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dphone Music/리뷰

大瀧詠一 - [A LONG VACATION] (1981)

giantroot2011. 6. 6. 00:50
2010/12/06 - [Headphone Music/잡담] - A LONG LONG LONG VACATION


일본 록의 창세는 핫피 엔도가 열였습니다. 물론 GS사운드 같은 좀 윗 세대나 엔도 켄지나 이노우에 요스이, 포크 크루세이더스 같은 GS세대와 핫피 엔도 사이에서 활약하던 통기타 세대, 플라워 트래블링 밴드 같은 독자 노선을 걷던 밴드, 코사카 츄 같은 핫피 엔도의 동업자들도 있었지만, 핫피 엔도처럼 크고 굵직한 반향을 얻어낸 밴드는 드물겁니다. 그들이 지금같은 전설로 자리잡게 된 것은 일본어로 록하기라는 질문을 명쾌하게 내린 최초의 밴드라는 점 때문일겁니다.

핫피 엔도는 이후 앨범 한 장을 더 내고 해체하고 밴드 멤버들은 각자의 길을 가게 됩니다. 호소노 하루오미는 캬라멜 마마-틴 팬 앨리 등 이거저거 심화된 실험을 하는 커리어를 이어가다가 그 YMO를 결성해 다시 한 번 전성기를 누리게 됩니다. 마츠모토 타카시는 작사가로 전업해 일본의 수없는 명곡에 가사를 써줬습니다. 스즈키 시게루는 호소노의 백업으로 활동했고요.

그렇다면 다른 축이였던 오오타키 에이치는 어떤 길을 걸었는가. 핫피 엔도 해산 직전 1972년 셀프 타이틀의 첫 앨범을 내면서 자신의 방향을 천명한 그는 곧 벨우드를 뛰쳐나와 광고 음악 업계에 뛰어들게 되고 나이아가라라는 자신만의 레이블을 만듭니다. 이 레이블을 통해 야마시타 타츠로, 오오누키 타에코, 사노 모토하루라는 후일 거물로 자리잡게 되는 인재들을 발굴해냈지만 정작 음반들이 썩 잘 팔리질 않아서 경영은 꽤 어려웠다고 합니다.

오오타키 에이치에게 서광이 들기 시작한 것은 1980년 야마시타 타츠로의 [RIDE ON TIME]가 오리콘 차트 1위를 달성하면서부터입니다. 그 다음해 오오타키는 본작을 발매해 자신도 드디어 오리콘 차트 2위에 오르는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오오타키 에이치는 항상 최첨단과 전위에 서고 싶어했던 호소노 하루오미 (심지어 이 할배는 최근엔 사카모토 류이치와 함께 아오키 타카마사라는 젊은 IDM 뮤지션을 픽업해 같이 작업하기도 했습니다)와 달리, 복고적 유미주의자에 가까운 사람입니다. 당장 그가 발표한 앨범들의 아트웍을 보면 1950년대 미국의 팝아트 향취 물씬 묻어납니다. 존경하는 뮤지션이 엘비스 프레슬리라는 점부터 알 수 있죠. 오오타키 에이치는 영국보다는 미국에 가까운 뮤지션였습니다. 하긴 핫피 엔도 자체가 리틀 피트와 버팔로 스프링필드, 버즈 같은 미국식 컨트리 포크 록 밴드의 영향이 강한 밴드였으니... 

오오타키 에이치의 음악을 장르로 정의하자면 히피 혁명이 끝나고 쾌락에 정신없이 취하던 1970년대 초 미국 (정확히는 웨스트코스트)에서 유행했던 AOR일겁니다. 록의 비트를 차용하되, 팝의 달달한 멜로디와 소울의 하모니와 편안한 그루브, 풍윤한 편곡과 다양한 악기들, 발전한 스튜디오 기술을 동원해 포만감을 표현하던 음악 말이죠.

[A LONG VACATION]은 그런 오오타키 에이치의 정수를 담은 앨범입니다. 첫 트랙 '君は天然色'는 일본 대중 음악이 남긴 불후의 명곡 중 하나로 불리는 곡입니다. 싱글로 먼저 커트되어 광고 음악으로 쓰이기도 했던 (음료수 광고 음악과 딱 매치되는 곡이지만 정작 처음 쓰였던 V로트라는 안약 광고;) 곡인데, 경쾌한 리듬과 푸른 하늘을 질주하는 멜로디, 거기에 곁들여진 살짝 복잡한 편곡이 멋들어진 곡입니다. 이어지는 곡들도 대부분 비슷한 기조를 
(유일하게 다운템포 곡인 'スピーチ・バルーン' 제외) 이어가고 있는데, 개인적인 베스트는 'カナリア諸島にて'입니다. 남국에 대한 로망을 진짜 잘 표현했다고 생각해요. 정작 작사가이자 핫피엔도 동업자였던 마츠모토 타카시는 1999년까지 카나리아 반도에 가본 적이 없다고 하네요. :)

이처럼 이 앨범은 비치 보이스가 들려줬던 컴팩트한 사운드 축조 기술과 웨스트코스트에서 유행했던 부드러운 멜로디의 소프트 록과 발라드, 일본 애들 특유의 깔끔한 느낌의 작/편곡과 감수성, 과거 좋았던 시절의 미국과 이국에 대한 동경(남국이 주지만, 마지막 'さらばシベリア鉄道' 같은 곡은 그 동경의 대상이 남국에만 한정된 게 아니라는 걸 보여줍니다.) 이 블렌드되어 독특한 느낌을 자아냅니다. 오오타키 에이치는 확실히 당시 뉴뮤직 동료들이 가지 않은, 친미 성향의 AOR라는길을 선험적으로 개척했으며, 이는 일본 팝스의 소중한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오오타키 에이치는 이 앨범 이후 오리콘 차트 1위를 차지한 [EACH TIME]을 발매하고 가수 활동을 접고 한동안 프로듀서에만 전념하다가 그것도 80년대 말에 접었다고 합니다. 요샌 야마시타 타츠로가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의 레귤러로 나오고 있더라고요. 하긴 그가 전면으로 나오기엔 시대는 마츠다 세이코 같은 젊고 싱싱한 아이돌 시대로 넘어가고 있었으니깐, 미련없이 은퇴한 그의 선택은 현명했을지도 모릅니다. (모르죠 갑자기 뿅하고 복귀할지.) 그렇기 때문에 이 앨범의 가치는 더욱 높아지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굳이 그런 역사적인 의미를 따지지 않아도 이 앨범은 정말 여름과 멋진 조화를 이루는 앨범이기도 합니다. 여름이라는 감수성을 제대로 잡아내고 있어요.

P.S.1 그러고보니 당대(1980년대) 한국에도 AOR를 도입한 뮤지션이 있었다고 하는데, 어느순간 그 맥이 뚝하고 끊어진 느낌입니다. 뭐 이건 음악 뿐만이 아니라 한국이라는 나라의 문화가 가지고 있는 총체적인 문제입니다. 이젠 좀 제대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P.S.2 이 앨범은 초창기 일본 CD를 상징하는 앨범이기도 합니다. 나중에 CD선서라는 염가 시리즈에서도 거의 초기 넘버로 등장했으니, 여러모로 신기술하고 인연이 있는 앨범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판본은 2011년 3월에 나온 30주년 기념반인데, 이게 굉장히 리마스터링이 잘 됬습니다. 막귀인 저도 소리의 질감이 다르다는 걸 확연히 느끼겠더라고요.