린우드의 [데어 윌 비 블러드]처럼 과격한 일렉트로닉 사운드와, 중후한 현악을 동원하는 모습을 보인다.
[소셜 네트워크]는 흥미진진한 엔터테인먼트다. 이 영화는 삶에 얽혀있는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를 둘러싼 일화들을 통해 현대인들의 인간 관계와 자본주의, 테크놀러지에 대한 지적인 고찰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고 있으며, 무엇보다 영화가 '재미있다'. 지적인 화두와 재미를 모두 잡은 걸작이라고 할만하다.
'Deeper Into Movie >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케빈에 대하여 [We Need to Talk About Kevin] (2011) (0) | 2012.09.03 |
---|---|
무쉐뜨 [Mouchette] (1967) (0) | 2012.06.19 |
엔터 더 보이드 [Enter The Void] (2009) (4) | 2010.07.24 |
하얀 리본 [Das Weisse Band - Eine Deutsche Kindergeschichte / The White Ribbon] (2009) (0) | 2010.07.11 |
괴물들이 사는 나라 [Where the Wild Things Are] (2009) (2) | 2010.05.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